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빙판길 낙상으로 119에 실려 간 그 다음날, 나는 새로운 일의 '활동'을 앞두고 있었다. 민간사례관리지원단으로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대상자를 발굴하고 사후관리를 하는 유급 자원봉사활동이었다. 사회복지사자격증이 있거나 상담 관련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으로 하루 3~4시간, 월 15일을 근무한다. 인지장애(치매)가 있는 엄마를 돌보면서 내가 활동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어깨골절 백일이 넘었다. 금 간 갈비뼈의 결림은 시나브로 나았다.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지 않을 정도에 이르렀지만 꾸준한 재활운동이 필요하다. 가방을 메거나 짐을 들 때는 나도 모르게 성한 왼팔이 먼저 나간다. 아픈 팔에 집중했던 시간이 지나자 나와 내 주변의 것들이 보였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아침, 자극 없는 일상의 무료함이 다가왔다. 엄마가 계셨다면 이른 아침부터 반복하는 딴소리(?)를 무심히 들으며 밥 준비에 바쁠 터였다. 식사가 끝나면 고혈압과 혈행약, 비타민 같은 약과 영양제를 챙기고 때때로 병원을 가며 엄마의 하루치 소일거리를 고민했을 것이다.
"엄마~! 이것 좀 골라줘요. 보리쌀에 콩이 섞였네."
까만 서리태를 골라내는 엄마 손이 재빨랐다. 천천히 해도 된다고 하니 엄마는 '이까짓 게 뭐라구 빨리 해버리지' 하셨다. 나는 엄마 모르게 골라놓은 콩을 다시 보리쌀에 섞었다. 다음날 아침, 그 다음날 아침, 또 그 다음다음날 아침에도 콩을 골라달라고 했다. 그때마다 마치 처음인 양 콩을 골라 담았던 엄마.
요양보호사자격증을 딸 적기였다
엄마를 생각하면 편한 몸이 편찮다. 엄마와 티격태격 아옹다옹 부딪치며 다시 함께 살기 전, 지금 이 어정쩡한 시간에 뭘 할 수 있을까. 치매안심센터의 모임에서 들었던 경험자들의 이야기가 왜 나는 이제야 떠오르는 걸까. 언제나 한 발 늦게 자각하는 나. 이제라도 시작하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으면 가족요양을 할 수 있어요."
"예전엔 교육만 받아도 자격증이 나왔는데 지금은 국가자격증이 됐어요."
한동안 깁스 팔걸이로 목과 등 뒤를 고정한 채 살았다. 엄마는 그날, 딸이 다친 게 당신 때문이라며 울면서 언니네로 가셨다. 남편은 아침에 나를 의자에 앉혀 놓고 출근했다. 혼자서는 눕고 일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한동안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을 시간들. 지금이야말로 요양보호사자격증을 딸 적기였다.
동네 가까운 곳에 요양보호사교육원이 있다. 주간보호센터라는 '어르신놀이방'을 같이 운영하고 있고, 엄마 입소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이번엔 요양보호사교육 관련해서 그곳의 온라인카페를 방문했다.
강의개설 일자와 시험일자, 시간 등을 살펴보니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20일을 교육받고 실습시간도 80시간이다. 이론과 실기, 실습 모두 포함 총 240시간을 이수해야 한다. 시간으로 따지면 꼬박 8시간씩 30일이다.
한편, 자격증반 모집이란 게 있다. 사회복지사 간호조무사 등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 대상으로 하는 반이다(간호사인 경우는 면허증). 자격증이 있으면 이론, 실기, 실습 포함해서 총 40시간~50시간 교육을 받으면 된단다. 비용도 절반이다. 교육원에 연락했다. 3월중으로 개강 일정을 공지했지만 적정 인원이 채워지지 않으면 일정이 미뤄진다고 한다.
나는 2012년 여름에 사회복지사 공부를 온라인으로 수강했다. 아는 신부님이 내게 왜 놀고(?) 있냐고 하면서 당장에 사회복지사자격증을 따라고 재촉했다. 식구들 거처가 정해지지 않은 애매한 시기였다. 나이 쉰이 넘어 떠밀듯 시작했다.
강의를 듣고 리포트와 중간, 기말시험과 실습을 마치기까지는 꼭 1년이 걸렸다. 사회복지 관련 일을 할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자격증이 발행된 2013년 7월. 두 달 후 9월에 법인 복지시설(아동청소년)에 취업해서 4년여를 근무했다.
"요양보호사, 너 그거 하려고? 그거 아무나 못한다는데~. 난 못해. 했다면 사회복지사도 그때 했겠지. 난 솔직히 그쪽으로는 자신 없어."
7년 전, 온라인 사회복지사 공부를 시작할 때 내가 같이 하자고 했던 친구 A가 말했다. A는 언니네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손님들 계산을 맡고 손이 달릴 때는 주방보조를 돕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있고 직업으로 현장에서 대상자들과 함께 하는 요양보호사. 누구든지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걸 친구가 말하는 것 같았다.
가족요양은 우리 모두의 현실
지난 3월 중순, 요양보호사교육 강의가 개설되었다. 자격증반 8명을 포함해 30여 명이 한 교실에 모였다. 교육원관계자가 말했다.
"그동안에는 인원이 계속 미달이었어요. 그래서 두 달이나 세 달에 한번 강의개설이 됐는데 작년 하반기부터 지금까지는 이상하게 매달 인원이 넘네요. 아마 취업 관련해서 요양보호사를 하려는 분들이 느는 것 같아요. 또 가족요양 때문에라도 오시는 분도 꽤 있더라구요. 점점 돌봐드려야 할 어르신들이 그만큼 많아진다는 거겠죠."
한 교실에 모인 30여명의 연령대는 30대~70대까지다. 40대 후반에서 50, 60대가 거의 대부분이다. 남성 수강생은 5명, 주로 퇴직 연령에 따라 현역에서 물러난 분들이다. 살아온 이력이 모두 다른 우리들의 공통관심은 길어진 인생을 건강하게 사는 것.
요양보호사자격취득을 목적으로 함께 공부하게 된 이유도 제각각이다. 현재 간병일을 하는데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필요해서이거나, 아이들 다 키워놓고 자격증 하나 따놓으면 좋을 것 같아서, 가족요양을 하기 위해, 자신의 노후를 생각해서, 또는 뭐라도 배우면 좋을 것 같아서. 나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가족을 돌보면서 '급여'를 받는다는 말이 처음엔 생소했다. 아니, 당시 엄마가 치매판정을 받고도 그땐 관심이 없었다. 직장생활에 정신없이 바쁘기도 했다. 엄마와 함께 살게 되면서 치매센터모임회원들과 정보를 나누고, 이제 다시 들여다보니 '가족요양'은 내 현실이었다.
언제까지일지 모르는 엄마의 치매. 다른 요양보호사의 도움이 필요할 때, 내가 엄마를 돌보면서 한 달 20시간에 해당되는 급여를 받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요양보호사자격취득이 전제되어야 했다.
자격증반은 해당되는 수업시간에 맞춰 수강하면 된다. 나는 깁스를 한 채 수업을 들었다. 실습 8시간을 뺀 42시간의 일정은 일반수강생과 달리 여유로웠다. 만약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 두 가지 자격을 취득하고자 한다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먼저 따고 요양보호사공부를 시작하는 게 교육시간을 훨씬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시작이 반'이란 말을 실감한다. 이론과 실기과정은 마무리되고 실습 8시간이 남았다. 시험은 7월 6일(토)이다. 한 달이나 더 남았으니 널널하다는 생각에 교재와 문제집을 딱 덮어놨다. 발동이 걸리기엔 아직 이르다. 돌봄 대상자를 만나게 될 실습. 그 '실제'가 내 삶에 어디만큼 와 있을까 생각하면 두 눈이 뜨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