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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구내염조차 잘 앓지 않던 아내였다. 그런 아내가 갑자기 입 안이 아프다며 하소연한다. 혀 아래쪽이 부어올라 음식물을 삼키는 일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발음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며칠 지나면 자연스레 가라앉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염증은 오히려 더욱 기세등등해지고 있었다. 떠먹는 요구르트며 죽마저도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동네병원에서 단순 구내염이라는 진단을 내린 터라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정황상 의심스러운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또 다른 병원을 찾았다. 의사가 지금 당장 대학병원 등 큰 병원에 가보라고 조언해주었다. 혹시 몰라 또 다른 병원을 찾았다. 이곳에서의 진단도 앞 병원과 동일했다. 무조건 대학병원으로 가란다. 부리나케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급히 CT를 찍고 입원 수속을 밟았다. 하지만 CT 영상만으로는 판독이 불가능하단다. MRI를 찍었다. 다음날 의사가 영상 판독 결과를 말하는 순간, 난 내 귀를 의심해야 했다.

혀 아랫부분, 그러니까 '구강저'에 종양이 위치해 있고, 그 주변으로는 염증 등이 잔뜩 퍼져 있는 상황이란다. 알다시피 종양에는 두 종류가 존재한다. '양성'과 이른바 암으로 불리는 '악성'이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의사에게 물었다.

"혹시 악성인가요?"
"아직 속단하기에는 이르지만, 증상이나 모양새를 놓고 볼 때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절망스러웠다. 염증 부위의 안쪽이 직접 눈으로 확인되지 않은 까닭에 아직은 단순 염증, 양성종양, 악성종양 등 세 가지의 가능성이 모두 열려 있다고는 하나, 의사의 소견으로는 마지막의 것으로 기울었음이 분명해 보였다.

그렇다면 내 아내가 차마 입에 담는 일조차 두렵기 짝이 없는 '구강암',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설암'에 걸리기라도 한 것일까? 그것도 저 깊숙한 곳에 위치한 '구강저'에?

불길한 기운은 이곳저곳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입원 뒤 각종 항생제 등을 몸 안에 대거 투여하고 있음에도 아내에게 발현된 염증은 좀처럼 가라앉을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염증이 시작된 지 어느덧 2주가 훌쩍 지났다. 담당 의사는 조직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악성종양일 가능성이 높기에 보다 큰 전문병원으로 옮기는 것을 고려해야 했다. 의사도 이에 흔쾌히 동의했다. 하지만 난 일단 조직검사만큼은 이곳에서 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아내도 같은 생각이었다.
 
 아내가 수술을 했다
아내가 수술을 했다 ⓒ pixabay
 
물론 조직검사조차도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전신마취가 요구되는 수술이었다. 드디어 수술 날짜가 잡혔다. 아내와 함께했던 지난 25년간의 삶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간다.

곱디고운 아내. 언제나 자신보다는 남편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해줄 줄 아는 착한 그녀에게 도대체 왜 이토록 가혹한 일이 벌어진 걸까?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결과 앞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 몸의 절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날 밤.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던 난 그만 몹쓸 꿈을 꾸게 된다. 너무도 생생한 꿈이었다. 내 목숨을 누군가가 회수해 가는 상황에서 나는 꼼짝도 못 하고 숨조차 쉴 수 없는 극한 처지로 내몰렸다. 이대로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던 찰나,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가쁜 숨을 내쉬고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밖은 여전히 어두컴컴했다.

아내가 혹시 앓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 독한 병과 관련한 이야기는 내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놓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수술 과정 자체도 끔찍했지만, 예후도 상당히 좋지 않은, 그야말로 최악의 질병으로 악명이 자자한 바로 '그것'이었으니 말이다.

아내가 너무 불쌍했다. 이대로 주저앉기에는 아직 할 일이 많고, 내가 그동안 받았던 무한사랑도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더 베풀어야 했다. 갚아야 할 것들이 산더미 같은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불면과 고통의 긴 터널을 지나 마침내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조직검사를 위한 수술 날짜가 닥친 것이다. 아내는 아침 일찍 수술실로 가기 위해 이동용 침대로 옮겨졌다. 드디어 수술실로 향했다.

이후 나는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한 손에는 휴대폰을 쥔 채 병원 곳곳을 걸어 다녔다. 시간은 한없이 더디게만 흘렀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조바심이 났다. 그 광활한 병원이 비좁게 다가올 정도로 내 발걸음은 병원 구석구석을 열심히 훑고 있었다.

어느덧 두 시간이 흘렀다. '조직검사가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어쨌거나 나는 제일 좋은 결과가 나오기만을 빌고 또 빌었다. 병원 1층 로비에 마련된 성모 마리아와 예수상 앞에서 정말 열심히 빌었다. 아마 눈앞에 부처님이 있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약한 한 인간으로서 어딘가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 무엇이 됐든 내겐 상관이 없었다.

수술에 돌입한 지 두 시간 반가량 됐을까? 모르는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누굴까? 수술 집도에 나섰던 담당 의사였다. "저희가 혹시 몰라 세 번이나 확인했는데요. 악성 세포는 발견되지 않았습..." 전화를 받던 난 그만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정말이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의사가 무어라고 말했는데 너무도 흥분한 나머지 울먹이느라 그의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아내는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현재 안정을 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종양으로 의심됐던 부위는 막상 살을 째고 열어 보니 괴사된 세포와 염증 그리고 고름 등으로 뒤엉켜 있더란다. 조직검사를 위한 수술 과정에서 이를 전부 긁어내고 막힌 침샘을 뚫은 뒤 짼 부위를 봉합하는 방식으로 수술은 잘 마무리됐다.

지난 몇 주 동안 나는 일상이 붕괴되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덕분에 새 삶을 얻은 느낌이다. 아내가 내겐 얼마나 귀한 존재였는지 이번 일을 통해 톡톡히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의 일상이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얻게 된 것이라는 사실도 터득했다. 일상을 지키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됐다.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나 그리고 아내. 그동안 내가 받았던 사랑을 조금씩 아내에게 베풀어줄 계획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날이 올거야(https://newday21.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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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신뢰하지 마라, 죽은 과거는 묻어버려라, 살아있는 현재에 행동하라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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