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문에 서명하지 못하고 마무리됐다. 지난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8개월여 만에 열린 양국 간 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걸었던 문재인 정부는 물론, 긍정적 회담 결과를 예상했던 많은 전문가들에게도 충격적인 결과였다. 빅딜도 스몰딜도 아닌 '노딜'이 되어버린 북미정상회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먼저 이번 회담을 통해 드러난 북미 양국의 협상 조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합의가 불발된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북한이 요구한 제재 완화가 합의 불발의 이유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북한이 완전한 제재 해제를 원했고, 핵 프로그램 상당수를 비핵화 할 준비가 돼 있었으나 미국이 정말 원하는 중요한 비핵화를 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영변이 대규모 시설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만 해체하는 게 미국이 원하는 모든 비핵화가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 고농축 우라늄 시설 등 기타 시설의 해체를 언급했다. 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영변 핵시설을 해체한다고 해도 미사일 시설과 핵탄두 무기 시스템 등이 남아있다며, 그 여러 가지 요소에 대해 북한과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추가로 핵 목록 신고도 언급했다.
이 같은 미국의 요구조건은 회담 전 북미 간에 진행된 실무협상의 의제를 훨씬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일각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동결 수준의 협상 결과를 추구하고 있다'고 지적한 내용과도 다르다. 회담 전 알려진 북미 간 실무협상의 주 의제는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와 플러스 알파, 그에 상응한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개설, 그리고 제재 완화였다. 이를 두고 넣고 빼기를 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밝힌 미국의 요구 조건은 영변 외 모든 북한의 핵시설과 핵무기들, 나아가 핵 프로그램 신고 리스트 등까지 망라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회자되던 '플러스 알파'는 '빅딜'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요구조건은 '빅딜'
북한이 요구했다는 '완전한 제재 해제'와 관련해서 북한은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합의 불발 후 10시간 후에 긴급하게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리용호 외무상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북한이 요구한 것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라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유엔안보리가 결의한 제재 중 북한의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5개의 결의안에 국한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부분은 북미 양측 각각의 해석과 판단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지목한 5개의 유엔안보리 결의는 리 외무상이 설명한대로 군사 분야의 제재는 아니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 말기부터 트럼프 정부 들어서까지, 북한이 핵개발로 전용할 수 있는 자금의 유입을 막기 위해 석탄 등 주요 수출품과 유류 등 수입품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이뤄진 제재들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전면적인 제재 해제 요구로 받아들일 수 있다.
리용호 외무상의 기자회견에서 보다 주목할 부분은 이번 회담에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구체적인 폐기 방안을 제안했다는 점이다. 리 외무상은 기자회견에서 ▲ 영변 핵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 하에 두 나라 기술자들의 공동작업으로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할 것과 ▲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실험발사를 영구적으로 중지한다는 확약도 문서형태로 줄 용의를 밝혔다고 말했다. 이는 기자회견 후 이어진 질의응답시간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말한 대로 "역사적으로 있어 본 적 없는 제안"이었다.
북한 핵개발의 산실이자 심장부로 평가되는 영변 핵시설 단지의 완전한 폐기와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의 영구적 중단 정도면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선 북한의 핵 위협으로부터 1차적으로 미국민의 안전을 보장받았다고 선언할 수 있는 카드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런 합의에도 응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주된 이유는 미국 내 트럼프 대통령이 처한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지난 싱가포르 제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미국 정가와 언론은 트럼프의 대북 정책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주류적 견해로 형성해 왔다.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엉성한 합의의 대가로 우리의 지렛대를 팔아치울 준비가 된 것 같다"며 "북, 중 모두에게 항복의 길을 가는 것 같다"고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표출했다.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의 정치적 연패를 돌파하기 위해 북에 베팅하고 있다"며 북미 간 합의의 결과를 폄하해 예상했다.
여기에 전직 미 행정부의 고위 관리들도 가세하는 양상을 보였다. 지난 2월 21일(현지시간), 제임스 클래퍼 전 미 중앙정보국(CIA)국장은 "북한의 비핵화는 애초 성공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했고 에번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태 수석 부차관보는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속도에 대해 서두르지 않으며 단지 북한의 핵, 미사일 실험이 없기를 원한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실험 없는 게 사실상 최종 목표라는 것을 밝힌 것"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보다 결정적인 것은 북미정상회담이 있기 1시간 전부터 시작된 마이클 코언의 미 하원 청문회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집사로 불렸던 코언 변호사는 청문회에 출석해 트럼프를 사기꾼, 인종주의자, 범죄자라고 칭했다. 그러면서 지난 2016년 대선 당시 경쟁 상대였던 힐러리 후보의 캠프에 타격을 준 위키리크스의 해킹 이메일 공개 계획을 트럼프가 미리 알고 있었으며, 러시아와의 유착 관계에 대해서도 보고 들은 바를 토대로 의심하고 있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
코언의 증언은 미 언론의 대대적인 조명을 받았다. CNN,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의 주요 언론은 북미정상회담 기사보다 코언의 기사들로 홈페이지를 도배했다.
관련해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코언에 주의를 빼앗기고 있다"며 "코언의 증언이 대통령을 모욕하고 그의 외교정책 목표를 훼손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청문회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으며 김정은 위원장과의 단독회담을 2시간 앞두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코언이 수감기간을 줄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코언의 폭로, 트럼프의 선택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에서의 정치적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민주당이나 주류 언론의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어떤 합의보다 불발을 선택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합의가 불발된 직후 미 정가는 트럼프의 결정에 이례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트럼프의 정적인 낸시 팰로시 미 하원 의장조차 "김정은의 작은 제안에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것도 주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의 언론매체 ABC가 "트럼프 대통령이 (코언)의 폭발적 증언으로부터 대중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보다 큰 헤드라인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보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대했던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북미 간 대화와 협상의 가능성은 열려있다. 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현 시점에서 합의에 도달하진 못했지만 양측은 미래에 만날 것을 고대하고 있다"며 "지난 며칠간의 결과를 보면 앞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우리는 아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폼페이오 국무장관 역시 출장차 필리핀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양측이 이루고자 하는 것 사이에 충분한 합의점이 있고 또 양 지도자 사이에 호의가 있는 것을 봤다"며 "우리가 대화할 이유가 있다고 확신한다"고 언급해 이후 대화와 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을 열어놨다.
북한도 언급한 리용호 외무상의 기자회견을 통해 합의 불발의 원인이 미국에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이전과 같은 비난이나 적대감을 표출하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북한 노동당의 공식 매체인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은 이번 회담을 "북미 양국 관계 진전에 기여한 의미 있는 계기"로 평가하며 "새로운 북미정상의 상봉을 기대한다"는 논조의 기사들을 내보냈다.
서로의 패를 알게된 북미, 2막이 오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북미정상회담의 양상을 1986년 있었던 미국과 소련 간의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에 비유하기도 한다. 냉전이 한창이던 당시 미·소는 핵전쟁의 위협에 직면해 있었고, 1985년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당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이 처음으로 만난다. 이로부터 1년여 뒤인 1986년 10월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다시 만난 두 정상은 중거리 핵 전력 감축을 위한 협상에 들어가지만 합의에 실패하고 만다.
당시에는 실패한 회담으로 평가되었으나 상대방의 요구 조건을 서로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후 협상의 중요한 근거가 만들어졌다. 이후 미·소 양국은 협상의 모멘텀을 이어가다 1987년 12월 세 번째 정상회담에서 사거리 500~5500킬로미터의 지상발사 순항미사일이나 탄도미사일에 대한 실험과 보유, 배치를 금지하는 '중거리 핵전력조약(INF)'에 서명한다.
이는 이후 냉전 완화의 신호탄이 되었으며 미·소 간 대결 종식의 지렛대가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돌아간 다음날 자신의 트위터에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그들은 우리가 받아야만 하는 것들을 서로 알게 됐다. 관계가 매우 좋은 만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
한반도의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 그리고 진정한 평화를 위한 여정의 제 2막이 오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석진씨는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