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도착했어. 타오위안 공항이야. 타오위안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마치자마자 유심을 샀다. 통신사의 개통 메시지가 뜨는 것을 확인한 후 위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위징은 철도를 타고 자기 동네로 오라고 노선을 알려주었다.
위징은 웜샤워 호스트였다. 웜샤워(warm shower)란 말 그대로 '따뜻한 샤워'를 제공한다는 의미로, 자전거 여행자들이 손님이 되기도 하고 호스트가 되기도 하면서 서로의 집에 묵거나 초대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카우치 서핑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해당 지역 호스트에게 묵을 곳을 제공해줄 수 있냐는 메시지를 보내고, 수락 응답이 오면 그의 집으로 가서 묵는 것이다. 카우치 서핑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자전거라는 연결고리가 있어서 조금 더 유대를 느낄 수 있달까. 타이완은 숙박비가 저렴한 편이긴 했지만 첫날만큼은 웜샤워를 이용하고 싶었다. 자전거 여행기들을 읽으며 웜샤워에 대해 줄곧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전거라는 공통점을 가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생각만으로 신났다. 첫날은 바로 라이딩을 하지 않고 자전거 조립과 휴식 정도로 보낼 생각이었다. 위징의 집은 타오위안에서 신주로 가는 길목의 작은 어촌에 있었다.
철도를 타러 갔는데 문제가 생겼다. 자전거 박스가 너무 커서 철도에 탈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쩌지? 박스 때문에 철도를 못 탔어.]
위징은 흔쾌히 차를 가지고 공항까지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박스를 붙잡고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했다. 30분 정도 지나서 위징이 도착했다. 아, 정말 크네. 내 차에 들어갈 수 있을까. 위징은 박스를 보더니 차 트렁크를 열어 이것저것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다행히 의정의 차는 제법 컸다. 아슬아슬하게 박스를 넣을 수 있었다.
와.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큰일날 뻔했어. 여행을 아예 시작도 못할 뻔했네. 나는 활짝 웃으면서 안도의 숨을 쉬었다. 위징이 공항 근처에 살고, 큰 차를 가지고 있어서 무사히 공항을 벗어날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 가는 동안 그는 도로 표지판을 설명해주었다. 표지판에 매화꽃이 그려져 있으면 자전거가 들어갈 수 없는 도로라고 했다.
"점심은 뭐 먹을래?"
"타이완 사람들이 먹는 걸로."
"좋아, 그럼 굴전을 먹자."
굴전은 달았다. 짭조름한 굴전을 상상했던 나는 단맛에 당혹스러웠다. 굴전에서 단 맛이 나. 위징은 이건 별로 달지 않은 편이라며,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음식이 더 달아질 거라고 알려주었다.
"단 걸 좋아해?"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아."
위징은 달콤한 굴전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나는 손이 가지 않았다. 앞으로의 고행길이 예상되는 순간이었다. 상을 치우고 나서 자전거를 조립했다. 위징도 오랜만에 자전거를 꺼낸다며 옆에서 정비를 했다. 함께 동네 라이딩을 하기로 했다.
위징은 몇 년 전 유럽 자전거 여행을 다닐 때 독일에서 처음으로 웜샤워를 해보았다고 한다. 그때 받은 그들의 호의가 너무 고마워서 모국에 돌아가면 자기도 꼭 호스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위징은 타이베이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마침 영국 출장 뒤 휴가를 얻어 본가에 머무르고 있는 중에 내 연락을 받은 것이었다.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가니 금세 바다가 나왔다. 위징은 자기가 어렸을 때 어디서 놀았는지, 여기는 어떤 곳인지 지나쳐 갈 때마다 알려주었다. 그가 아니었으면 이 작은 마을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타이완에서의 첫 일몰을 바다 위에서 바라보았다. 그것도 자전거 길 위에서. 저녁 시간에 맞춰 돌아오니 위징의 어머니께서 저녁을 차려 놓으셨다. 어디서든 집밥이 가장 맛있다. 아주머니는 여자애 혼자 어떻게 여길 와서 자전거 탈 생각을 했냐고 걱정을 해주셨다.
나도 한국에 있을 때 걱정을 많이 했다. 위험하면 어쩌지, 길 잃으면 어쩌지, 한 바퀴 다 못 돌면 어쩌지. 그런데 이렇게 도란도란 앉아 밥을 먹으니 걱정들이 다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위징은 밤늦게까지 내 지도를 펼쳐 놓고 환도 루트를 꼼꼼히 짚어주었다. 멋진 풍경과 맛있는 음식들을 쏙쏙 골라주었다. 위징이 베풀어 준 친절과 응원 덕분에, 조금씩 구체적인 일정이 잡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