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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은 고소인(A씨)에게 발급된, 오른쪽은 피고소인(B씨)에게 발급된 불기소이유통지문이다. 각각 하단을 보면, 왼쪽엔 비고란에 '무고판단'이 들어가 있지만 오른쪽은 빠져 있다.
왼쪽은 고소인(A씨)에게 발급된, 오른쪽은 피고소인(B씨)에게 발급된 불기소이유통지문이다. 각각 하단을 보면, 왼쪽엔 비고란에 '무고판단'이 들어가 있지만 오른쪽은 빠져 있다. ⓒ 소중한

2015년 11월 광주에 거주하는 A(여, 50대)씨는 역시 광주에 거주하는 B(남, 60대)씨를 강간치상 혐의로 형사고소했다. B씨가 차 안에서 강간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복장뼈(가슴 앞쪽 한가운데 위치한 세로로 길쭉하고 납작한 뼈)가 골절됐다는 이유에서였다. A씨는 사건 이후에도 B씨가 여행을 가자는 등 성관계를 암시하는 제안을 계속하자 고소를 마음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2016년 4월 검찰은 이 사건을 재판에 넘기지 않았다. 이 사건을 수사한 광주지검은 "승용차 안에서 피의자(B씨)와 고소인(A씨)이 신체적 접촉이 있었던 사실, 이후 고소인이 약 4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복장뼈의 골절상을 입은 사실이 각 인정된다"라면서도 "고소인의 진술만으로는 피의자가 강간의 고의로 고소인의 가슴부위를 눌러 바지 속에 손을 넣으려고 하였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라고 판단했다.

또 "피해자(A씨)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당시 '어제 벽에 부딪힌 후 통증이 발생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A씨측은 "B씨의 거짓 변명과 특별한 이유 없이 가해자 입장에 편중돼 입증 정도를 판단한 수사 검사의 소극적 판단"이라며 "병원에서 벽에 부딪혔다고 말한 것도 수치심 때문이었다, 병원에 가서 '강간을 당하다가 다쳤다'고 하는 사람이 어딨나"라고 반박했다.

광주지검의 판단에 따라 결국 B씨는 기소되지 않았다. 해당 '불기소이유 통지문(아래 통지문)'의 처분요지 항목에는 '혐의없음(증거불충분)'이라고 적혔다.

문제는 그 후에 발생했다. 무혐의 처분을 받은 B씨는 2017~2018년 사이에 A씨를 무고 혐의로 형사고소했을 뿐만 아니라 민사소송(손해배상청구)까지 제기했는데, 이 과정에서 A씨와 B씨가 받은 통지문이 서로 달랐던 것이다.

통지문 맨 하단에는 비고 항목이 있다. 여기엔 통상 '무고판단'이 들어간다. 검사가 혐의없음 처분을 내릴 경우, 고소인이 허위로 고소를 했는지 판단해 비고란에 기재하는 것이다.

A씨가 받은 통지문 비고란엔 "무고판단: 고소인에 대한 무고혐의는 인정하기 어려움"이라고 적혀 있었다. 검사가 B씨의 강간치상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A씨가 거짓으로 B씨를 고소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B씨가 받은 통지문 비고란엔 아무 내용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A씨 측은 B씨가 통지문을 위조한 것으로 보고 공문서 위조·행사 및 무고 혐의로 B씨를 형사고소했다.

"어떻게 공문서 신뢰하겠나"    
  
 광주지방검찰청
광주지방검찰청 ⓒ 광주지검

그런데 광주지검 수사 과정에서 뜻밖의 진술이 나왔다. 서로 다른 통지문 발급과 관련해 광주지검 민원실 측이 자신들의 실수였다고 진술한 것이다. 광주지검 민원실 관계자는 검찰 수사에서 "킥스(KICS, 형사사건·재판 통합전자시스템) 시스템 상 '무고판단을 위 통지서 비고란에 기재 후 발급하는 것'은 직원의 선택 또는 임의사항이다, 업무가 바쁘면 위 문구를 기재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발급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당 직원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 측은 "통지문에 무고판단이 있다고 해서 피고소인(여기서는 B씨)이 무고 고소를 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무고 고소를 결정하는 데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라며 "강간치상의 피해를 입고도 억울하게 그 사건이 불기소된 것도 모자라 무고로 고소 당해 고통을 겪고 있다"라고 호소했다.

이어 "(광주지검 민원실 관계자에 따르면) 발급 직원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건데, 그러면 국민이 공문서를 어떻게 신뢰하겠나"라며 "관행적으로 그렇게 해왔다면 그것에 대한 감사와 징계가 필요한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B씨의 공문서 위조 등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광주지검도 "특별한 내부 규정 없이 위 통지서 발급이 마치 관행적으로 이어져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수도권 검찰 관계자는 "검사가 무고판단을 내리지 않은 사례에 결정적 결함이 있다곤 할 순 없지만, (무고판단이 내려졌음에도) 고소인과 피고소인의 통지문이 다른 건 통상적으로 발생하는 일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수도권 외 검찰 관계자도 "사소한 실수 문제인 것 같지만, 그렇게 (통지문의 무고판단이) 누락되는 건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사건과 관계가 없는 한 변호사도 "불기소이유서가 고소인-피고소인에게 서로 달리 발급되는 사례는 못 봤다"라며 "무고로 역고소를 당한 A씨로선 황당할 수 있는 상황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검찰#광주지검#성범죄#불기소#통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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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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