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국의 보수정당들은 항상 유리한 싸움을 해왔다. 왜냐하면 이들이 주장하는 반공, 성장이라는 단어들은 국민 대다수에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보수정당을 지지해야만 한다는 정서적 태도를 만들어 냈던 마법과 같은 단어들이다. 위와 같은 단어에 터하고 있는 보수정당은 그간 선거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느시점에서부터인가 보수의 '언어'가 국민들에게 와닿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반공이라는 단어나 성장만이 답이라는 주장은 와닿지 않는 것을 넘어 많은 이들에게는 즉시 손사래를 치게 만드는 그런 부정적 단어가 되어버린 지점 역시 존재한다.

우리가 보수의 언어를 인식하는 데 어떤 변화가 있던 것일까. 더 나아가 이와 같은 단어가 주는 이미지 생산은 어떤 구조를 통해서 만들어졌던 것일까. 그리고 지금 한국 보수정당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찾아가고 있을까.

 
 조지 레이코프&엘리자베스 웨흘링, 2018,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 생각정원
조지 레이코프&엘리자베스 웨흘링, 2018,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 생각정원 ⓒ 도서출판 생각정원
 

이에 대한 적실한 해답을 주는 저서가 있다. 우리에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로 잘 알려진 조지 레이코프가 엘리자베스 웨흘링과 함께 저술한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가 그 저서이다. 저자들은 보수가 쓰는 단어와 이에 관련한 은유에 주목하면 논의를 이끌어 나간다.

* 강력한 힘. 은유(metaphor, 隱喩)

우리는 수많은 은유적 표현을 사용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많다'는 표현을 높이로 표현하는 것이다. "물가가 상승했다.", "주가가 최고치를 찍었다"와 같은 '많다'는 표현은 주로 높이로 표현된다. 이 과정 속에서 양이 많다는 것은 곧 높아지고 있다는 긍정적 이미지를 준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은유적 표현은 그 표현 대상이 고차원적일수록 필수적인 요인이 된다.

국가를 가정에 비유하는 것 역시 위의 대표적 사례이다. '건국의 아버지들', '모국(母國)', '국가의 자녀들을 전쟁터에 내보낸다' 등등 그 비유는 넘쳐난다. 이와 같이 국가를 가정과 비유하는 방식은 인간이 최초로 권위를 경험하는 공간이 가정이라는 점에 기반한다.

개인들은 가정에서 받은 가정 운영 방식을 기반으로 국가 운영 방식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우리 머리 속의 자연스러운 은유로 인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정생활이 이상적인 국가관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다. 보수주의자들은 이 구조를 알고 있었고 끝없이 가정의 가치를 역설한다는 것 역시 저자의 주장이다.
 
 건국의 '아버지' 개념을 언급할 때 주로 사용되는 작화인 John Trumbull 의 'Declaration of Independence'
건국의 '아버지' 개념을 언급할 때 주로 사용되는 작화인 John Trumbull 의 'Declaration of Independence' ⓒ John Trumbull
  
* 엄격한 아버지=보수 vs 자애로운 부모=진보

이에 대해 저자들은 구체적으로 보수는 엄격한 아버지, 진보는 자애로운 부모라는 다른 가치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엄격한 아버지로서의 보수는 세상은 경쟁이 기반이며 인간은 절제력 없이 태어난다고 가정한다. 그러기에 엄격한 부모로서 자녀에게 도덕성과 절제력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도구로써 엄격한 원칙에 기반한 처벌을 강조한다.

이와 같은 엄격한 아버지로서의 보수의 가치가 정책에서 발현되는 것이 복지와 과세이다. 보수는 복지와 과세가 확대되는 것을 반대한다. 무절제하고 비도덕적이기에 빈곤층이 된 건데 국가가 이를 보조한다는 것이 이치에 안 맞는다는 것이다. 과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절제력과 도덕성이 뛰어나 성공한 이들에게 더 많이 과세한다면 이것도 이치에 안 맞는다는 것이 보수의 주장이다. 위와 같은 가치체계 속에서 보수가 선택한 핵심키워드이자 사회를 보는 대전제가 최강자의 생존, 자유시장인 것이다(97-112*).

반대로 자애로운 부모상으로서의 진보는 아이들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부모의 상을 기반으로 사회를 바라본다는 점을 저자들은 지적한다. 아이가 겪고 있는 문제는 개인적인 책임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 역시 존재하기에 부모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진보의 가치라는 것이다. 자애로운 부모상으로서의 진보에게 옳고 그름의 뚜렷한 구분이 없다는 점을 저자들은 주장한다. 대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이입하는 것을 자녀에게 가르친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 앞에서 동성애 퀴어축제 반대하는 시민들이 동성애는 창조질서와 가정을 파괴한다며 동성애를 반대하고 있다.
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 앞에서 동성애 퀴어축제 반대하는 시민들이 동성애는 창조질서와 가정을 파괴한다며 동성애를 반대하고 있다. ⓒ 유성호
 
위와 같은 차이가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사례 중 하나가 동성혼이다. 보수에게는 동성혼은 기존 도덕적 질서가 약화된다고 보기 때문에 동성혼을 반대한다. 반면 진보는 관용으로 동성애 자체를 받아들여야 함을 주장한다. 도덕적 체계의 차이가 만든 정책선호의 차이인 것이다(113-138).

*보수의 이야기가 더 끌리는 이유는?

저자들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인식에 대해 주목한다. 인간은 상대방의 행동과 감정을 본인도 느끼게 만드는 '거울 뉴런'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5세 이전의 경험이 인생에 매우 강하게 작동하는데, 부모가 엄격한 훈육을 했거나 자애로운 공감을 했느냐에 따라 거울 뉴런이 구조화되어 엄격한 보수, 혹은 자애로운 진보라는 정치관이 형성된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물론 두가지 상이 혼합되는 것도 가능하다는 점을 저자는 주목한다(139-153).

저자들은 위와 같이 두가지 상이 혼합된다는 점에서 보수의 이야기가 더 끌리는 이유를 설명한다. 구체적으로 레이건 미 대통령의 사례를 제시하는데, 대선 당시 레이건 캠프에서의 선거 결과 자체조사에서 레이건 지지자들은 레이건의 정책에 대해서는 지지를 하지 않는 이상한 결과가 나타났다. 지지지들은 단순히 레이건이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가치'를 보고 레이건을 지지하고 있었다.

레이건 캠프는 이를 인식하고 가정에서의 엄격한 아버지의 태도로 자신들의 정책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정부의 예산이 기존 예산을 초과한다면 절약을 해야 한다는 방식으로 복지 감소 정책을 이야기 했다. 이는 엄격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난 블루칼라 노동자 계급에게도 적중했고, 당시 미국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받을 확률이 높은 복지혜택이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레이건을 지지했다. 유권자는 세부적 정책보다는 가치나 태도에 투표하게 되기 때문이다(155-162).
 
 27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제3차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황교안 후보가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황 후보와 경쟁했던 김진태 후보의 표정이 굳은 반면, 오세훈 후보는 비교적 밝아 대비를 이룬다.
27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제3차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황교안 후보가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황 후보와 경쟁했던 김진태 후보의 표정이 굳은 반면, 오세훈 후보는 비교적 밝아 대비를 이룬다. ⓒ 남소연
 

* 한국보수 위기의 핵심. '언어'

서론에 서술하였듯이 한국 보수정당의 언어는 이제 시대가 지난 언어가 되어버렸다. 반공주의, 성장절대주의 모두 이제는 한국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단어가 아니게 된 것이다.

한국 보수정당들은 이를 인지하고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들만의 언어를 찾지 못하고 있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결과 자신들의 핵심 지지자들이 선호할만한 언어만을 사용하게 되었으며 한국 보수정당 특유의 확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과연 한국 보수정당들은 '보수의 언어'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미국의 레이건이 해냈던 자신들의 본질은 유지한 상태로 상대 유권자까지 가지고 올 수 없다면 어느새 1년 앞으로 다가온 21대 총선에서도 그들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지를 얻게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기재 되어있는 인용구는 모두 조지레이코프&엘리자베스웨흘링(2018,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 생각의 정원)의 저서 페이지에 기반한다.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 - 인지 과학이 밝힌 진보-보수 프레임의 실체

조지 레이코프 & 엘리자베스 웨흘링 지음, 나익주 옮김, 생각정원(2018)


#조지 레이코프#엘리자베스 웨흘링#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회학/사회복지학 학사 졸업. 사회학 석사 졸업. 사회학 박사 수료. 현직 사회복지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