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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그림책을 읽는 동안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을 때 이 글을 씁니다. 이번 글은 학교비정규직 총파업으로 급식을 못 먹게 된 열세 살 딸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 기자말

딸, 오늘(3일) 급식은 못 먹었겠구나. 교장 선생님이 보낼 거라던 안내문자는 받지 못했지만,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 급식 노동자들이 3일부터 5일까지 최대 3일간 총파업을 한다는 건 알고 있었어.

그 이야길 해주었더니 네가 말했지. "그거(총파업) 안 했으면 좋겠다"라고. 그 말을 듣고 엄마가 네 카톡으로 기사 링크를 하나 보내주었는데 혹시 읽어 봤니? 너도 이제 6학년이나 됐으니 그분들이 왜 파업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그랬어.  
 
 경기도 한 학교 급식실에서 대체 급식을 준비하고 있다.
경기도 한 학교 급식실에서 대체 급식을 준비하고 있다. ⓒ 경기도교육청

그런데 오늘 점심시간이었어. 회사 건물 지하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을 만났지. 흰색 티셔츠에 동일한 조끼를 맞춰 입고 있었는데, '누구지?' 궁금했지만 금세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

너와 내가 들어야 할 목소리

엄마 회사는 광화문 한복판에 있어서 광장에서 집회가 열리는 날이면 그 소리가 거의 다 들려. 오늘은 언제부터였나... 소음이 굉장히 크게 들렸는데도 일이 바빠서 그랬는지, 별로 궁금하지 않아서였는지, 무슨 집회가 열리고 있는지도 잘 몰랐어.

그때 엄마 눈에 <광장에 모인 4만 학교비정규직... 학생들 "괜찮아요">라는 기사가 눈에 띄더라. 그제야 알게 됐지. 그 집회가 바로 전국 학교비정규직 총파업 대회라는 걸. 식당가에서 만난 그 아주머니들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던 거고.
 
 이날 총파업 대회에 참가한 인원이 너무 많아서 핸드폰 카메라로는 다 담을 수도 없었어.
이날 총파업 대회에 참가한 인원이 너무 많아서 핸드폰 카메라로는 다 담을 수도 없었어. ⓒ 최은경

아, 이 무심함이란. 어제 너에게 그렇게 말해놓고 까맣게 잊었지 뭐야.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 좀 더 가까이에서 그분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엄마를 대신해 너희들 점심을 책임져 주시는 분들이잖아. 산책을 핑계로 서둘러 광장으로 나갔어. 생각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더구나. 오래 있지는 못했지만 기사에서 읽은 그분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
 
- 총파업을 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은 차별이다. 임금도, 처우도, 모든 게 차별에 맞물려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임금을 걸고,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을 안고 거리로 나왔다. 파업 기간의 임금은 비정규직들에게 있어선 큰 금액이다. 심지어 7월 20일이면 대부분의 학교가 방학을 한다. 우리는 방학에 어떤 임금도 받지 못한다. 방학에, 파업까지 더하면 생활고 또한 심해질 수 있다.

하지만 정말,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학교 안에서, 아이들이 보는 곳에서 우리들을 향한 차별이 만연하다. 처우, 안전, 임금, 모든 곳에서 그렇다. 학교는 '비정규직 종합백화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계약직들이 많다.

(중략) 나는 급식실에서 25년을 일했다. 95년도에 입사했는데, 그때 나를 '일용 잡급'이라고 불렸다. 시간이 흘러도 호칭은 여전하다. 아직도 우리에겐 이름이 없다. 이모님, 여사님, 아줌마... 아이들은 이렇게 차등 대우를 받는 우리들을 본다. 평등 사회에 대한 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학교 안에서 차별받는 모습을 보는 거다." - 박금자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위원장 스팟 인터뷰 중(http://omn.kr/1jxcd)

너에게 이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어. '학교에서 일하는 전체 노동자 중 41%가 비정규직이고 이들은 지난해 정규직 임금의 약 64% 정도를 받았다'는 걸 알고 있었니? 엄마도 미처 몰랐어. 이분들이 일상적인 차별로 고통 받으면서 매일 너희들을 위한 밥을 하고 있다는 걸 말야.

언젠가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에게 들은 말이 생각나. '교사의 질이 보육의 질을 높인다'라는. 밥이라고 다를까. 엄마도 유독 피곤한 날은 밥 할 기운도 없어서 차라리 그냥 굶기도 해. 아니면 간편하게 라면으로 때우든가. 그런데 급식노동자들은 그럴 수가 없어.

우선 아파도 대신 근무해줄 사람이 없고, 일하다 다쳐도 제때 치료에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고 해. 또 방학에는 학생들이 나오지 않아 일하지 않으니 월급도 주지 않는다는구나. 생각해봐. 그림책 <엄마의 의자>에 나오는 엄마처럼 가족의 생계를 혼자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떨지 말야.

딸아, 그건 나쁜 게 아니란다

말 나온 김에 이 그림책에 나오는 엄마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 엄마는 하루 종일 식당에서 일을 해. 식당에서 팁을 많이 받은 날은 기분이 좋아서 들어오고, 어떤 때는 너무 지쳐 집에 오자마자 금세 잠이 들기도 하지. 엄마는 늘 발이 아프지만 집에는 '어디 무거운 발을 올려 놓을 데'도 없어서 딱딱한 부엌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곤 했어.

주인공 아이가 투명 유리병에 잔돈을 모으는 건 그 때문이야. '멋있고 아름답고 푹신하고 아늑한 안락의자'를 사기 위해서. 온 가족이 앉아서 쉴 수 있는.

이게 다 1년 전 있었던 화재 때문이잖아. 모든 것이 다 사라졌지. 불과 함께. 하지만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아이는 이웃의 도움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었어. 엄마가 열심히 일한 덕분에 큰 유리병도 잔돈으로 가득 찼지. 의자를 사러 가는 가족들의 표정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어. 마지막 페이지, 푹신한 의자에서 찍은 가족사진을 보고 눈물도 조금 났지.
 
 <엄마의 의자> 한 장면.
<엄마의 의자> 한 장면. ⓒ 최은경

그림책 속 엄마를 보며 학교비정규직 급식노동자들의 모습이 자연스레 겹쳐졌어.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고, 아플 때 쉴 수 있고, 노동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면, 그들도 '푹신한 의자'에 앉아 고단한 하루의 피로를 풀 수 있지 않을까. 그림책 속 가족처럼 힘들지만, 그래도 희망을 품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이번 파업을 왜 하는지 아니?"라고 내가 너에게 다시 물었을 때 "월급 더 올려달라고 그러는 거라던데?"라고 말했지? 딸아, 그게 나쁜 건 아니란다. 그런 뉘앙스로 말한 게 아니길 바라.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야. 사무실에서 일하는 엄마라고 다르지 않아. 엄마도 그래.
 
 4일 아침에 만든 도시락 메뉴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유부초밥. 빵만 먹어도 배부르다는 큰아이 대신 아홉 살 둘째 아이가 신이 나서 학교에 들고 갔다.
4일 아침에 만든 도시락 메뉴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유부초밥. 빵만 먹어도 배부르다는 큰아이 대신 아홉 살 둘째 아이가 신이 나서 학교에 들고 갔다. ⓒ 최은경

퇴근하는 길에 너희 학교에서 보낸 문자를 받았어. 내일도 총파업 기간이라 빵과 음료가 지급되는데, 혹시 아이들이 먹기 싫어하면 도시락을 싸서 보내도 된다는 내용이었어. 엄마는 내일 아침 너희들이 먹을 도시락을 쌀 거야. 기쁜 마음으로.

아마 총파업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오는 급식노동자들도 그럴 거야. "조금 불편해도 괜찮다"고 응원해준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밥을 짓겠지. 기쁜 마음으로.

마지막으로 기사에서 인상 깊었던 대목 하나 소개하고 마칠게. 다음엔 너와 '노동'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우리도 교육의 주체다.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노동의 가치, 노동자의 삶을 파업을 통해 온 몸으로 알리고 있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거다. 이게 진짜 교육의 주체다. 교육감들에게 감히 이야기한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우리가 당신들보다 더 진짜 교육자라고." (안명자/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장)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베이비뉴스>에도 실립니다.


엄마의 의자

베라 B. 윌리엄스 (지은이), 최순희 (옮긴이), 시공주니어(1999)


#그림책 편지#엄마의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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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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