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은 오마이뉴스 에디터의 사는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
"가사는 좋은 사람의 좋은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내놓기 힘든 속내, 스쳐가는 마음, 창피한 순간 등등을 이야기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그래야 더 많은 공감을 산다. 다양한 테마와 공감을 위해서라도 자꾸만 눌러만 놓는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들여다보자." - <김이나의 작사법> 중
가사 쓰는 일만 그럴까. 사는이야기도 그렇다. 기사는 새로운 소식 즉, 뉴스만 전하는 게 아니다. 감동도 전한다. 사는이야기가 '뉴스'가 되는 이유다. 모두가 겪을 법한 일이지만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농익은 기억들, 경험들, 사연들 그런 것들이 공감을 얻을 때 이야기는 비로소 기사가 된다. 기사로서 효력을 발생한다.
기사의 영향력이란 대체 무엇인가? 정치 기사는 정치를 바꾸고, 사회 기사는 사회를 바꾸고, 경제 기사는 경제를 바꾼다. 그렇다면 사는이야기는? 삶을 바꾼다. 글을 쓴 자신과 그 글을 읽은 독자 모두를 바꿀 수 있다. 달라지게 할 수 있다. 그게 사는이야기의 매력이고, 독자들이 사는이야기에 환호하는 이유다.
이야기의 힘
임희정 아나운서가 쓴 '막노동 하는 아버지' 이야기가 그런 예다. 그는 '내놓기 힘든 속내, 스쳐가는 마음, 창피한 순간들'을 붙잡는다. 그리고 그것이 무슨 감정인지 천천히 살핀다. '내면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가감없이 써내려 갔다. 오죽하면 '글 한 편 쓰고 나면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라고 했을까.
혹자는 그의 글이 너무 신파가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마치 내 이야기 같고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익숙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의 문장 때문에 뻔하지 않은 글이 된다.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읽게 된다. 내 부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유월에 입는 티셔츠에는 마늘 냄새가 났다. 유월 엄마의 손가락에서도 늘 마늘 냄새가 났다.
아빠 아니면 딸. 나는 엄마의 생각이 두 개라서, 엄마의 생각이 아빠와 딸 뿐이라서, 그 속에 엄마 자신은 없어서, 마음이 한 번 더 세 갈래로 갈라진다." (관련기사 : 내 속엔 나만 있는데 엄마 속엔 엄마만 없다)
"내 얼굴이 칠해지는 만큼 엄마의 얼굴이 바래는 줄 왜 몰랐을까. 딸이 성숙하는 만큼 엄마는 늙어간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엄마의 삶을 진즉에 알록달록 칠해 드렸어야 했는데. 많이 늦었다." (관련기사 : 빨간 립스틱 하나 없는 일흔 엄마의 화장대)
나는 이것이 그의 글이 갖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나뿐만이 아니다. 그 힘에 감응한 독자들도 반응하기 시작했다. 고해성사하듯 자신들의 아버지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댓글들이 그 증거다.
임희정 시민기자를 인터뷰한 이주영 기자도 썼다.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건 20~30대들이 보내온 수많은 고해성사다. 그의 글을 읽은 청년들은 쪽지로, 메일로 저마다 아버지의 직업을 커밍아웃하며 고마움을 전했다'라고. (관련기사 :
아버지 직업 고백 후 실검 1위 아나운서 "부모님 반응은...")
글 한 편 때문에 '눌러만' 놓았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 거다. 이런 행동을 가능하게 한 뉴스가 사는이야기 말고 또 있을까? 재차 강조하지만 이게 사는이야기의 매력이고 독자들이 사는이야기에 환호하는 이유다. 그런 글의 첫 독자가 되는 편집기자가 나는 아직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