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심어주고 가신 들꽃들이 꽤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멀쩡한 화분도 죽여 놓는 나로서는 매일 아침 화분들을 들여다 보며 감탄이 나온다. 아마 식물들도 거두어 준 사람의 손길에서 나오는 생명력을 나눠 받는구나 싶다.
62세이신 엄마는 아직 요양원에서 일을 하신다. 엄마의 회사 생활은 젊은 사람들의 회사 생활 못지 않게 치열하다. 업무 과실을 남에게 돌리려는 상사와의 눈치게임,
회사 시스템의 부조리, 아부의 향연과 그것을 꼴 사나워 하는 사람들 간의 감정소모 같은 것을 듣고 있으면 퇴사하고 전업주부가 된 나는 새삼 회사 생활이라는 것이 아득하게 느껴지면서도 제 3자만 가질 수 있는 청취의 재미가 쏠쏠하다.
게다가 할 일은 똑부러지게, 그리고 할 말도 똑부러지게 하는 엄마는 회사에서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라 항상 에피소드가 넘치신다. 엄마 말을 옮기자면
원장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와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신다고...
어릴 적 내 기억 속의 엄마도 참 씩씩하고 정확한 사람이였던 것 같다. 그러니 우리 3남매가 아직도 엄마에게는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는 것 일지도. 그런데 한편으론 좀 슬프다. 어떤 자리에서든 부당한 건 못 참고 지나가는 엄마는 어떻게 자기 인생의 부당함은 참고 이 긴 세월을 보내오고 있을까.
나는 엄마와 내 나이의 차보다 더 나이를 먹고 나서야 엄마를 제대로 알아가기 시작한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한 집에서 같이 살던 오랜 시간 그때의 내가 엄마를 가장 모르고 지냈다. 엄마를 너무나 당연한 사람으로 생각했건 거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나도 엄마가 되어보고 나서야 조금씩 젊은 날 엄마의 인생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마도 "어떻게 참았어?" 하고 물어보면 엄마는 "엄마니까"라고 대답하겠지.
참는 게 미덕이라는 말이 얼마나 뼛속까지 을의 언어인가 생각해보면 엄마라는 존재는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뿌려놓은 생명들을 지키기 위해 을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들꽃을 화분에 옮겨 심으시면서 아무래도 화분에 심어 놓으면 뿌리를 살게 해주는 힘이 땅 힘보다는 못할 거라고 하셨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힘은 묵묵히 생명을 피어나게 하는 모든 삶의 원천 같기도 하다. 땅 힘. 살게 하는 힘. 우리들을 살게해 준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