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만났다고 하는데, 저는 4시간 만나는 모임을 가져본 일이 없다."
황교안 자유한국당(아래 한국당) 대표가 서훈 국정원장과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의 회동을 비난했다. 황 대표는 28일 오전 당직자들과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 이 시기에 그 두 분이 만난다는 것이 적절한가?"라며 "아무리 사적인 만남이라고 하더라도 지금은 만나서는 안 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누구라도 왜 만났나 다 의심할 것이다.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라며 "저희가 철저하게 어떤 내용들이 오갔는지, 여러 방법을 통해서 알아보고 그에 마땅한 대처를 하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앞서 <더팩트>는 두 사람이 지난 21일 서울의 한 한정식집에서 4시간 이상 비공개 만남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양정철 원장은 "당일 만찬은 독대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들이 함께 한 만찬이었다"라며 "사적인 지인 모임이어서 특별히 민감한 얘기가 오갈 자리도 아니었고 그런 대화도 없었다"라고 해명했다. (관련 기사:
양정철 "국정원장과 독대? 기자정신과 황색저널리즘은 달라")
그러나 양 원장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비판이 야권을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한국당은 28일, 서훈 국정원장과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의 회동을 비난하는 데 입을 모았다. 이날 회의 시간의 상당 부분을 이 내용을 비판하는 데 할애한 것. 특히 서훈 국정원장을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사실상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압박했다.
"내년 총선, 관권선거가 될 것... '신북풍' 우려"
"아예 대놓고 국정원장이 선거에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나경원)
"국정원장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양석)
"서훈 국정원장은 책임을 느끼고 스스로 거취를 표명해야 한다." (이은재)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도대체 둘이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을지 가히 짐작이 된다"라며 입을 열었다. 그는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의 국내정치 관여를 제1의 적폐로 몰아붙이며 국정원 본연의 기능마저 마비시키려했다"라며 "그런 정권이 앉힌 원장이 여당실세와 밀회했다? 아예 대놓고 원장이 선거 개입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 원내대표는 "양정철은 본인이 공인이 아니라며 적반하장식으로 언론을 비난하고 공격했다"라며 "공인도 아니고 공익보도 대상도 아닌데 왜 국정원장을 독대했는지 묻고 싶다"라고 지적했다. "유리할 때는 당 싱크탱크 수장, 불리할 때는 민간인 흉내를 내는 얄팍한 수법"이라는 것이다.
그는 "여러 시나리오가 있다"라면서 ▲ 여당 내 '공천숙청자'에 대한 정보수집 ▲ 야당 죽이기를 위한 정보수집 ▲ 선거에 영향 미칠 수 있는 신북풍 등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어 "결국 최대의 관권선거, 정보 관권선거가 시작된 것 아닌가"라며 "과연 왜 만났는지, 무슨 대화 오고갔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세 가지"를 요구했다. 우선 "그 자리에 함께했다면, 개인적인 순수한 사람이 아니라 분명히 여권의 핵심들"이라며 "함께 했던 일행은 분명히 공인이다. 누군지 밝혀라"라고 요구했다. 또한 "총선 관련 이야기 안 했다고 하는데, 그 면면을 보면 야당탄압 공작, 부정선거 공작했을 거라고 본다"라며 "이거 말고 다른 공작도 했다면 무슨 공작을 했는지 밝혀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야당공격 문제에 있어서는 민정수석까지 나서서 SNS에 온갖 해괴한 글 쓰고, 청와대가 앞장서면서 조금이라도 불리한 이야기에는 할 말이 없다고 입을 닫는다"라며 "어떤 이야기가 됐든 해달라"라고 청와대의 적극적인 해명도 주문했다.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 역시 "지금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는 모든 노력을 총선 승리에 맞추고 있다"라며 두 사람이 만난 '시점'과 내년 총선을 연결했다. 그는 국정원의 대북정보기능을 언급하며 "내년 총선 앞두고 또 다른 공작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라며 "또 다른 남북정상회담을 도모하지 않았나? 그래서 총선에 영향을 줄 것을 도모하지 않았나?"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국내정치에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라며 "남북관계를 국내정치에 이용한다는 오해를 벗기 위해, 대통령의 결단과 함께 서훈 국정원장은 스스로 책임지기를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한국당 간사를 맡고 있는 이은재 의원도 목소리를 보탰다. 그는 "두 사람이 회동한 모임의 성격, 참석자, 대화내용은 물론 단순 일회성 회동인지에 대해 검증이 필요하다"며 "국가정보를 총괄하는 엄중한 자리에 있는 국정원장이 측근 요청에 따라 대통령 측근을 만난 것은 정보기관의 장임을 의심케 하는 함량미달의 처신"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더욱이 회동당사자가 집권여당 총선 사실상 진두지휘하는 싱크탱크 장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정보기관과 여당의 총선전략 논의자리라고 봐야 한다"면서 "이는 사실상 국정원의 정치관여를 금지한 국정원법 제9조 위반여지 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에 선거중립 기대하기 어렵다"
민경욱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서훈 원장 해임 및 양정철 원장 사퇴는 물론이고 이 사안에 대해 청와대는 입장을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민 대변인은 "이들이 이토록 비밀스럽게 숨죽여가며 만나야 할 사이라면 이들의 만남이 '부적절한 만남'이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가히 문재인 정권판 '내부자들'"이라고 칭했다.
그는 "총선 승리에 목을 매는 정부와 여당의 은밀한 접촉, 그리고 이를 비호하는 언론인과의 만남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라며 "대통령의 남자가 한 말처럼, 국민들도 그대들에게 '적당히 하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당 원내대표단과 국회 정보위 소속 의원들은 이날 오후 4시 서울 내곡동에 자리한 국정원을 항의 방문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