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슬픔.
슬픔. ⓒ unsplash
 
퇴사하던 날, 데면데면 지내던 동료 직원 L과 J가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딱히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해 응한 자리에서 형식적으로 이별의 아쉬움을 나타내고 다시 만남을 약속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두 번째 장소로 옮긴 후, 난 퇴사에 대한 변명인지 소회인지를 털어놨는데 까다롭게 이뤄진 정규직 전환 이후 바로 이어진 퇴사이기도 했고, 이들과 다시 볼 가능성이 희박해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늦은 밤, 낮은 카페 조명에 함부로 일렁이던 세 개의 그림자에 침범된 마음 때문일 것이다.

"미안해요. 혼자 슬퍼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회사 일에 차질이 생기면 안되니까요."

내 마음인지도 모를 말들이 입에서 흘러나갔다. 계속 일을 했더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이야기, 언니의 죽음에 관한. 반응은 기대하지 않았고 다분히 감상적이기도 했다.

"그거 말이죠, 약 처방한 의사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어요. 나중이라도 알아보세요."

남편이 약사인 L은 언니에게 불면증약을 과다 처방한 의사를 처벌할 방법을 알려줬다. 앞으로 꽃길만 걷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물론 당시의 내겐 소용없는 말들이었다. 바로 옆자리에 앉았던 J는 내내 조용했는데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을 때 뜻밖에 울고 있었다. 평소 말이 적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J가 속이 깊고 신중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나 특별히 가까울 것 없던 그녀와 나 사이에 눈물은 처음이어서, 난 말을 멈추고 그녀의 묵묵한 애도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언니의 장례식을 마치고 출근한 그날 아침, 팀장은 내 자리로 와서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니 슬픔을 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하라고 당부했다. 적절하지 않다고 느꼈다가 나중에는 같잖다가, 도무지 산더미 같은 일에 집중할 수 없어 퇴사를 결심했다.

그 마음을 업무 사수였던 L과 의논했고, 그 내용은 일순간 출장 중이었던 팀장과 인사팀, 사내 전체에 전해졌다. 출장에서 돌아온 팀장은 다소 불쾌한 내색을 내보이며 후임자가 올 때까지는 근무해줄 것과 정식으로 사직서를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 그 후 후임자가 들어와 인수인계가 이뤄지기까지 두 달 동안 팀장과는 사내 메신저로 사무적 대화만 주고받았다.

같은 시기, 동네에서 오랫동안 가까이 지내던 이웃이 밥을 먹자 불러냈다. 그는 우연히 사정을 알고 내가 집을 비운 동안 종종 찾아와 두 아이의 먹을거리를 챙겨 주었다.

"유가족이 세 명뿐이었어요. 엄마, 형부, 나. 친하지도 않은 이 세 사람의 연결 고리는 언니였거든요. 처음엔 의사소통이 잘 안됐어요. 어디서 장례를 치르냐부터 어긋났어요. 당장 장례 절차도 진행해야 하고 경찰서에도 불려 다녀오고, 조문객들 상대에..."
"요즘 다 그래. 핵가족인데 안 그런 데가 어디 있어? 우리 집도 막상 누가 죽으면, 다 똑같아."

"물건 정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우리 시아버지 돌아가셨을 땐 1.5톤 트럭이 몇 번 왔다 갔다 했는지 몰라. 다 그래."

"다 그런가? 그런 것 같지 않은데."
"기도해.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이 계시잖아. 회복돼야지."


우리는 마주한 밥상머리에서 쉽게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식어버린 국밥에 둥둥 떠다니는 기름만 되작거렸다. 헤어질 때 외투 주머니에 슬쩍 넣어준 흰 봉투엔 10만 원이 들어 있었다.

어릴 적 엄마는 아빠가 집에 안 들어올 때마다 언니와 나를 앉혀 놓고 묵주기도를 바쳤다. 성냥을 그어 초에 불을 붙이고, 아이들 무릎을 꿇리고 본인도 꿇어앉았다. 십자가와 성모상 앞에서 큰 소리로 성호경을 긋고 주기도문과 성모송 영광송을 암송했다.

엄마가 울기 시작하면 언니가 울었고 언니가 울면 나도 울었다. 몇 시간이고 같은 기도문을 외웠다. 다리가 저려오고 마비되는 동안, 이 대가를 치렀으니 언젠가는 아빠가 엄마 옆에 안착하리라 믿으며. 끝나지 않는 주문을 외우고 반복하고 반복하고. 엄마와 아빠는 이혼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 님은 죄가 없다.

삶은 울음으로 시작된다. 고통은 존재에서 비롯되어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고통은 명분으로 드러날 뿐이다. 울음을 뱉어낼 핑계 같은. 그러한 면에서 고통은 뛰어나다. 삶은 끝없이 비명을 내질러대니. 고통은 기억을 매몰시키고 계속해서 팽창한다. 고통 외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처연히 죽은 것의 무덤을 바라보는데 이것이 사정없이 비대해진 고통이 하는 일이다. 목적 없음. 허무함을 응시하는 짓. 무참하다.

작은 아이가 두 돌이 지났을 때였다. 명절에 친척 집을 방문해 사촌과 놀다가 세게 닫히는 문에 아이 검지가 끼어 손톱이 빠졌다. 아이는 비명을 지르며 울었고 부모는 아이를 안고 병원 응급실로 달렸다.

난생처음 겪는 고통에 아이는 곧잘 하던 말도 잊고 신음소리만 냈다. 부모는 아이의 신음에 답해줄 말도 해결할 능력도 없었다. 자지러지는 고통은 오직 아이의 것이지, 아이를 사랑한다고 아이의 고통을 덜 방법이 내게 있는 건 아니었다. 입술에서 성모송이 터져나왔다. 혼자 돌아가는 주문. 반복하는 실패. 그럼에도 항복을 모르는 고통을 대하는 우리의 방식이었다.

#고통은나눌수있는가#엄기호#고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내 언어와 목소리로 말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