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은 아리랑의 고장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다. 지리적 여건은 비교적 넓은 범위의 내륙 산간 오지다. 그리고 한 때는 이 나라 전 국민이 사용하던 무연탄을 상당부분 생산하던 고장이었다. '함백탄좌'와 '사북탄좌'가 바로 그 대표적인 장소다.
함백, 사북, 석항, 예미, 추전, 여량, 자미원, 증산, 고한, 구절리 모두 수 없이 많은 탄광들이 있었다. 그곳엔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는 말이 항간에 떠돌 만큼 물자와 물질이 넘치던 시절이 있었다. 그만큼 70~80년대 한국 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냈다.
1980년 대 초반부터 이제까지 정선은 질긴 인연으로 맺어졌다. 다른 기회로 그 시절 처음 인연이 된 일에 대한 소회를 풀겠다. 오늘은 정선아리랑의 다양한 노랫말을 찾아다녔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정선아라리의 노랫말을 소개한다. 누군가에겐 처음 만나는 우리 민요의 다양성이겠고, 또 누군가에겐 강원도 정선의 아라리에 대한 자료가 될 수도 있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萬壽山) 검은 구름이 막 몰려든다
고려 말 기울어가는 국운을 체감으로 느낀 이들이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인 정선 땅으로 숨어들었다. 그들이 부른 것이 정선아리랑의 시월이라고 하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가사다.
이미 땅의 기운은 쇠락한 상태라 음산한 자연의 영향을 받아 곧 꺾일 운명이다. 나라가 멸망하는 과정을 그대로 지켜 볼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는 인간의 심란한 감성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비교적 높은 가문의 학자가 지은 것으로 여겨지는 노랫말이다. 순수 민초들이 시절과 시대에 따라 달리 불렀던 노래(소리)와는 상당한 문법적 차이를 보이고 있다.
조복을 갖춰 입고 서산에 올라 송경을 바라보며 목 놓아 운다
요순성대 간 곳 없으니 몸 둘 곳 몰라라
관직을 떠나는 길은 둘이다. 하나는 삭탈(削奪)이요, 둘째는 낙향(落鄕)이다. 임명권자에 의해 관직을 빼앗기는 삭탈을 당한 자가 조정에 나가 하례할 때 입던 복장을 갖춰 입고 서산에 오를 일 있겠는가. 어쩔 수 없는 조건에서 목숨이나마 부지하려 관직을 버리고 떠나왔기에 임금에 대한 충절을 지키지 못한 신세가 한스럽고, 임금의 안위가 염려되어 정선에서는 임금이 계신 곳과 가장 가까운 서산을 올랐으리라.
명사십리가 아니라면은 해당화는 왜 피고
호춘 삼월이 아니라면은 두견새는 왜 우나
맑은 모래 십리 바닷가도 아닌데 해당화가 피고, 좋은 봄 3월도 아니건만 두견이(종달새)는 왜 우느냐는 자조적 한탄을 할 수밖에 없는 서글픔을 노래했다. 인간은 반어적으로 심란할 때 음울한 노래를 불러 그 서러움과 음울한 기운을 풀어놓으려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결과적으로 음산한 느낌으로 보이는 자연과 사물은 오히려 서글픔을 위로하는 매개로 작용해내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 대중가요를 한 번 살펴보자. 해방 이전이나, 6. 25를 겪고 난 직후의 우리 대중가요를 봐도 충분히 공감 할 수 있다. 사물의 음울하고 쓸쓸한 기운에 빗대어 자신의 비참함을 상쇄시키려 한다. 시절 모르는 두견이의 애절한 소리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자 하는 발상의 전환인 것이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행복 추구의 또 다른 방식이 아닐까.
들꽃을 촬영하러 나서면 많은 이들을 현장에서 만난다. 혼자 조용히 둘러보려는 생각은 여지없이 깨진다. 더러 "어떻게 하면 그 많은 야생화를 다 외워요"란 질문을 받는다. 참 난감하다. 국어나 영어단어처럼, 수학공식처럼 외워서 기억한다면 좋겠지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외워서 배운다는 생각부터 뭔가 모순이라 생각한다.
정선아라리의 고장은 동강할미꽃이 가장 널리 알려진 들꽃이니 그 예로 설명한다. 처음엔 그냥 할미꽃 하나만 안다. 아니 할미꽃은 누구나 다 아는 꽃이다. 어려서 동요로 배워 어렵지 않게 기억한다. "뒷동산에 할미꽃 꼬부라진 할미꽃"으로 배웠다.
동산에서 할미꽃이 아무데나 피지 않건만 동요는 그렇게 일러줬다. 이곳 양양에선 모양은 비슷한데 색이 연한 분홍색할미꽃이 있었다. 최근엔 만나지 못했지만 나중에야 그건 '분홍할미꽃'으로 분류된다는 걸 배웠다. 그리고 노란색 할미꽃을 만나자 "분홍색 할미꽃이 분홍할미꽃이니 이건 노랑할미꽃이겠군"이라 생각했고 틀림없이 예상이 맞았다.
그런데 난감한 문제는 언제든 일어난다. 할미꽃은 분명히 할미꽃인데 고개를 숙이지 않고 하늘을 향해 꼿꼿이 고개를 새워 마치 하늘매발톱꽃 같은 모양이라니. 사진을 보여주며 물어도 "할미꽃이네. 그냥 색만 다르구만 뭐"라며 신통한 대답을 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십 몇 년 세월이 흐른 뒤에야 정식으로 '동강할미꽃'이란 이름을 얻게 된 정선 동강의 할미꽃이다.
단순하게 '할미꽃'으로 시작을 한 다음 서서히 색상이 다르고 잎의 모양이 다르다는 걸 보고 배운다. 그리고 꽃받침이 다르고, 자생지의 조건이 다른 걸 느껴가며 하나씩 배워간다. 정선아라리도 그와 같은 방법으로 알아갔던 날들이 아득하다.
"아리랑은 아리랑인데 이건 뭐지" 처음 정선아라리를 부르는 걸 들었을 땐 그냥 지어서 부르는 걸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워낙 다양한 노랫말에 홀렸다. "그 양반 거 참 기억력도 좋고, 재주도 용하네"란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정선엔 그렇게 재미있게 아리랑을 노래하는 이들이 많다는 걸 알았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강원도 금강산
일만 이천 봉 팔만 구 암자
유점사 법당 뒤 칠성당에 모두 모여
팔자에 없는 아들딸 나 달라고
백일기도를 드리지 말고
타관객지 외로이 떠난 사람 괄시를 마소
정선읍에 물 나드니
허풍선이 굴굴대는 사시장철 물거품을 안고
요리조리 조리요리 비비배뱅글 돌아가는데
우리 집에 내 낭군은 돌아 올 줄 모르네
하춘화가 부른 '강원도아리랑'으로 알려진 노래다. 1972년도 이 노래를 어린 나이에 따라 불렀던 기억으로 미뤄 그해나 그보다 일찍 불렀을 수 있다. 고봉산 작사, 작곡으로 된 이 노래는 요즘 같으면 표절시비에 휘말려도 할 말 없다.
그런데 1982년 정선군에서 '정선아리랑'를 녹음한 카세트테이프를 판매하기에 구입했는데 그 테이프엔 "정선아리랑은 강원도아리랑에 잇대어 부른다"고 밝혀 놓아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당시로서는 정선아라리를 상당한 인기를 끈 하춘화란 가수의 강원도아리랑에 붙여서라도 알리고 싶은 욕심은 아닐까 생각된다.
여하튼 정선아라리는 우리 민족, 그 중에서도 민초들의 팍팍한 삶의 다양성만큼이나 '아리랑' 중에서도 특히 파격적인 다양성을 지니고 있는 소리다. 젊은 세대들이 부르는 '랩'이 있다. 정선아라리는 오래전부터 '랩'과 같은 형식의 소리까지 엮어냈다. 엮음아리랑(엮음아라리)로 불리는 가사들이다. 그 중에서도 정말 특별한 부분 몇 수만 여기 소개를 하겠다.
영감은 할멈치고 할멈은 아치고 아는 개치고 개는 꼬리치고 꼬리는 마당치고
마당웃전에 수양버들은 바람을 휘몰아치는데 우리 집에 저 멍텅구리는 낮잠만 자네
우리 집에 서방님은 잘났던지 못났던지 얽어매고 찍어매고 장치다리 곰배팔이
노가지나무 지게위에 엽전 석 냥 걸머지고 강릉 삼척에 소금 사러 가셨는데 백복령 굽이굽이 부디 잘 다녀오세요
네 칠자나 내 팔자나 한번 여차 죽어지면 겉 매끼 일곱 매끼 속 매끼 일곱 매끼 이 칠에 십사 열네 매끼 참나무 댓가래 전나무 연춧대 스물두 상두꾼에 너호 넘차 발맞추어 시방시체 개명말로 공동묘지 석자 석치 홍대칠성 깔고 덮고 축 늘어지면은 어느 동기 어느 친지가 날 찾아오나
니 칠자나 내 팔자나 네모 반듯 왕골방에 샛별 같은 놋요강을 발치만치 던져놓고 원앙금침 잣베개에 앵두 같은 젖을 빨며 잠자보기는 오초강산에 영 글렀으니 엉틀멍틀 장석자리에 깊은 정만 두자
산진매 수진매야 휘휘 칭칭 보라매야 절끈 밑에 풍경 달고 풍경 밑에 방울 달아 앞 남산에 불까투리 한 마리를 툭 차가지고 저 공중에 높이 떠서 빙글 배뱅글 도는데 우리 집 저 멍텅구리는 날 안고 돌 줄 왜 몰라
당신이 날 마다하고 울치고 담치고 열무김치 소금치고 오이김치 초치고 칼로 물 치듯이 뚝 떠나가더니 평창 팔십리 다 못가고서 왜 또 돌아왔나
동네 어른들 들어 보시오 우리 시어머니 뒤로 보면 왕댓골 앞으로 보면 숫돌님 고리눈은 전등팔 옥니배기 주개턱 자래목 등곱새 배불래기 수중다리 밥자루 쥐고야 날 때리더니 강림도령 모셔가더니 지금은 소식이 없어요
아들 딸 낳지 못해서 강원도 금강산 찾아가서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 마다 봉봉 마루 끝에 찾아 가서 칠성당을 모다 놓고 주야삼경에 새움의 정성에 치성불공을 말고 타관객지 떠난다는 손님을 푸대접을 말게
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 자자 봉봉에 칠성당을 모다 놓고 겉 돈 벌라고 산제불공을 말고서 힘대 힘대 일을 하여 자수성가합시다
자진모리장단이나 휘몰이장단을 넘어서는 파격적이고 숨 가쁜 민초들의 삶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소리고 노랫말들이다. 여기에서 맨 아래 두 가지 노랫말이 하춘화가 불렀던 강원도아리랑의 원형으로 봄이 옳다.
가수 고봉산은 '울어라 기타줄'을 손인호란 가수가 취입하자 오래 연습하고도 자신이 부르지 못함이 화가 나 용두산엘 올라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작곡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작곡자가 마음대로 곡을 다른 가수에게 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었다는 '용두산 엘레지'의 고봉산이 어딘가에서 정선아라리의 이 엮음아라리를 듣고 일부 뜯어 고쳐 자신의 작사, 작곡으로 만들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대체로 긴아리랑(아라리)이 철학적이며 조금 은유적이라면 이 엮음아라리는 꾸밈도 없고 솔직담백하다. 감히 사대부의 여인들로써는 상상도 못할 남녀 사이의 성(Sex)에 대해서도 여과 없이 보여주기도 한다.
우선 이 정도만 얘기해도 한 번에 읽기엔 너무 길지 싶다. 일단 여기서 '시김새'란 우리 가락의 중요한 구성요소 하나가 정선아라리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 살펴보고 다음 편에 정선아라리의 또 다른 맛이 진득한 노랫말들을 소개하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정선아라리의 특징적 요소는 바로 이 후렴구로 부르는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산이 겹겹으로 싸여 외지로 나가려면 고개 하나로는 도저히 뜻을 이룰 수 없다. 자연스럽게 후렴구에 고개가 중복되어 나타난다. 끊어질 듯 애잔하면서도 길게 늘어지는 정선아라리만의 독특한 후렴구를 제대로 표현하면 다른 노랫말은 그 나름의 지닌 음률에 저절로 이어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