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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 없는 세상 사춘기 동생이 있다면 꼭 권해주고 싶은 책, 누구나 이야기 하기 꺼려하는 '성'에 대해 시종일관 밝고 경쾌하며 재치있게 풀어내고 있다.
동정 없는 세상사춘기 동생이 있다면 꼭 권해주고 싶은 책, 누구나 이야기 하기 꺼려하는 '성'에 대해 시종일관 밝고 경쾌하며 재치있게 풀어내고 있다. ⓒ 이의성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동정 없는 세상'을 꿈꾸는 고등학생의 일상을 담고 있다. <아내가 결혼했다>로 본격적인 유명세를 탔던 박현욱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라 하니 읽을 이유는 충분했다. 이미 드라마로도 제작된만큼, 이야기의 재미는 이미 보증된 것이나 다름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공부는 늘 뒷전이면서 여자와 동침을 하는 것이 소원인 준호에겐 두 명의 가족이 있다. 서울대 법학과를 나왔지만 자발적 백수를 면치 못하고 있는 삼촌 명호, 그리고 명호의 누나이자 주인공 준호의 엄마인 미혼모 숙경씨가 그들이다. 이처럼 가족 구성원의 스펙 면면을 보면 범상치 않다. 자의던 타의던간에 결여되고 결핍된 무언가를 하나씩 가지고 있지만 이들의 가치관은 어느 누구보다 바르며 온전하며 건강하다.

이 책은 주인공 준호와 준호의 가족들이 이야기하는 건강한 성에 대한 담론을 담고 있다. 맞담배를 권하기도 하며 성생활을 권면하기도 하는 삼촌 명호씨도 그렇거니와 평범한(?) 부모들처럼 공부를 강요하며 윽박지르지 않는 엄마 숙경씨까지.

이들이 준호에게 전하는 애정 어린 조언과 이야기들은, 마냥 준호 개인을 향한 것이라기보단 책을 읽는 준호 나이의 독자들, 그리고 숙경씨 나이의 엄마들에게 향한 이야기인 듯 느껴진다. 작가는 책의 인물들을 통해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독자들에게 은유적으로 건네고 있다. 어른들이 여전히 쉬쉬하고 있는 이야기들에 대해 작가는 숙경씨의 입을 빌려 아이들에겐 따뜻한 조언을, 어른들에겐 따끔하게 일침하려는 듯하다.

겉으로 보면 왠지 동정이 필요할 것 같은 '미혼모' 타이틀의 숙경씨는, 알고 보면 동정이 필요 없는, 오히려 누구보다도 씩씩한 생활을 하고 있다. 역시나 '백수' 타이틀을 달고 있어 측은지심이 드는 게 당연할 것 같은 삼촌 명호씨 역시 기실 동정이 필요 없는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

명호씨와 숙경씨가 많아지는 세상을 꿈꾼다

작가는 흡사 본인의 자전적 이야기인 것마냥 사실감 있는 고3 생활을 묘사하고 있다. 학업의 내용은 애써 끼워 넣으려 해도 머리에 잘 들어가지도 않지만, 심도 있고 방대한 성지식은 흘깃 보기만 해도 머리 속에 쏙쏙 잘도 들어오는 시절 아닌가. 감추고 은폐해야만 하는 분위기가 팽배한 게 이 시대 청소년들의 성이라면, 이 책은 가장 건강한 방식으로 성에 대한 담론을 나누고자 했다.
   
구성애씨처럼 목에 핏대 세워가며 건강한 성생활을 설파하지도, 그렇다고 애들은 알 것 없다는 식으로 은폐, 엄폐하려 하지도 않는다. 고3인 준호씨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숙경씨와 명호씨의 조언을 통해 건강한 성의식을, 그리고 건강한 가치관을 자연스레 고민하게 된다.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까닭 모를 불안감에 쉬이 따라올 수 없는 그 정답에 대해 작가는 지극히 현실적인 상상도를 보여줌으로써 불안감을 해소시키려 하는 듯 보인다. 구속과 통제보다 필요한 건, 다름 아닌 아이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사랑이라는 정답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섹스를 하는 것도 사실은 두렵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물이 되는 그 자체가 두렵다. 스물이 되어봤자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 그냥 이대로, 언제까지나 열아홉일 수는 없을까.  

작가 역시 언급하듯, 과거 농경사회에선 열다섯, 열여섯이면 어엿한 성인으로 인정 받아 한 가정을 꾸릴 수도 있는 나이였다. 산업의 발달과 함께 사회 진출이 늦어져 '성인'의 정의가 (사실 그 경계도 모호하건만) 스무 살 남짓으로 올라간 지금, 이미 완성된 하드웨어에 아직은 미성숙한 소프트웨어가 장착된, 그래서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는 세대다.

그렇기에, 윽박지르기보단 친절히 설명해 주고, 감추고 숨기기보단 함께 고민해 줄 어른의 존재가, 그리고 바로 이런 책의 존재가 더 필요한 것 아닐까.
 
뭐든지 하고 싶었던 그 때에 해야 되는 거야. 시간이 지나면 왜 하고 싶었는지 잊어버리게 되거든. 나한테 미대는 그래. 이제 와서 가면 뭐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고등학교 때처럼 강렬하게 가고 싶은 생각도 없고 말이지. 뭔가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하지 못하면 나중에는 왜 하고 싶었는지에 대해서조차 잊어버리게 되거든. 자꾸 그러다보면 결국에는 하고 싶은 것이 없어져버려.

우물이라는 것은 퍼내면 퍼낼수록 새로운 물이 나오지만 퍼내지 않다보면 결국 물이 마르게 되잖니. 그런 것처럼 욕구라는 것도 채워주면 채워줄수록 새로운 욕구가 샘솟지만 포기하다 보면 나중에는 어떤 욕구도 생기지 않게 되어버리는 거야. 그러니 너도 쉽지야 않겠지만 하고 싶은 것을 자꾸 만들어서 해봐. 
 
세상에 명호 같은 삼촌이 많았으면 좋겠다. 역시나 숙경씨 같은 엄마가 많은 세상이었으면 한다.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건 다름 아닌 부모와 어른들의 관심이라는 걸, 그 단순한 진리를 청소년 자녀가 있는 이 땅의 부모들이 알기를 바란다. 그 자그마한 태도의 변화가 바로 이 책으로부터 비롯되기를 희망한다.

동정 없는 세상 - 제6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문학동네(2013)


#동정없는세상#박현욱#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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