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는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상임활동가 박석진입니다.[편집자말] |
제주 4·3 당시 민간인 희생과 관련한 국방부의 사과 입장 표명이 이루어졌다. 사건 발생 시기 이후 71년만의 일이다.
지난 4월 3일 국방부 관계자는 기자실을 찾아 "제주 43 특별법의 정신을 존중하고 진압과정에서 제주도민이 희생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날 오후 광화문의제주 43 추모공간을 찾은 서주석 국방부 차관은 43 희생자 유족들을 만난 자리에서 "진심으로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며 "국방부도 적극적인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협조할 것"을 약속했다.
같은 날, 민갑룡 경찰청장도 광화문에서 열린 제주 43 추념식에 참석한 뒤 방명록에 "무고하게 희생된 분들게 사죄를 드린다"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경찰의 행위에 대해 반성하며 다시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적었다.
국방부 차원에서 이루어진 첫 공식 사과 입장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제주 4·3 특별법) 상의 정의에 따르면, '제주 4·3사건이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1947년 3월 1일 제주 북국민학교에서 열린 3·1운동 2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한 제주도민에 대한 경찰의 무차별적인 총격과 사망사건은 중앙정부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전 제주도민의 저항으로 확산되었다. 이에 미군정과 이승만은 이러한 제주도민의 요구를 좌익세력의 주장으로 몰아붙이며 육지의 경찰과 서북청년단 등 우익세력을 동원해 대대적인 탄압을 자행했다.
지속적인 탄압에 당시 남조선 노동당 제주도당은 1948년 4월 3일을 기점으로 무장투쟁을 시작했고 5·10 단독선거를 눈 앞에 둔 이승만 정치세력과 미군정은 이를 좌익세력의 선동으로 이루어진 무장폭동으로 규정하고 경찰은 물론 군대를 동원한 무차별적인 진압작전에 돌입했다.
그 해 10월 제주도경비사령부는 "해안선 5km 이외 지역에 통행금지령을 내리고 그곳에 있는 사람은 폭도로 간주해 총살할 것"이라는 내용의 포고문을 발표했는데 이는 제주도민 전체에 대한 선전포고였으며 거대한 민간인 학살의 서막이었다.
군경토벌대는 해안선 5km 이외 지역인 중산간마을에서 미처 해안가로 내려오지 못한 주민들을 폭도로 간주해 집단적으로 학살하고 마을에는 불을 질렀다. 학살의 방식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제주 43사건 진상보고서'에 따르면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사라진 경우 그 가족을 대신 죽이는 '대살'(代殺), 과거의 잘못을 자수하면 살려준다 하고 자수하면 죽여버리는 자수자 살상, 군경이 무장대 복장을 하고 민가에 들어가 협조를 구하고 이에 응하는 사람들을 살해하는 함정토벌, 무장대에 공격받은 경우 해당 지역 주민 전체를 학살하는 보복살상 등이 자행되었으며 중산간마을이 초토화 된 후 피난해 입산한 사람들도 즉결 총살형을 면치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주도민 1/10이 죽어간 참혹한 역사
현재 정부 차원에서 확인한 제주 4·3 사건 관련 희생자는 14,363명이며 그 유족은 64,378명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진행된 희생자 및 추가 신청을 통해 21,392명(희생자 342명, 유족 21,050명)이 추가로 접수되었다. 2003년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발표한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는 제주 43사건으로 인한 희생자 수를 2만5000~3만여명으로 추산한 바 있다. 이는 당시 제주도 인구의 1/10에 해당하는 것이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운동의 영향으로 제주 4·3 사건에 대한 추모와 진상규명의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이에 대해 정부차원의 공식 사과가 이루어진 것은 2003년 노무현 정부 때였다. 2003년 10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를 찾아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희생되었다"며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제주도민에게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하였다. 문재인 대통령도 작년 제주 4·3 70주기 추념사를 통해 "국가폭력으로 인한 모든 고통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힌 바 있다.
두 차례, 통치권 차원의 공식적 사과가 있었음에도 해당 사건의 직접적 행위 당사자인 국방부는 그 어떤 사과나 유감 표명이 없었다. 그만큼 이 사안이 군 내부적으로 민감한 사안이었다는 것을 가늠케 한다. 실제 이번 국방부 사과 입장 표명의 과정에 밝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국방부 내부의 이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국방부의 제주 4·3사건에 대한 공식적 사과 입장 표명은 적지않은 의미를 가진다. 무엇보다 한국전쟁 전후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관련한 첫 번째 사과 입장 표명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한국군의 잘못된 역사 바로잡는 계기 되길
주지하다시피 제주 4·3 이외에도 한국전쟁 당시 군에 의해 저질러진 여러 민간인 학살사건들이 존재한다. 20여만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진 국민보도연맹사건, 산청·함양·거창 등지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사건, 제주 4·3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여순사건 등도 여전히 진상이 규명되어야 할 사건들이며 과거 군의 잘못에 대한 국방부의 공식적 입장이 필요한 사안들이다.
군과 경찰의 사과입장 표명과 관련해 제주 43 희생자 유족회는 성명을 통해 "국방부와 경찰청의 제주4․3에 대한 입장 발표에 대해 만시지탄이지만 환영의 뜻을 표한다"며,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실천을 위해 더욱 더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이번 제주 4·3 사건에 대한 공식 사과 입장 표명이 지난 과정 속에서 한국군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평화를 위한 군대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