안녕하십니까, 문재인 대통령님!
저는 필로소픽이라는 작은 출판사에서 기획을 담당하는 김경준이라고 합니다.
저희 출판사에서는 올해 3.1혁명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임정로드 4000km>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오마이뉴스>의 청년기자 4명이 상하이부터 충칭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활동했던 임정로드를 따라 걷고 온 뒤 그 여정을 기록한 국내 최초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순례길 가이드북입니다.
며칠 전, 이 책의 대표 저자인 김종훈 기자가 대통령님께 자필 편지와 함께 책을 보내드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는 처음 충칭 임시정부 청사에 방문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의 뿌리입니다, 우리의 정신입니다"라는 방명록을 남기셨을 정도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예우가 남다른 대통령님께는 매우 의미 있는 선물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임정로드 위에서 마주했던 또 다른 주인공
이 책의 출간을 준비하면서 백범 김구 선생 다음으로 가장 많이 마주했던 이름이 있었습니다. 바로 약산 김원봉 장군입니다.
<임정로드 4000km> 저자들은 약산의 발자취를 좇아 난징(南京)·구이린(桂林)·충칭(重慶) 등을 돌아보고 오기도 했습니다. 그곳에서 폐허가 된 채 방치된 김원봉 장군의 독립군 훈련소 '천녕사'와 흔적 없이 사라진 김원봉 장군 집터를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김원봉 장군을 빼놓고 독립운동을 이야기할 수는 없었노라"고.
저자의 말마따나 김원봉 장군은 김구 선생과 더불어 한국독립운동사의 양대 산맥과도 같은 분이었습니다. 오히려 김구 선생보다 현상금이 컸던 유일한 인물이었죠. 항일비밀결사 '의열단'을 창립해 김상옥, 김익상, 김지섭, 박재혁, 나석주 의거 등을 주도하며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고, 임시정부보다 먼저 '조선의용대'라는 정규군을 창설하여 무장투쟁에 앞장섰습니다.
1940년대에는 사상을 떠나 하나가 되어 싸워야 한다는 주의 아래 임시정부에 합류, 군무부장(지금의 국방부 장관) 겸 한국광복군 부사령관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단언컨대 김원봉 장군은 대한민국 항일독립운동사를 이끈 태산 같은 분입니다.
하지만 해방 후 돌아온 조국은 그에게 '승리의 월계관'을 씌워주기는커녕 너무나도 가혹한 시련을 안겨 주었습니다. 일제의 추적에도 한 번 붙잡히지 않았던 그가 해방된 조국에서 '빨갱이'로 몰려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뺨을 맞는 수모를 겪었던 것입니다. 그가 월북을 한 것도 친일파들이 득세하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월북한 김원봉 장군은 북에서도 버림받고 말았습니다. 김일성에 의해 '간첩 혐의'로 숙청을 당한 것입니다. 차디찬 형무소에서 청산가리를 입에 털어넣으며 스스로 죽음을 택해야만 했던 김원봉 장군의 최후를 생각하면 애통하기 짝이 없습니다. 현재 그의 묘는 어디에 있는지 알려지지도 않았습니다.
김원봉 장군의 남은 가족들 역시 정권의 탄압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6.25 전쟁 당시 남한에 남아 있던 김원봉 장군의 가족들은 '월북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군경에 의해 학살 당했습니다.
현재 김원봉 장군의 막내 여동생 김학봉 여사(87세)의 마지막 소원은 당신이 눈을 감기 전, 오빠 김원봉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남과 북이 모두 버린 영웅, 이제 우리가 먼저 모셔야지요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님!
저는 대통령님께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시절이던 2015년 광복절에 영화 <암살>을 관람하신 뒤 SNS에 남기신 글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약산은 잊혀졌다. 임시정부 군무부장, 광복군 부사령관에 마지막 국무위원이기도 했지만, 의열단 단장이란 직책만 알려지고 있을 뿐, 일제시대 거의 모든 폭탄 투척과 요인 암살 사건의 배후에 그가 있었다는 활약상은 가려졌다. 우리의 독립운동사가 그만큼 빈약해진 것이다. (…중략…) 이제는 남북 간의 체제 경쟁이 끝났으니 독립유공자 포상에서 더 여유를 가져도 좋지 않을까? 일제시대 독립운동은 독립운동대로 평가하고, 해방 후의 사회주의 활동은 별도로 평가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의 독립운동사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길이고, 항일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덧붙여 이렇게도 말씀하셨더랬지요. "광복 70주년을 맞아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 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잔 바치고 싶다"고 말입니다.
이제 그 약속을 지키실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때마침 올해는 3.1혁명·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열단 창립 10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입니다. 올해야말로 김원봉 장군에게 최고등급(1등급) 훈장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함으로써 반쪽짜리 독립운동사를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김원봉 장군을 시작으로 여전히 이념의 장벽에 가로막힌 채 빛을 보지 못하는 수많은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을 신원해나가야만 합니다.
2008년, 노무현 대통령은 독립운동계의 거목이신 몽양 여운형 선생이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받으신 사실을 알고 퇴임 직전 대통령 직권으로 대통령장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으로 격상하는 이례적인 조치를 취한 바 있습니다. 이는 노 대통령의 역사적인 결정으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제 대통령님께서도 그에 못지않은 비상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바라건대 문재인 대통령님 그리고 이 글을 보는 모든 누리꾼 여러분께 청원 드립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김원봉 장군의 가슴에 건국훈장을 달아드려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늦었지만, 그것만이 독립운동가들의 희생 위에 살아가는 후손된 자들로서 최소한의 도리이자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김원봉 장군의 서훈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렸습니다(
청원하기, http://omn.kr/1gxkr). 누리꾼 여러분의 많은 동참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문재인 대통령님의 역사적인 결단을 촉구하며 이만 글을 줄이겠습니다.
2019년 1월 21일, 김경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