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탄씨는 "한국까지 정말 어렵게 왔다"면서 "한국 정부로부터 정말로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사과"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4일 오후 두 명의 베트남인 응우옌티탄(동명이인)씨가 베트남전쟁 참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생존자와 유가족 103명을 대표해 청와대 앞에 섰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조사 등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청원서에 △진상조사 및 사실인정 △희생자에 대한 공식입장 표명 △피해회복을 위한 조치 등 요구를 담았다.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와 유족이 우리 정부에 공식적으로 진상조사 등을 요구하는 서면을 제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8살에 가족 5명 잃고... 나는 옆구리에 총 맞았다"
베트남 꽝남성 퐁니마을 학살 생존자 응우옌티탄(1960년생/사진 속 초록외투)씨는 "저는 8살에 한국군의 학살로 가족을 다 잃고 전쟁고아가 됐다"면서 "그날을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오늘은 마을 피해자들을 대표해 청와대에 청원서 전달하기 위해 어렵게 왔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시민평화법정에서 증언하기도 했지만 한국 정부로부터는 답을 듣지 못해 실망을 거듭했다"라면서 "이번에는 103명의 피해자들이 직접 서명한 청원서를 들고 한국을 찾았다. 한국정부가 청원서를 세심히 살펴, 저와 같이 온몸으로 증언하는 베트남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주기를 바란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퐁니마을 학살 생존자 응우옌티탄씨는 이번이 세 번째 한국방문이다. 첫 번째 방문은 피해 사실을 증언하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4월 두 번째 한국을 찾았을 때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한국-베트남평화재단 등이 진행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진상 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에 소송의 원고로 참여했다.
당시 시민평화법정에 선 그는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시 디엔안구 퐁니마을 집 주변에서 한국군이 쏜 총에 왼쪽 옆구리를 맞아 중상을 입었다"라고 증언했다. 8살의 그가 부상 당하는 사이, 가족 5명은 목숨을 잃었다.
"엄마와 오빠 시신을 지금도 찾지 못했다"
베트남 꽝남성 하미마을 출신의 또 다른 민간인 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탄(1958년생/사진속파란외투)씨도 지난해 시민평화법정에 이번에 두 번째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1968년 1월 24일 한국군에 의해 135명이 희생 당한 하미마을 학살 생존자로, 당시 어머니와 동생을 잃었다. 당시 10살이었던 그는 수류탄에 왼쪽 귀의 청력을 상실했다. 왼쪽 다리와 허리에 수류탄 파편이 박혔던 상처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응우옌티탄씨는 "이번에 한국을 찾기 전 고향 하미마을의 위령비를 찾아 그날 쓰러져간 135명의 마을 사람들에게 향을 피웠다"라면서 "그들에게 제가 한국에서 모든 진실을 밝히고 돌아올 수 있도록 보호해 달라고 빌었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하미마을 위령비 뒷면에는 원래 과거 한국군의 전쟁 범죄를 기록한 비문이 있었다"라면서 "지금은 그 비문이 한국 대사관 압력에 의해 덮였다. 학살의 상처를 입은 주민들은 비문을 덮는데 결코 동의하지 않았다"라고 강조했다.
응우옌티탄씨는 "이번에 제주4.3 위령제에 갔을 때 행방불명 돼서 시신을 찾지 못한 가묘가 있는 것을 봤다"면서 "그 아픔은 내가 겪은 아픔과 다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고향 하미마을도 다르지 않다. 나 역시 엄마와 동생의 시신을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라고 덧붙였다.
두 명의 응우옌티탄씨는 지난해 4월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에 원고로 참석해 학살 당시 상황을 증언해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다. 베트남에 돌아가서도 평화인권운동가로 활동했다. 이러한 공로로 지난 1일 제3회 제주4.3평화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90일 이내에 처리 결과 통보해야"
이들은 이날 청원서에 "우리는 청원서를 통해 무엇보다 한국 정부에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생존자들은 사과를 원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리고 싶다"라면서 "'베트남 정부가 한국의 사과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한국 정부 누구도 우리에게 찾아와 사과를 원하는지 묻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정부는 일본에 의해 식민지배를 당했던 불행한 시기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여전히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의 이런 입장과 태도는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에 있어서도 일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법률대리인을 맡은 임재성 변호사는 "생존자들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까지 20년이 걸렸다"라면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등 어떤 것도 이뤄지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임 변호사는 "피해자 103명의 청원서를 두 명의 대표자가 들고 왔다"면서 "피해자들은 지금 베트남에서 한국 정부가 과연 어떤 답변을 해줄지 매우 큰 기대를 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청원법 제9조 3항에 따르면 정부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90일 이내에 처리 결과를 청원인에게 알려야 한다.
"민간인학살 문건 공개하라"
이날 임 변호사는 "그동안 한국군의 민간인학살 진상 규명과 피해 복구 등 어떤 절차도 이뤄지지 않았다"라면서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국정원에 베트남전쟁 당시 민간인학살에 가담한 군인들을 조사한 문서를 공개할 것을 수차례 요구하고 승소까지 했지만, 여전히 숨기고 있다. 국정원은 반드시 이 문서를 공개해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임 변호사가 말한 문서는 미군이 '퐁니·퐁넛 민간인학살 사건'을 조사한 문서로, 1968년 2월 12일 베트남전쟁에 투입된 한국군 청룡부대(해병제2여단)가 베트남 중부 꽝남성의 퐁니·퐁넛마을 주민 74명을 살해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미군은 참전 군인인 최영언 중위(해병 포항상륙전기지사령부 훈련 교장관리대 사격장 보좌관), 이상우 중위(경남 진해 해병학교 구대장), 김기동 중위(포항 파월특수교육대 근무) 등을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신문조서 등을 작성했다. 1972년 8월 14일 마이크로필름화 작업부서에서 이 조서 등을 장기간 보관하기 위한 작업을 하면서 관련 문서 목록도 만들어졌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2017년 8월 국정원에 '1969년 옛 중앙정보부가 참전군인 3명을 상대로 베트남 퐁니 마을에서 일어난 민간인 살인 등을 조사한 내용을 밝히라'면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당시 국정원은 '정보가 공개되면 중대한 국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라면서 거부했다.
민변은 행정소송을 냈고, 지난해 11월 서울고등법원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국정원이 보유한 이 조사 문건 목록을 공개해야 한다'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현재까지도 관련 문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