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전격 기자회견을 열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 불발과 북이 긴급하게 연 기자회견을 김종원 서강대 연구교수가 긴급 분석했다.[편집자말] |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에 실패하면서 막을 내렸다. 양국은 정상회담 종료 후 시간의 차이를 두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어떠한 합의에도 이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한 미국은 영변뿐만 아니라 영변이외의 핵시설과 핵무기 체계 전반에 대한 폐기를 요구했고,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완전한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는 것이었다. 반면 북한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부상은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제안한 것은 영변핵시설 폐쇄였고, 상응조치로 전면적 제재해제가 아닌 민수경제와 인민생활과 관련한 일부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양국의 시각 차이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번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종료되기까지 과정을 돌이켜보면, 협상 결과를 긍정적으로 예견할 만한 다양한 요소가 존재했다.
우선,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장소인 베트남 하노이가 북한과 미국에게 주는 의미가 긍정적이었다. 북한에게는 베트남이 프랑스로부터 식민지 독립, 미국과 전쟁을 겪은 후 공산주의 승리, 김일성이 2차례 방문한 역사, '도이모이(Doi Moi)' 정책 채택 후 비약적인 경제 성장 등 정치적 효과와 실리적 효과를 모두 얻을 수 있는 곳이다.
미국에도 베트남은 과거 전쟁으로 인한 적대적 관계가 유화적인 관계로 변모한 상당히 의미있는 국가였다. 또한 베트남은 핵무기 없이도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고도성장을 이룰 수 있음을 암시하는 유리한 장소였다. 이처럼 베트남은 북한과 미국 모두에게 긍정적인 하나의 모델(베트남 모델)로 제시될만한 탁월한 장소였다.
정상회담의 타협 가능성은 준비과정에서도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났다. 우선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과는 달리 정상회담 실무협상자들이 회담 결과를 성공적으로 이끌 인물들로 교체됐다. 북한은 핵문제 전문가로 알려진 김혁철(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 미국은 비교적 온건한 인물로 평가받는 스티븐 비건(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이 실무협상자가 됐다.
이들은 정상회담 이전에 양국을 오가며 북한 비핵화 방안과 대북제재 해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왔고, 특히 정상회담이 열리기 5일 전부터는 매일같이 실무협의를 진행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Top-down 방식을 선호하지만, 비핵화와 제재 완화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했기에 실무진들의 잦은 만남을 보면서 협상의 긍정적인 결과를 예상했다.
또한, 이번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그동안 의견 차이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던 비핵화 방안과 상응조치에 대해서도 타협 가능한 다양한 의제들이 제시되었다. 비핵화 방안으로 북한 영변핵시설의 폐쇄와 ICBM 폐기, 상응조치로는 연락사무소 설치와 종전선언, 제재 완화 등 합의로 이어질 만한 구체적인 내용들이 나왔다.
양국 정상이 처해있는 국내 정치적 상황도 정상회담의 타협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제로 북한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그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러시아 게이트에 대한 뮐러(Muller) 특별검사의 보고서 공개 여부와 자신의 전 변호사인코언의 미국 하원 증언으로 정치생명에 위기가 찾아왔다. 결국, 양국 정상 모두 이번 회담에서 좋은 성과를 얻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긍정적인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두 정상 간의 핵심의제인 북한 비핵화 방안과 그 상응 조치에 대한 견해 차이가 협상 결렬로 이어졌다. 미국과 북한 양국이 기자회견에서 보여준 회담 결렬의 입장 차이는 결국 정상회담의 핵심의제에 대한 해법에 대한 시각 차이와 직결된 것이었다.
시각의 일치가 남은 과제
그동안 미국이 요구해온 비핵화 방안은 CVID 또는 FFVD였고, 이를 북한이 거부하면서 좀처럼 양국의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못했다.
이번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은 영변핵시설의 폐기를 단계적 비핵화 방안의 하나로 제시했다. 영변핵시설은 북한 핵무기 개발의 핵심적인 시설이고, 북한 핵전력을 유지하는데 충분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능력을 갖춘 곳이다. 따라서 북한 핵무기 개발의 상징적인 영변핵시설의 폐쇄는 북한이 제시할 수 있는 비핵화 방안의 하나였다. 북한은 비핵화에 대한 상응조치로 유엔대북 제재 중 민수경제와 인민생활과 관련한 5건의 해제를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변뿐만 아니라 영변 이외의 핵시설, ICBM 등 핵무기 전력 전체에 대한 더 높은 단계의 비핵화 방안을 요구한 듯하다. 즉, 미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이 제시한 비핵화 방안이 '완전한 비핵화'로 충분하지 않았고, 이 정도 수준에서는 제재를 해제할 마음이 없었다. 결국 북한과 미국 모두 상대방이 준비해온 카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이러한 핵심의제에 대한 견해 차이는 정상회담 내내 드러났다. 28일 본격적으로 진행된 정상회담의 모두 발언에서 불안한 요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양국 정상은 기자들의 핵심의제에 대한 질문에 대해 포괄적이고 모호한 응답으로 일관했고, 회담 성과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속도보다는 옳은 합의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성과의 도출을 강조하면서 미묘한 차이를 보여줬다.
두 정상 모두 의제에 대한 논의의 시간이 더욱 필요하다고 한 점도 핵심의제에 대한 견해 차이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암시했다. 또한 대북강경파로 알려진 미국 존 볼턴(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의 확대정상회담 참여도 견해 차이를 좁히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은 합의에 실패했다. 그러나 회담 종료 후 양국이 상대방에게 보여준 태도는 생각보다 부정적이지 않았다. 회담 종료 후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정상회담이 여전히 생산적이었다고 평가했고, 구체적으로 다음 회담 일정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개최가능성을 언급했다. 또한 그는 북한이 핵실험과 ICBM 실험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신뢰하고, 현 수준에서 더 강력한 제재를 가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북한도 <조선중앙통신>과 <로동신문>에서 여전히 미국에 대한 신뢰를 보였고, 건설적인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역시 핵담판의 핵심은 비핵화와 대북제재 해제에 대한 시각의 일치이다. 아직 북한과 미국의 대화의 장은 깨지지 않았다. 상대방이 납득할만한 비핵화 카드와 상응조치 카드를 갖고 다시 만날 것이다. 물론 미국과 중국의 무역마찰, 미국의 국내정치 상황 등 제반 여건이 추후 회담 개최에 녹록지 않다. 다시 한반도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서 동참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