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이나 건강을 이유로 재판에 나오지 않았던 전두환씨(88)는 두 발로 걸어서 집 밖으로 나왔다. 이순자(80) 씨도 그의 뒤를 따라 대문을 나왔다. 전씨는 얼굴을 찡그리며, 자동차에 올랐다. 11일 오전 8시 30분 즈음, 전두환씨 부부가 탄 차량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는 그의 집에서 출발해 광주로 향했다.
"전두환 대통령님, 광주 가면 안 됩니다."
전씨 부부가 탄 차량이 골목길을 가로질러 빠져나가자 보수단체 집회자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연대 등 보수단체는 이날 오전 7시 30분부터 전씨의 집 앞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광주재판 인민재판"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약 50여 명은 '5.18 광주사태 내란 폭동이다', '5.18이 성역이냐', '전두환 대통령 강제구인 결사반대', '문재인 정권 인민재판 규탄한다'라고 적힌 펼침막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5.18 때 북한군 특수부대가 광주에 투입됐다'라고 주장하는 지만원씨도 집회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마이크를 잡은 지만원씨는 "5.18은 지역감정과 이념 대립 등이 복합적으로 엮인 대한민국의 핵심 쟁점 사항인데, 이념 싸움의 당사자를 왜 굳이 광주에서 재판받게 하는지 모르겠다"라며 "대한민국에 법원이 광주법원 하나밖에 없냐"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5.18이 뒤집어지면, 이 땅에 주사파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래서 저들이 이렇게 발악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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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님, 광주 가지 마세요"... 전두환 자택 앞 보수단체 시위 3월 11일 오전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씨가 광주지법에서 열리는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부인 이순자씨와 연희동 자택 앞을 나자 보수단체들이 "가지 말라"고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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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대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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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보인 집회 참가자도 있었다. 집회에 참가한 한 지지자는 '전 전 대통령님, 이순자 여사님 힘내세요'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꺼억꺼억' 소리를 내며 울었다. 한 지지자는 전씨의 집 인근에 있는 연희초등학교 옆 육교에 서서 전씨 부부가 탄 차량이 지나간 후에도 계속해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었다.
보수단체 집회 참가자들은 기자들을 향해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이들은 기자들이 생중계를 하며 "전두환씨"라고 발언하자 "김정은한테는 위원장이라고 꼬박꼬박 붙이면서, 왜 전두환 대통령님에겐 씨라고 부르느냐"라며 항의했다.
오전 8시 35분 즈음, 전씨 부부가 탄 차량이 사라지자 보수단체의 구호도 사그라들었다.
전씨는 오늘(11일) 오후 2시 30분,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법정에 설 예정이다. 전씨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리콥터에서 총을 쏘는 것을 봤다고 증언한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지난해 4월, 고 조비오 신부의 조카인 조영대 신부는 전씨를 상대로 광주지방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로써 전씨는 23년 만에 재판을 받게 됐다. 전씨는 12.12 군사반란과 5.18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구속기소 돼 지난 1996년 1심과 항소심 재판에 출석했다. 전씨의 이번 재판 출석은 5.18민주화운동이 발생한 지 39년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