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의 17번째 국회 보이콧 선언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패스트트랙이 지정되면 20대 국회는 없다"라면서 다시 한 번 국회 보이콧을 암시했다. 20대 국회 들어 한국당은 무려 17번째 국회보이콧을 눈앞에 두고 있다. 20대 국회가 2016년 5월 30일에 개원했으니, 한국당은 평균 2개월에 한번 꼴로 '국회 등원 거부'를 선언한 셈이다.
놀랍게도 한국당은 여당(옛 새누리당)이었던 2016년 10월에도 이정현 대표의 '국회보이콧+무기한 단식' 세트 농성을 실행한 바 있다. 여당 시절이든 야당 시절이든 조건과 때를 가리지 않고 국회 보이콧을 일삼으니 세간의 비유처럼 '보이콧당'이라 불릴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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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인즉은 여야 4당 원내대표들이 모여 선거제 개편과 공수처법 및 검경수사권 조정에 관한 포괄적 합의를 도출함과 아울러 각 당의 추인과정을 거쳐 오는 25일까지 '신속처리대상 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할 것을 서면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난항과 공전을 거듭하던 선거제 개혁과 개혁입법안이 최장 330일, 빠른 심의과정을 거친다면 180일 이후에는 국회 본회의 표결에 자동 상정되는 길이 열린 것이다.
지금까지 20대 국회를 통과한 패스트트랙 법안은 2017년 11월 24일에 상정된 소위 '사회적참사특별법'이 유일하다. 사립유치원 개혁을 위해 우여곡절 끝에 신속처리안건으로 상정된 소위 '유치원3법'(사립학교법·유아교육법·학교급식법)은 현재 논의가 중단된 채 계류 중이다. 어찌 보면 '신속처리안건'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느리게 진행된다는 비판도 일면 타당한 듯하다.
과연 나경원 원내대표의 주장처럼 '패스트트랙=국회 보이콧'은 타당한 논리일까? 아니면 한국당의 정치적 득실을 계산한 과장된 수사에 불과할까? 그동안의 선거제 개편안과 관련한 내용을 중심으로 나경원 원내대표와 한국당의 거짓말과 몰이해를 살펴보고자 한다.
①비례대표제를 폐지하는 것은 합당할까?
먼저 2018년 12월 15일, 신임 나경원 원내대표가 직접 서명한 선거제 개편에 관한 여야 5당 원내대표 합의문에 대한 완전한 입장 번복을 둘 수 있다.
합의문 1항에는 '연동형비례대표제 합의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고 명기돼 있다. 하지만 한국당은 2월 임시국회 보이콧에 이어 선거제 개편안을 논의하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에서 어떠한 선거제 안도 제출하지 않은 채 몽니만 부리다가 여론에 밀려 3월 10일 허둥지둥 가까스로 뜬금없는 안을 제출했다.
나 원내대표는 직접 설명을 통해 '내 손으로 뽑을 수 없는 비례대표를 폐지하고 내 손으로 뽑을 수 있는 의원으로 의원정수를 270석으로 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한편, 3월 11일에는 '연동형비례대표제는 전 세계에서 2개의 국가만이 채택하고 있는 제도'라고도 주장했다.
선거제도에 대한 그의 기본 인식이 매우 낮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첫째, 여야간 연동형비례대표제 구체방안을 적극 검토하자고 합의해 놓고 돌연 3개월 뒤 비례대표제를 완전 폐지하자는 주장은 서면합의를 전면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둘째, 내 손으로 뽑을 수 없는 비례대표제라고 단정했는데, 스웨덴·네덜란드 등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다수의 국가에서 개방형(자유형) 명부방식을 통해 비례대표 후보를 직접 선출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이다. 셋째,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독일·뉴질랜드 단 2개의 국가에서만 채택했다고 했지만 OECD 37개 국 중 무려 31개국(이 중 24개국은 전면적인 비례대표제)이 채택하고 있다.
심지어 나 원내대표가 비례대표제가 없는 선진국의 예를 든 프랑스만 하더라도 현재 비례대표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다. 제1야당의 원내대표의 발언이라고 하기에는 기초적인 상식에도 못 미치는 '가짜뉴스'에 가깝다.
②연동형비례대표제가 국회의원 수를 늘린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나 원내대표와 자유한국당은 새로운 선거제 개편안이 국회의원 수를 늘린다는 허위 주장도 버젓이 진행했다. 지난 3월 말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역구인 동작구에 본인 명의로 현수막을 게시했다. 내용은 '국회의원, 늘어나도 좋습니까? 연동형비례대표제 막아주십시오'라고 적었다. 이 말인 즉 3월 17일 여야 4당이 마련한 선거제 개편안이 국회의원 수를 늘리려는 속셈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가짜뉴스'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의 설명처럼 여야 4당의 선거제 개편안은 초과의석을 발생시키지 않는 조건, 의원정수 300명을 유지하는 조건을 바탕으로 설계된 안이기 때문이다.
이 현수막은 비단 나경원 대표의 지역구 뿐만 아니라 여의도를 비롯해 전국 주요도시에 조직적으로 게시됐는데, 한 시민단체는 이 현수막을 게시한 한국당 국회의원, 당협위원장을 3월 27일에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기까지 했다.
③연동형비례대표제는 좌파독재의 시작일까?
나 대표의 연동형비례대표제에 대한 몰이해는 선거제 개편안을 두고 '좌파독재' '좌파집권플랜'을 운운하는 것으로 절정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상식적으로 독재정치란 '일인 혹은 일당지배체제'를 의미한다. 또한 좌파, 우파란 이념적 정체성을 의미하는 것이나 상대적 규정성이 강하다. 새로운 선거제도인 연동형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어느 한 정당이 과반수 득표를 얻기란 현재보다 더욱 어렵고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 가능하다.
즉 정치적 대표성과 비례성이 보다 확장돼 다수의 정당들이 의회 진출의 기회를 얻게 된다. 따라서 극단적 양당제 보다는 합의적 다당제를 촉진시켜 특정 정당의 의회 독점을 저지하는 제도적 기능을 발휘하는 게 그 특징이다.
새로운 선거제도와 현재의 정당지지율을 추산한다면, 1년 뒤 총선에서 어느 정당도 과반 의석을 점유하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으로 예측된다. 오히려 민주당 입장에서 소위 '좌파독재'를 하려면 현재의 선거제도를 어떤 형태로든 유지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그것은 '우파독재'를 꿈꾸는 보수정당도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이 전·현직 3명 대통령의 숙원이자 약속인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꼼수 변형하고, 야3당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 온전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완강히 거부한 것은 바로 민주당의 정치기득권 지분을 몇 석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셈법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여야4당의 선거제 개편안이 좌파독재의 시작이라니 몰상식도 이런 몰상식이 없어 보인다.
전세계 의회사에 기록될 최악의 국회 보이콧 사례
국회의원은 곧잘 스스로 헌법에 명시된 입법기관임을 자임한다. 그 금배지의 자부심이 하늘에 닿아 조금이라도 손해를 봐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면 '나, 국회의원이야'라는 셀프 존엄을 내세우곤 한다.
그러나 반문하고 싶다. 입법기관인 국회, 국회의원은 스스로 위법과 탈법을 솔선수범하고 있지는 않은가? 20대 국회는 법정 개원일도 지키지 못해 지각 개원으로 시작했다. 예산안은 3년째 법정 기한을 넘겨 처리됐다. 선거구 획정안은 16대 국회로부터 시작해 20년째 기한을 못 지키더니, 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정당법(24조 2항)을 개정해 '총선 1년 전 확정'을 명기했음에도 보란 듯이 시한을 넘겨 가까스로 패스트트랙 지정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으로부터 휴업국회, 위법국회라는 지탄을 받아도 변명할 여지가 궁색한 마당에 선거제는 물론 개혁입법 처리에 맞서 습관적인 국회 보이콧, 20대 국회 사망선언, 가짜뉴스로 뒤덮인 장외투쟁에 앞장서는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그리고 한국당의 일탈은 국민의 지탄을 받기에 마땅한 듯하다. 20대 국회 개원 후 지금까지 선거제 개편 논의에 단 한 번이라도 진정성을 가지고 임한 적이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보이콧은 140년 전, 탐욕스러운 영국 지주에 대한 아일랜드 소작인들의 집단적 저항 행동으로부터 기원했다. 또한 1950년대 미국의 흑백인종탄압에 맞선 버스 보이콧의 위대한 인권운동사로도 기억된다. 만약 자유한국당이 17번째 국회보이콧을 진짜 실행한다면, 어쩌면 전 세계 의회사에 기록될 '최악의 명분없는 보이콧 사례'로 회자될지 모를 일이다.
국회 보이콧 즐기다가 국민들로부터 총선 보이콧 당할 수 있음을 부디 자각하시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오태양씨는 미래당(우리미래)에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