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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잠시 멈춘 김병준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14일 오후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열린 2.27 전당대회 충청·호남권 합동연설회에서 연단에 올라, 김진태 후보 지지자들의 야유가 쏟아지는 동안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잠시 멈춘 김병준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14일 오후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열린 2.27 전당대회 충청·호남권 합동연설회에서 연단에 올라, 김진태 후보 지지자들의 야유가 쏟아지는 동안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 남소연
 
"조용히 해주세요!"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자제를 요청했다. 하지만 비난과 고성이 난무했다. "XX" "저 XXX" 같은 원색적 욕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김병준 위원장이 "조용히 하십시오!"라고 외치고, 사회자도 이어 현장 당원들을 진정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발언을 하기 위해서는 그 후로도 꽤 시간이 더 필요했다.

18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후보자 제2차 합동연설회에서 김병준 위원장을 향한 당원들의 분위기는 '험악'했다. 처음은 아니다. 지난 14일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열린 제1차 합동연설회에서도 "에이씨, 저 XX 왜 왔어!" 같은 말이 중계방송에 잡힐 정도로 현장의 분위기는 냉소적이었다.

자유한국당을 '합리적 보수' '개혁 보수'로 탈바꿈하겠다던 김병준의 혁신은 실패했다. 최소한 전당대회만 보면 그렇다. '5.18 망언'으로 제명 위기에 놓였다가 당규에 따라 징계가 유예된 김순례 최고위원 후보는 "살려달라"라며 "여전사가 되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진태 당대표 후보는 대전에서 무릎까지 꿇으면서 자신을 "지켜달라"라고 외쳤다. 전당대회 연설회장 가는 곳마다 김진태 후보의 이름을 환호하는 소리로 가득 찼다.

지난 14일 대전, 오세훈 당대표 후보는 최초 연설문에서 5‧18 망언을 비판하려 했지만, 실제 최종본에서는 해당 문구를 뺐다. 같은 날 "우리가 대한애국당이냐"라고 되물었던 조대원 최고위원 후보에게는 야유가 쏟아졌다. 조 최고위원 후보는 대구에서도 "호남에 계신 여러분들, 정말 잘못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돌아온 건 욕설이었다. 그는 당 선관위로부터 '주의' 징계를 받았다.

대신 김준교 청년최고위원 후보는 14일 대전에서 "지금 주사파 정권을 탄핵시키지 못하면 자유한국당이 멸망하고 김정일의 노예가 될 것이다"라며 "우리 국민 모두가 학살당하고 강제수용소에 끌려갈 것이다"라는 막말을 쏟아냈다. 환호가 쏟아졌다. 대구에서도 "저딴 게 대통령이냐"라며 "민족의 반역자"라고 목청을 높였다.

자유한국당은 스스로 극우로 회귀했음을, 이 정당이 여전히 '태극기 세력'으로 대표되는 강성 보수에게 사로잡혀 있음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정치에 휘둘리는 '도로박근혜당'이 됐음을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여실히 보여줬다.

실패의 증거, 5.18 그리고 박근혜 
 
TK 공략 나선 황교안-오세훈-김진태  자유한국당 지도부를 뽑는 2·27 전당대회를 앞두고 18일 오후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당대표에 출마한 황교안, 오세훈, 김진태 후보가 당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TK 공략 나선 황교안-오세훈-김진태 자유한국당 지도부를 뽑는 2·27 전당대회를 앞두고 18일 오후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당대표에 출마한 황교안, 오세훈, 김진태 후보가 당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입장은 새누리당 시절부터도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된 일부 새누리당 후보자들이 '광주 반란' 등의 발언을 해 역사인식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진통 끝에 후보들의 공천을 취소하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5.18 망언'은 이 당의 우경화를 상징하는 바로미터였다. 김종인 당시 비상대책위원이 "바꿔보려고 해도 바꿔지지 않는데 더 이상 뭐라고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토로할 정도였다(관련 기사: '광주반란' 이영조 새누리당 공천 논란 확산).

한국당은 해당 발언이 나왔을 때부터 일관된 입장을 갖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당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다"라면서도 "역사에는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와 같은 입장으로 어정쩡한 선긋기에 나섰다. 그러다가 일이 커지니 그제야 '윤리위 회부' 카드를 꺼냈지만, 전당대회 후보등록이 끝난 후라 이미 늦어버렸다.

망언 3인방 중 이종명 의원만 제명됐고, 그나마도 의원총회에서 구제받을 가능성이 있다. 김진태‧김순례 의원의 징계는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여야의 비판이 줄을 잇고, 5.18 유가족들이 한국당을 방문해 김병준 위원장을 만났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개인적 사과 이외의 것을 내어줄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그저 '당헌‧당규'만 도돌이표처럼 읊을 뿐이었다. 오히려 '김진태를 지켜야 한다'는 태극기부대의 시위에 윤리위원회 장소만 비공개로 급히 변경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김병준 위원장은 "이제 더 이상 한국당에 계파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큰소리쳤지만, 그 말이 무색하게 5.18 문제가 터지고 전당대회가 시작되면서 계파는 그대로 부활했다.

청산하지 못했던 친박계는 망언을 반복했고, 비박계는 5.18 역사인식에 대한 당내 의원들의 발언을 비판했지만 별다른 파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박 복당파' 장제원 의원이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울하고 참담한 마음 지울 수가 없다"라고 쓴 말은 공허하게 흩어졌다.

무엇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정치'가 이어지고 있다. 유영하 변호사의 말 한 마디에 '배박'(배신한 친박) 프레임이 나왔다. 황교안 후보와 김진태 후보 중 누가 진짜 박근혜의 사람인지 지지자들 사이에 갈등이 붙었다.

오세훈 후보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라고 말하자 쏟아진 건 야유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탄핵에 대한 당내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며 당장의 갈등만 봉합한 김병준 위원장의 자충수였다.

다른 정당에서도 이번 한국당 전당대회를 바라보는 반응은 비슷하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대변인은 18일 현안 브리핑을 통해 "자유한국당 전당대회가 역사적 퇴행과 극우정치에 몰두할수록 당의 미래와 희망은 없을 것이다"라면서 "전당대회가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한 미래지향적 논의는 찾을 수 없고 소수의 극단적 지지자들을 위한 역사적 퇴행과 극우정치로 치닫는 것이 안타깝고 애처롭다"라고 평했다.

이정미 정의당 당대표도 이날 오전 상무위원회 모두발언에서 "한국당 전당대회가 극우집단의 망언대회로 전락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심지어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도 앞서 16일 논평을 통해 "자유한국당은 혁신과 환골탈태를 외쳐 왔지만 전혀 바뀌지 못했으며, 오히려 더 거꾸로 가고 있었다는 사실, 그 '속살'과 '민낯'을 극명하게 드러냈다"라면서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고서도 당 밖의 국민이 아니라 당 안의 일부 지지세력에 기댔기 때문이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반성과 미래가 아니라 변명과 과거를 좇았기 때문이다"라면서 "자유한국당이 극우에 이끌려서는 결코 바뀔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실패의 시작 그리고 끝 
 
대구 방문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지도부를 뽑는 2·27 전당대회를 앞두고 18일 오후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당원들을 향해 인사말 하고 있다.
대구 방문한 나경원자유한국당 지도부를 뽑는 2·27 전당대회를 앞두고 18일 오후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당원들을 향해 인사말 하고 있다. ⓒ 남소연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18일 오전 회의가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서 "아마 오늘은 서로들 잘 이해하고 질서가 좀 잡히지 않겠느냐"라며 "선거관리위원회에 모든 걸 맡겨뒀다, 선관위에서 경고도 하고 적절한 조치를 했으니 잘 관리하고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이 무색하게 그날 오후 전당대회 현장 질서는 나아지지 않았다. 김병준 위원장이 당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는 것만 증명된 셈이다.

결과적으로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의 혁신은 실패로 끝났다. 더 이상 반등의 기회도 없다. 27일 전당대회를 끝으로 그의 임기는 끝난다. 그가 마이크를 잡는 현장마다 야유와 조롱이 쏟아지고 있다. 그의 유일한 치적이라 할 수 있는 지지율 상승은 5.18 망언 사태가 터지며 다시 주저앉았다.

2018년 7월, 김병준 위원장이 만장일치로 추대될 때만 해도 한국당 혁신에 대한 세간의 기대는 컸다. 김병준 위원장은 참여정부에서도 활동한 경력이 있는 인물이고, 학자 출신으로 점잖고 합리적인 캐릭터로 알려진 인사였다. 그러나 그는 몇 번의 기회를 모두 놓쳤다. 인적 청산에 대한 기대는 계파 봉합이라는 명분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전원책 조강특위 위원을 통해 인적청산을 이루고자 했으나 갈등 끝에 해촉 사태로 마무리됐다.

문재인 정부의 국가주의를 비판하고 '아이노믹스'를 내세우며 새로운 이념적‧정책적 대안을 내세우려고 했으나 실질적인 성과는 전무에 가까웠다. 그의 구상이 발표될 때마다, 기자들의 평은 "교수의 대학교 강의 같았다" "졸립다"는 야박한 평가를 내놨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친박'의 지원을 받아 선출된 후에는 원내대표의 그늘에 가려 존재감마저 상실했다.

황교안‧오세훈‧홍준표 등 대권주자로 물망에 오른 이들의 전당대회 출마를 공개적으로 만류했으나, 아무도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출마 자격 논란으로 실제 칼을 쓸 수 있을 때도 그는 후보자격을 인정했다. 그는 비대위원장 취임 초기 '대권 행보'라 비판받던 때가 무색하게 "종이호랑이"라는 평만 따라다닌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태극기 세력이 책임당원으로 대거 입당했고, 자유한국당 안에서 무시하지 못 할 목소리를 내게 됐다. 김병준 위원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입장 정리도, 인적 청산도 못 한 상태에서 이들은 한국당 전체를 극우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중력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결국 5.18공청회를 기점으로 터져버렸다. 한국당의 '우향우'는 이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한층 강해지고 있다. 극우화를 경계하는 당내 목소리는 태극기 물결에 묻혀 버리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김병준 위원장은 "이런 이야기도 나올 수 있고, 저런 이야기도 나올 수 있다"라며 방관자적 입장을 보일 뿐이다. 이제 김병준 위원장에게 남은 건 홍문종 의원의 말마따나 "권한 넘기고 짐 싸라"는 게 실현되는 것뿐이다.

#김병준#자유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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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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