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서울 강남역 사거리 교통 폐쇄회로화면(CCTV) 철탑 위에 산다. 실바람에도 흔들리는 쇳덩어리에서 위태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3.3㎡(1평)도 안 되는 여기서 그는 고공농성 중이다. 곡기도 끊었다. 살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으나 반대로 몸은 쇠약해지고 있다. '끝장 투쟁'에 나선 김용희(60)씨 이야기다.
지난 8일 김씨가 '사는' 강남역 사거리 철탑을 찾았다. 도로 한복판에 세워진 쇠기둥 위에 그가 있다. 펼침막을 덕지덕지 붙여 만든 그의 농성장은 새의 '둥지'를 닮았다. 그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손을 흔들었다.
그의 발밑 땅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모형이 감옥에 갇혀 있다. 지난 2016년 국정농단 규탄 촛불집회 때 서울 광화문 광장에 등장했던 조형물이다. 철창에 매달린 펼침막엔 '삼성에 노조 만들다 인생 망쳤습니다'란 문구가 적혀 있다.
그가 고공 단식농성을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강남역 8번 출구 삼성전자 앞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 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삼성에 노조 만들다 인생 망쳤습니다"
- 철탑에 오른 이유가 무엇인가?
"1990년대 삼성에서 노조 설립을 추진하다가 부당하게 해고됐다. 1982년 삼성항공㈜ 창원 1공장에 입사했고, 2년 뒤에 삼성시계㈜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1990년 삼성그룹 경남지역 노조설립 준비위원장으로 노조설립을 준비했다. 그때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경남지역 노조설립준비위원장에 추대된 지 한 달 쯤 됐을 때다. 창원시 지기동에서 밤 10시쯤 노조 관련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건장한 30대 초반의 다섯 청년들이 다가와 다짜고짜 각목을 휘두르며 폭행을 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잃었다. 잔디밭에 기절해 있는 걸 취객이 소변을 누다가 발견했단다. 그때가 새벽 2시 정도였다더라. 이후 병원으로 옮겨졌고 20일간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당시 삼성시계 하아무개 과장이 어느날 관계사 기술개발 현장답사를 하러 가자며 운전기사를 대동해 자동차에 태웠다. 하지만 자동차가 도착한 곳은 현장이 아니라 대구에 있는 호텔이었다. 여기서 7일 동안 감금된 상태에서 노조설립 준비를 포기하라고 강요당했다. 거부하자 온갖 공갈과 협박을 했다. 그렇게 약 15일간 대구와 전라도 대흥사 주변 모텔에 감금 당한 채 노조설립 포기를 강요 당했다. 이런 사실을 풀려난 뒤에 회사에 돌아와 폭로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부당해고 된 건 나였다. 성추행을 했다는 이유로 1991년 3월 징계를 받고 해고 됐다. 극악무도한 일도 벌어졌다. 1992년 해고 노동자로 투쟁할 때다. 경찰이 아내를 성폭행하려다가 미수에 그치는 일이 벌어졌다. 난 이게 삼성의 사주로 일어난 일이라고 본다."
여기까지 듣고 그의 말을 끊었다.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그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이하 반올림)'를 통해 증거를 보내왔다. 첫 번째 증거는 징계·해고 사유였던 성추행 혐의와 관련된 자료였다. 김씨는 "성추행 피해자 여성 직원이 직접 써준 확인서"로 공증까지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1991년 4월 22일'에 작성된 확인서에 써있는 내용은 이렇다.
"고소인(피해 여성)은 1991년 3월 1일 11시 50분쯤 피고소인(김용희씨)의 자가용에 극박한 상황에서 반강제적으로 탑승하였다고 진술하였으나 사실은 본인이 조수석 문을 열고 집에까지 바라다 달라 간청하고 조수석에 탑승하였음.
고소인 진술로서 피고소인이 새서울여관(호텔)에 강제로 끌고갔었다고 진술하였으나 그런 사실이 전혀 없었습니다.
고소인은 피고소인과 1991년 3월 2일 새벽에 새서울여관에 숙박했다고 진술하였으나 사실은 피고소인 자가용 안에서 3월 2일 오전 6시까지 같이 있다 헤어졌습니다.
위의 사실 내용이 틀림없음을 확인합니다."
참고로 차 안에서 오전 6시까지 같이 있은 이유에 대해 김씨는 "여직원 집이 마산이라 창원에서 마산으로 가던 중 창원과 마산 경계에 있는 도계동 검문소에서 2부제 단속에 걸렸다"라며 "경찰이 딱지를 뗀다고 해서 마산으로 가지 못하고 되돌아와 회사 근처에 주차해 놓고 야간조 근무시간이 끝나는 6시까지 차 안에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증거는 1992년 5월 25일 <부산일보>에 실린 기사였다. 김씨가 말한 '극악무도한 일'을 보도한 기사다.
"경찰관이 해고노동자 부인을 승용차로 납치, 강제로 성폭행을 기도했으나 창원경찰서가 이같은 사실을 은폐한 가운데 합의를 종용, 물의를 빚고 있다. 25일, 삼성시계(주) 해고노동자 부인 이모씨(30세)에 따르면, 지난 18일 밤 9시께 점포 구입 관계로 중앙동 모 주점에서 임모씨(삼성시계 인사과 전모씨의 부인)와 만나 의논 중 임씨와 잘 아는 창원경찰서 기동대 소속 황해경 순경(28세)이 나타나 자신들을 집에까지 데려다주겠다며 스쿠프 승용차에 태워 임씨부터 먼저 내려준 뒤 자신을 대방동으로 납치, 차 속에서 성폭행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성폭행 직전 성주파출소 C3 순찰 차량에 의해 구조돼 이 같은 사실을 신고했으나 성주파출소는 황 순경에 대해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고 19일 오후 합의를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황순경이 이씨를 성폭행하려 하면서 성폭행 계획을 임모씨(인사과 부인)도 알고 있다고 해 사전 계획된 범행이란 인상을 짙게 했다. 이씨는 경찰이 사건을 무마하려 하자 지난 23일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 두 사건에 삼성이 관여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지금까지 누구도 믿어주지 않았다. 언론도, 국가인권위원회 등도 그랬다. 모르쇠로 일관했을 뿐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았다. 1991년 4월 22일에 작성된 확인서는 당시 회사에 의한 성추행 조작 사건에 가담한 여직원이 찾아와 회사에 의한 계략임을 양심고백 해준 것으로 공증까지 받았다. 이런 증거를 가지고 회사를 상대로 해고무효확인소송을 진행했다.
(1994년) 대법원 상고심 '결심 공판'을 15일 앞두고 삼성 비서실과 사측(삼성시계) 임원이 찾아와 '상고 취하서를 작성해주면 계열사에 1년만 근무하다 원직 복직 시켜 주겠다'라고 했다. 복직 합의서를 작성하고 대법원에 상고 포기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1994년 2월 삼성종합건설로 발령이 나 러시아 스몰렌스키 지부에서 근무했다."
반올림은 김씨가 삼성시계와 작성했다는 합의서도 증거로 보내왔다. 합의서엔 '삼성시계 공업주식회사 인사과장' 이아무개씨가 등장하며 내용은 아래와 같다.
가) 해고자 1명(김용희)은 삼성계약사(삼성종합건설:러시아)에 1년 근무 후와 동시에 해고 당시의 원직에 복직한다. 단, 본인이 희망할 경우 1년간(삼성종합건설) 연기할 수 있다.
나) 원직이 소멸되었거나 본인이 희망할 시에는 본인과 합의하는 부서에 배치한다.
다) 회사는 계열사에 근무하기로 한 당사자의 임금에 대하여 그동안 근무하지 못한 기간의 근속연수 호봉 및 직급, 승급을 계속 근무한 것으로 인정하며, 임금수준과 직급이 그 이상이 되도록 해당계열사의 직급으로 조정하여 발령한다.
라) 회사는 계열사 근무를 마치고 삼성시계(주)로 복귀할시 당사자에 대하여 임금, 근속연수 연월차 및 제반직급을 결정할 시 삼성시계(주)에서 계속 근무한 것으로 인정하여 결정하여야 한다.
마) 삼성시계(주)를 상대로 해고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한 당사자는 이를 취하한다.
바) 해고자는 발령 이후 근무처에서 성실히 근무에 임해야 한다.
"아버지는 행방불명, 아내는 대인기피증... 그만 둘 수 없다"
- 왜 복직했다가 다시 해고당했나?
"러시아에서도 삼성은 끈질기게 '노조 포기 각서'에 서명하라고 했으나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감금해 손과 팔을 포승줄로 묶고 폭행했다. 그래도 거부하자 내가 갖고 있던 007가방을 부수고 거기에 있던 복직합의서 등 일체 서류를 갈취해 갔다. 심지어 러시아 대사관에 간첩 혐의로 고발했으나 무혐의로 풀려났다.
이후 사측은 자신들의 음모를 감추려 국내 입국을 막았다. 싱가포르 건설현장으로 5년간 국외근무 하라고 통보했다. 이를 무시하고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입국했다. 1995년 회사(삼성시계)는 3년 대기발령 후 (삼성시계에) 복직을 약속했으나 1998년 회사(삼성시계)가 퇴출 기업으로 선정되면서 없어졌다. 그 길로 혼자 삼성그룹 본사 앞에서 해고 복직 투쟁을 시작했다. 그 후 농성을 하다가 두 번이나 구속됐다. 첫 번째는 1999년 공무상비밀표시무효죄(이후 사면복권 됨)이었고, 두 번째는 2000년 공갈죄였다."
- 20년째 투쟁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991년 삼성에 노조설립을 하다가 해고 당했을 때다. 고향에 계신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그때는 해고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집도 괜찮게 살 때였다. 그런데 이미 내가 다녀가기 전부터 삼성에서 아버지를 찾아가 회유하고 협박하는 등 괴롭혔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아버지가 유언장을 남기고 행방불명 됐고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그리고 아내는 그런(성폭행 미수) 일을 당한 후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다. 이게 다 삼성에 노조 설립하려다가 생긴 일이다. 이게 한이 돼서 그만두지 못한다. 명예회복과 복직을 이루는 날까지 농성을 이어갈 것이다."
- 오는 10일이 법적 정년(60세)이 되는 날이다
"그렇다. 그래서 정년 전에 명예회복과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아도 농성을 이어갈 것이다. 지금까지 해볼 건 다 해봤다. 스포츠에 철인 3종 경기가 있다면 해고자 농성에선 단식과 구속, 고공농성이 있다.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 농성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볼 생각은 안 해 봤나?
"가슴에 한이 맺혔다. 납치와 폭행, 감금을 하고 가족까지 괴롭혔다. 2년 전 집에서 나와 월셋방을 얻었다. 명예회복과 복직을 이루지 못하면, 집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유언을 남기고 나왔다. 사측이 그랬다. 노조 설립만 포기하면 3대가 먹고 살 수 있게 해주겠다며 10억 원을 주겠다고도 했다. 대신 노조를 포기하지 않으면 3대가 거지로 살게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지구를 다 준다고 해도 양심과 바꾸지 않겠다. 사람은 돈으로 사는 게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아버지가 행방불명됐고 아내가 극악무도한 일을 겪었다."
- 무리한 방식으로 농성을 한다는 비판도 있다.
"투쟁하는 방식이 아니라 왜 투쟁을 하게 됐는지를 봐야 한다. 철탑에 오른 사람을 손가락질할 게 아니라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해야 한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마저 가로막으려 사람을 납치해 감금하고 폭행한 삼성을 비판해야 한다."
- 단식 36일째다. 건강에 이상은 없는가?
"낮에는 불볕더위로 탈수증상이 있고 밤에는 소음으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따금 어지럽고 기운이 없지만 아직 견딜 만하다."
하지만 '아직 버틸 수 있다'고 말한 그의 말과 달리 의료진은 "하루라도 빨리 농성을 끝내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라고 했다.
지난 5일 그의 건강 상태를 보려고 철탑에 올랐던 홍종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의사는 "단식이 길어지고 강한 햇볕에 노출되면서 탈수증상이 심각해지고 있다"라며 "단식으로 체력이 저하된 상태인데 철탑이 약한 바람에도 크게 흔들리면서 어지럼증까지 호소하고 있어 빠른 조치가 필요한 상태다, 최대한 빨리 농성을 접고 땅으로 내려와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는 동영상을 촬영해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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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씨는 서울 강남역 사거리 CCTV 철탑 위에 산다. 삼성에서 일하다가 ‘부당하게’ 해고됐다는 그가 지난 8일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동영상으로 촬영해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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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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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일이라고 문제제기 못한다면 이런 일 되풀이 될 것"
이날 시민·종교단체는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씨의 사연을 소개하며 국가인권위에 '인권침해 실태조사'를 요구했다. 이들은 "무노조경영 하에 삼성이 저질러왔던 인권침해, 노동자 탄압은 그 행태가 너무도 잔인했다"라며 "헌법상 권리인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벌어지는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를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서 철저히 조사하고 개선 권고를 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9일로 김씨는 30일째 서울 강남역 사거리 교통 폐쇄회로화면(CCTV) 철탑 위에서 아침을 맞았다. 곡기를 끊은 지 37일째다. 하루만 더 지나면 그는 '법적 정년'이 된다. 그는 삼성 계열사 아무 곳에 서류상 만이라도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를 징계·해고한 삼성시계(주)는 문을 닫았다. 그가 처음 입사했던 삼성테크원은 한화그룹에 매각됐다. 지난 2017년 삼성은 경영쇄신안을 발표한 뒤 계열사 자율경영 체제로 전환하면서 사실상 '그룹 해체'를 선언했다. 삼성그룹의 미래전략실도 해체됐다.
시민·종교단체는 인권위에 김씨의 인권침해 실태조사를 요구하며 이렇게 썼다.
"오래된 과거의 일이라고 문제제기 할 수 없다면 이 일은 되풀이 될 것이다. 노조설립과 운영과정에서 벌어진 삼성 기업의 폭력, 인권침해 만행에 국가 공권력이 결탁되었고,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고 있으며, 국내에서 국외로 암처럼 번졌다."
한편 김용희씨의 농성과 주장에 대해 삼성전자 홍보실의 관계자는 "우리도 뉴스를 보고 알았다"라며 자신은 잘 모른다고 답했다. 홍보실의 다른 관계자들에게도 여러 차례 전화를 하고 문자를 남겼으나 답변을 듣지는 못했다. 8일 KBS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삼성은 "김씨가 일하던 회사가 현재 삼성에 속해 있지 않고 그룹 미래전략실도 해체돼 김씨에 대한 입장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