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당은 임종을 앞두고 평상심으로 죽음을 맞았다.
『노자』의 풀이,
死而不亡者壽(사이불망자수)
"죽어도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오래사는 것이다."라는 대목 그대로였다.
오래 산다는 말은 육신을 두고 한 말이 아니지. 병원의 자리에 있는 사람한테는 육체의 삶이라는 게 하나의 꿈과 같은 것이거든, 생사가 모두 한 바탕 꿈인지라.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오래 산다는 것'은 영원한 삶을 말하는 거지.
무위당은 병상에서도 문병을 온 사람들에게 그림이나 글씨를 써주었다. 그중의 몇 편을 골라본다.
守本眞心知天地與我同根(수본진심지천지여아동근)
본래의 참된 마음을 지키면 천지가 나와 더불어 한 뿌리임을 깨닫는다.
君子數風雨之不移香(군자수풍우지불이향)
군자는 비록 비바람 속에 있더라도 결코 향기를 바꾸지 않는다.
蘭在幽谷不以無人不茫(난재유곡불이무인불망)
난초는 깊은 골짜기에 있어도 사람 없다고 향기를 내지 않는 것은 아니다.
水流元在海(수류원재해)
月落不離天(월락불리천)
물은 흘러가도 본디 바다 안에 있고
달은 져도 하늘을 떠나 있지 않다.
무위당의 심경을 보여주는, 모두 생과 사를 초탈한 경지의 글귀들이다. 자신의 내면적 자화상이며 정신적 상흔의 기록으로도 보인다.
무위당은 67세의 삶을 '00'하게 살다갔다.
따옴표 안에 무슨 글자를 넣을까, 한참을 망설인 끝에 조촐하고 깨끗함, 고상하고 순결함이라는 뜻의 '고결'이란 말이 떠올랐다. 그는 평생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도덕적인 순수성을 지키며 고결하게 살았다. 세속적 출세의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주류와는 격과 결이 다르게, 오히려 수렁으로 빠지는 쪽을 택하였다. 그러면서 고결하게 살았다.
그는 세상의 척도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정의의 가치와 자연의 이치에 자신을 맞춰가며 살았다. 한번도 사적인 이익을 위해 손을 대거나 자리를 탐하여 조직에 참여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신(神) 위에 올라선 물신주의와 위선으로 포장된 권위가 지배하던 시대와 치열하게 맞섰다.
그런 과정에서 자계와 자성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자신의 정신과 육신에 스며드는 허위와 세속의 때를 씻어내고자 부단히 노력하였다. 해서 정신의 명징함과 생활의 청빈함을 갖게 되었고, 체관이 아니라 달관에 이르렀다.
청년시절 교육사업을 시작하면서 '참되자'를 학교의 교훈으로 내건 이래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할 때에도 '참'의 가치를 버리지 않았다. 참되게 살고자 노력하고, 그렇게 살라고 가르치고, 그 가치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참의 가치관을 정립하였다. 참으로 참되게 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그는 '참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느 철학자보다 웅숭깊고 절절할 수 있었다. 대화나 연설은 때론 객적고 넋두리가 담겼지만, 가식이 없고 수식이 없는 담백한 내용이어서 사람들을 애잔하게, 때로는 가슴 뭉클하게 이끌었다. 영혼이 순수한 사람에게서만 가능한 감동이었다.
무위당이 그렇다고 초월적인 성자이거나 도사 또는 고매한 성직자는 아니었다. 평범한 이웃이고 생활인이었다. 남과 다르기 위하여 남다른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찾고 본성대로 살고자 노력했다. 다르다면 당대와 후대를 위해 극한점으로 치닫는 물질문명 대신에 생태문명을 만들자는 생각을 갖고 작은 실천을 보였다. 국내외적으로 이런 생각, 이런 활동을 해온 사람도 없지 않았다.
무위당의 또 다른 특색이라면 틀에 박힌 것을 무시하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그것도 도덕적인 품위와 순수성을 지키면서 걸었다는 점일 것이다. 어느 평자는 "제일 잘 놀다간 자유인"이라 하였다. 그는 자유인이었고, 그 자유는 도덕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의 길에는 동반자도 적지 않았고, 뿌린 씨앗도 많았다. 하여 동시대 세속의 '성공자'들이 앉았던 자리와 비교되고, "그이처럼 살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가치관의 새 지평을 열어보였다. 이 부분이 그가 남긴 가장 값진 유산이 아닐까 싶다. 고결한 삶만이 남길 수 있는 유산이다.
조선후기의 학자 홍길주의 글에 이런 내용이 있다.
"문장보다 귀한 것은 몸을 지키는 위엄을 갖추는 데 있다. 지위가 낮아 미천하고 문장도 별반 놀랄만한 것이 없는데도, 가는 곳마다 존경받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지위가 위세당당하고 문장도 화려함을 갖추었는데도, 가는 곳마다 능멸과 업신여김을 받는 사람이 있다. 어째서 그러겠는가."
어째서 그럴까.
무위당은 높은 관직은 물론 책 한권 쓰지 않았는데도 가는 곳마다 존경을 받고, 사후 25년이 지난 지금도 그리워하고 따르는 사람이 줄을 선다. 왜일까?
지식인으로서 정직함과 엄격성, 불의에 맞서는 장렬함과 자신에 대한 청렬함, 시대를 앞서가는 정신과 방향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모습에서, 시공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에 와닿기 때문일 것이다.
무위당은 일속자(一粟子)의 낙관으로 쓴 글씨에서 자신의 삶을 압축하고 있다.
萬古長空 一朝情華 (만고장공 일조정화)
영원한 시간과 공간에서 어느 아침 피어난 꽃.
그동안 읽어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드리고, 많은 자료를 보내주신 '무위당사람들'의 김찬수 이사님께 고마운 말씀 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무위당 장일순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