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을 배우다]는 한림대학교 2018년 2학기 <커뮤니케이션 개론> 수업을 통해 언론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실제 언론보도 및 뉴스를 확인하고 비교하며 고민한 나름의 결과를 담았습니다.[편집자말] |
나는 정치행정학과를 주전공으로, 언론방송융합미디어학과를 복수전공으로 하는 정치와 미디어를 배우는 학생이다. 이를 공부하면 할수록 정치와 미디어는 불가분리적 관계라고 생각했다. 정치와 언론의 상호관계 뿐 아니라 정치와 언론 모두 대립하는 구도를 양산하기 때문이다.
언론이 하나의 이슈를 놓고도 대립하는 것을 보면서 각각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의문이 생겼다. 즉 언론의 메시지에 숨은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닐까? 궁금증은 계속해서 커져만 갔다. 그러던 중 <커뮤니케이션 개론> 과목을 수강하면서 언론의 정파성에 관해 레포트를 작성하는 기회를 얻었다. 이번 기회로 언론의 정파성을 분석하면서 언론이 던지는 메시지에 숨은 의도를 파악하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사회균열 시민배심원단의 등장
주제를 선정하기 위해 우리 사회의 균열을 찾아보았다. 전통적이고 대표적인 균열은 세대, 지역, 이념, 대북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이보다 최근이며, 희소성 있는 균열을 찾던 중 탈원전 에너지 정책을 결정한 시민배심원단 이슈를 발견했다. 에너지정책을 통한 사회균열과, 시민배심원단 제도를 통한 갈등관리 및 국가정책결정은 건국이래 최초였다. 새로운 정파적 논쟁거리를 야기했고 이를 주제로 선정하게 되었다.
시민배심원단 이슈의 시작은 이러했다. 제 19대 문재인 대통령은 에너지정책을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자는 이른바 '탈원전'을 내세웠다. 이후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공사를 중단하고, 건설여부를 공론화과정을 거친 시민배심원단의 판단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상반된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보도행태
시민배심원단이 한국사회의 정치적 갈등소재로 부상하면서, 정치성향에 따라 찬성과 반대로 나뉘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 이러한 정파성이 어떤 형태인지 확인하기 위해 언론보도를 확인했다. 비교대상은 사회적으로 보수언론이라 평가받는 조선일보와 진보언론이라 평가받는 한겨레를 선택했다.
분석은 한겨레와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시민배심원'과 '시민참여단' 키워드를 검색해 조사했다. 8월 3일 공론화 위원회 3차 회의에서 시민배심원단은 시민참여단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역할과 의미는 같고 이름만 바꾸었기 때문에 두 가지 키워드를 사용했고, 중복기사는 제외했다. 또한 분석기간은 6월 27일부터 10월 27일까지 정확히 4달로 맞추어 조사했다. 시민배심원단 개념이 나온 6월 27일부터 10월 20일 최종발표 후 언론의 사후평가 기간까지 고려해서 기간을 정했다. 시민배심원단에 대한 기사는 총 151건으로 조선일보 64건, 한겨레신문 87건이었다(<표 1> 참고).
비교한 결과 시민배심원단 운영에 관해 조선일보는 반대, 한겨레는 찬성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언론의 정파성이 대립되어 나타난 사례이다. 언론보도 중 가장 정파성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헤드라인을 다음과 같이 골랐다.
표2는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시민배심원단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한 헤드라인으로 양 언론의 상반된 견해를 잘 보여준다. 조선일보의 "어설픈 전문가… 선무당이 사람 잡습니다"는 시민배심원단의 비전문성을 비판하는 기사이다.
능력이 없는데 함부로 하다가 큰일을 저지른다는 뜻의 '선무당이 사람 잡습니다' 속담을 비유해서 비판했다. 반면 한겨레의 "신고리 시민참여단 의견이 국민의 의견이다"는 시민배심원단의 대표성을 두둔하는 기사이다. 국가정책결정에 시민참여 방법을 도입한 것을 호평했다. 이처럼 헤드라인만 살펴봐도 구체적 내용 없이 언론사의 논조를 이해하고 대립된 정파성을 찾을 수 있다.
대개 조선일보와 같은 보수적 견해는 시민의 과도한 정치참여를 부정적으로 보고, 한겨레와 같은 진보적 견해는 시민의 직접적 정치참여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풀어 설명하자면, 조선일보는 보다 전문적·공식적인 전문가집단이나, 정당을 활용해 정치안정적인 참여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한겨레는 보다 직접적이고, 대중적인 시민의 힘을 활용해 활발한 정치참여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각 언론의 입장차이가 단순히 성향과 이데올로기 차이가 반영된 것일까? 이러한 보도 차이를 시기별로 나누어 보았는데 그 중 언론의 의도적인 보도행태를 살펴보고자 한다.
위축하고 외면하기에 급급한 언론보도
표 3은 7월 24일 시민배심원단을 뽑는 공론화위원회 출범 이후 일주일간 보도된 대표적 헤드라인이다. 이 시기는 27일 시민배심원단이 찬반 결론내지 않겠다고 했다가 28일 다시 결론 낸다고 정정한 때로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보도량은 대부분 큰 차이가 없지만, 유독 이 시기는 조선일보 12건, 한겨레 3건으로 차이가 컸다.
조선일보는 주로 정부와 공론화위원회의 혼선과 갈등을 비판하는 기사를 작성했다. 반면 한겨레는 정부와 공론화위원회의 균열은 진행과정 일부에 불과하다는 태도를 견지했고, 보도량이 적었다.
언론은 감시견(Watch Dog) 역할로 대중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부분을 비판하고 공론화 해야 한다. 그러나 한겨레는 보도를 적게 하고, 사안을 축소하기에 바빴다. 아무리 같은 정치성향의 언론이어도 사안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국가정책결정이 그것도 새로운 시스템인 민간(시민배심원단)의 국가정책결정에 있어서, 언론이 애완견(Lap Dog)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 정책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국가정책이 하루 사이로 뒤집어지는 상황을 중요하지 않게 바라보는 언론은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다.
유리한 상황이 되자 입장 바꾸는 언론보도
표 4는 10.20 시민배심원단 최종결과 발표를 중심으로 보도된 17일부터 27일까지 보도된 대표적 헤드라인이다. 조선일보가 건설재개 결과에 집중하고, 한겨레가 공론화 과정에 집중했다.
조선일보는 기존의 시민배심원단 비판과 달리, 최종발표 이후에는 원전 건설재개 결과를 호평하며 논리, 이성, 과학, 데이터가 승리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한겨레는 최종발표 이후 시민배심원단의 숙의민주주의, 갈등해소, 시민권력 확대, 시민해법을 호평하며 공론화에 긍정적인 면을 보도했다. 원하는 결과를 얻은 조선일보와 원하는 제도를 시행한 한겨레의 보도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언론은 사안을 일관성 있게 보도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달랐다. 평소 조선일보는 표에 첫 번째 기사와 같이 시민배심원단을 상당히 부정적인 논조로 보도했다. 하지만 원전을 재개한다는 최종결과 이후에는, 곧바로 시민배심원단의 현명한 선택을 칭찬하며 국민의 직접적 판단을 긍정적으로 보도했다.
언론은 아무리 원하는 결과가 나왔어도, 지속적으로 비판하던 시스템을 뒤집어 긍정적으로 보도하는 자가당착적 보도를 해서는 안 된다. 언론의 신념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은 매우 부적절한 태도이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다른 언론보도
지금까지,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시민배심원단 보도를 분석한 결과, 언론은 이중적이고 숨은 의도가 있었다. 두 언론은 공정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고,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이기에 바빴다. 이런 상황에서 독자들은 보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쉽게 구분하기 힘들다. 이에 독자들은 대립되는 주장을 순수하게 그 자체로 바라보지만 말고 여러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하는데 대표적으로 정치적 상황을 인지해야 한다.
당시 정권 초기 문재인정부는 국정 지지도가 70~80%가 넘어가며 각종 정책추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가졌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 중 탈원전 정책은 유일하다시피 찬반이 대립되었다.
진보성향의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정치적으로 가장 공격하기에 효과적인 상황이다. 조선일보가 언론의 의제설정(agenda setting)으로 반(反)시민배심원단 여론을 형성한다면 탈원전 정책의 타격뿐 아니라, 국정 전반에 제동을 거는 정치적 타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배심원단의 조선일보 보도가 정부를 지속적으로 조명하고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겨레를 비롯한 진보언론은 공격을 막아야할 의제이다. 10년만에 돌아온 진보정부에 높은 지지 분위기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겨레가 친(親)시민배심원단 찬성과 같은 사회적 여론을 형성한다면 탈원전 정책의 지속뿐 아니라 국정 전반을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다. 그래서 계속해서 정부와 시민배심원단을 비호한 것이다.
독자를 위한 뉴스리터러시 방법과 한국 언론의 한계
이처럼 독자들은 정파성에 따라 대립되는 언론의 의제전달을 단순히 사안 그 자체로 이해하면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분석결과와 같이, 현재의 뉴스 환경은 정파적 미디어로 공정과 객관보다는 분열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매체와 미디어를 통해 뉴스를 접하더라도 포털을 중심으로 한 소수의 주류 언론이 중심이다. 네이버의 베타 버전은 알고리즘을 통한 구독언론 맞춤뉴스 제공을 하고 있고, 유튜브/페이스북 등의 소셜미디어도 결국 '구독'과 '관계'를 바탕으로 해 사실상 한 쪽을 중심으로 한 뉴스 이용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결국 독자는 더 스마트하게 뉴스를 이용해야 한다. 숨겨진 의도를 찾아보면서 이해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으나 같은 사안에 대해 몇 분의 노력 몇 번의 클릭을 통한 스스로의 판단은 어떨까?
다른 한편으로는, 언론의 역할을 독자의 부담으로 떠넘기는 것 같이 느껴질 수 있다. 본래 뉴스는 중학생 수준의 기사작성을 통해 모든 국민이 쉽게 받아들이도록 전달해야한다. 그러나 한국 언론의 이익중심적, 정파중심적인 보도는 바람직한 언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이에 현실적인 언론발전의 방법은 언론의 자정능력보다, 리터러시 능력이 향상된 독자의 지속적 문제제기가 더 가능성 있을 것이다.
정치와 미디어 전공생으로서 정치와 사회 전반에 걸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언론'에 대한 고민과 함께 글을 마친다. 독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그런 매체, 미디어, 플랫폼은 어떻게 가능할까? 아니 나는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