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어머니께서는 2017년 11월 경 인보사 주사를 맞았습니다. (중략) 80대 중후반의 어머니 모습을 보니 제가 고통을 드린 것 같아 너무 죄송합니다. 지난 9일 전수조사와 관련해 정보동의서를 받는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모든 게 불확실 투성입니다." - 네이버 '인보사피해자들을 위한 모임' 카페 상담글 중
'만능 관절 주사'로 이름을 떨치던 국내 첫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의 추락.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2017년 7월 시판 허가를 내준 뒤, 약 3700명의 환자들이 이 주사를 맞았다. 2019년 3월 22일 개발사 코오롱생명과학이 식약처에 주사의 주요 성분인 유전자 세포가 신장세포로 바뀌었다는 보고를 하기까지, 이 주사의 인기는 의료 시장은 물론 주식 시장까지 영향을 미쳤다.
인보사 주사 맞은 피해자의 호소, 그러나...
"식약처는 이번 인보사 케이주 허가 취소 사건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 보다 안전하고 우수한 의약품이 개발·공급될 수 있도록 환자 중심의 안전관리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8일 식약처가 인보사 최종 허가 취소를 밝히며 낸 보도자료의 맺음말이다. 허가 과정에서 발생한 부처 차원의 책임에 대한 유감 표명은 따로 밝히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부터 유전자 세포 신약의 과도한 산업화를 지적해온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29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식약처의 태도를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식약처가 사실 이번 인보사 사태의 몸통"이라는 비판이었다. 윤 의원은 "허가를 신청한 코오롱, 허가를 해준 식약처 한 몸이다. 기업이 허위와 거짓으로 허가서류를 내더라도 이를 검증하고 구별해 내야 하는 것이 식약처의 임무다"라면서 "최종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도 사과 한마디 안했다는 것은 식약처가 국민을 대하는 모습이 어떤지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질타했다.
식약처가 2017년 중앙약사심사위원회의 의견을 모아 시판을 허가한 과정을 봐도, 유전자 치료제에 대한 식약처의 당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더욱이 허가 결정을 내린 2017년 6월 회의 두 달 전인 4월 회의에서는 "증상 완화를 위해 유전자치료제를 사용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위원 7명 중 6명이 허가를 반대했다. 식약처 홈페이지에 공개된 4월 회의록과 6월 회의록에 나온 대목이다.
[2017년 4월 4일]
(익명 위원) : "TGF-β(인보사에서 신장세포로 변경된 것으로 알려진 유전자 세포)를 도입한 세포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으며, 이 정도 효능을 위해 사용하기엔 위험성이 크지 않나 생각됨."
식약처 : "유전자치료제는 15년 장기추적을 해 안정성을 관찰하도록 하고 있는데 본 제품의 경우 1상 시험 대상자는 이미 7년 이상 장기 추적 결과가 있으며, 아직까지는 종양 발생 보고는 없었음."
[2017년 6월 14일]
(익명 위원) : "임상 시험 결과 안전성에 관한 자료에 따르면 단기적 이상 반응만 있음. 이상 반응은 언제쯤 확인했으며, TGF-β는 어느 시기에 측정했는가?"
식약처 : "(중략) TGF-β는 3, 6, 9. 12개월에 측정하고 더 짧은 시간에는 본 적이 없음."
특히 식약처는 마지막 회의에서 인보사의 효능이 적용된 '골관절염' 대신 '연골결손 질환'에 대한 미국 허가 사례를 언급하며 "국제적으로도 구조 개선이 없는 경우에도 허가하는 사례가 있었다"면서 허가를 독려했다. 한 위원은 이에 "골관절염과 연골결손은 서로 다른 질환이다"라면서 "미국에서도 골관절염에 대해 세포 치료제는 허가를 내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우려에도 결국 700만 원 상당의 비급여 주사, 인보사의 시판은 허가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8월 건강보험보장 강화정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에서 발표한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기조에도 역행한 결론이었다.
윤 의원은 식약처의 유전자치료제 허가 과정에서 발생한 제도적 구멍은 결국 정부 차원에서 주도하고 있는 바이오 헬스 산업의 '발전 중심' 생태계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원을 하더라도 산업체를 위한 지원보다 기초연구, 연구자에 대한 지원이 우선 돼야 한다"면서 "바이오헬스 산업육성전략 발표를 봐도, 바이오 산업계의 전문성이나 연구 실적이 전제된 것이 아니라, 사업 분야의 발전 가능성이 우선됐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4차산업의 핵심 산업으로 꼽은 신약 개발 등 바이오 헬스산업의 진흥을 위해서라도, 특정 산업체에 대한 검증 없는 '퍼주기 지원' 보다, 개발 시작 단계인 기초 연구에 더 많은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인보사' 구멍, 국회가 메울까
결국 공은 국회로 다시 넘어왔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 일부 시민단체는 국회가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2015년 박인숙 자유한국당 의원 대표 발의)' 등 유전자 치료와 연구 범위를 확대한 법안이 처리되면서 이번 사태의 빗장이 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도 유전자치료제 허가와 관련된 내용이 담긴 '첨단재생바이오법안(이명수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대표 발의)'이 지난 3월 28일 보건복지위원회를 거쳐 국회 법사위에 올라온 상태다. 국회 상임위원회의에서 마지막으로 인보사 사태가 언급된 건 국회가 패스트트랙 정국으로 멈추기 전인 지난달 4일, 법제사법위원회의에서였다.
[4월 4일 법제사법위원회 속기록]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 : "미국 FDA 승인을 하는 과정 속에서 인보사의 성분 변형 세포가 달리 판단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식약처가 사실은 그 단계에서 이것을 검증해 내지 못했단 말이예요. (중략)"
이의경 식약처장 : "철저하게 검증하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에 저희를 믿고 좀 기다려 주십사 하고 부탁을 드립니다."
오 의원은 이 자리에서 해당 법안을 제2소위로 회부하며 "(신약이) 잘못 오남용되면 생명에 지장을 줄 수 있다. 법안 취지에는 동의하나 (유전자치료의) 시스템을 명확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의경 식약처장은 이에 "지금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 산업을 발전시켜야 하는 측면도 있다. 안전성 우려는 있지만 보건복지부와 식약처가 철두철미하게 관리하면 많은 장점이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식약처는 해당 법안의 방점을 '경제발전'과 함께 '제2의 인보사 사태' 예방에 두기도 했다. 이 처장은 이날 회의에서 "이 법안은 세포처리시설이나 세포처리관리업에서 식약처가 관리를 철저히 하는 내용이다"면서 "(유전자치료제에 대한) 장기 추적도 담겠다고 했다. 인보사 사건을 계기로 이 법을 입법화하게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개정안 또한 발전 논리에 치중한 법안이라는 걱정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주요 내용 중 ▲별도 심의위원회 심의 ▲허가 신속처리 제도 등에 대한 우려다.
재활의학 전문의인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개정안에는 별도의 위원회를 두도록 돼 있지만, (유전자) 세포 치료제 전문가만 참여한다. 이해당사자들이 모여서 논의하면 어떻게 되겠나. 그 조항만으로도 매우 위험한 법안이다. 특별법으로 처리하기보다, 약제 관리를 위한 약사법에 넣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윤 의원 또한 유전자 치료제에 대한 점진적 규제 완화보다 인보사 사태로 드러난 구조적 모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바이오헬스산업 진흥을 위한 신약 개발 지원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이 산업이 차세대 미래 산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지만, 이를 선도할 생태계가 형성됐다는 데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회 정상화 이후 법사위 테이블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에 '인보사 사태'가 추가 된 이유다. 국회법에 따라 6월 1일 임시회가 열리는 만큼, '첨단재생바이오법안' 처리도 논의 목록에 오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법안이 제2의 인보사 예방책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허용 통로가 될 지는 회의장에 마주 앉을 의원들의 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