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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님께

긴꼬리딱새를 아시나요? 영어로는 '낙원의 날벌레잡이새(Paradise Flycatcher)'라고도 합니다. 우리말 이름이 보여주듯, 긴꼬리딱새 수컷은 몸길이(약15cm)의 두배(약30cm)나 되는 기다란 꼬리와 밝게 빛나는 푸른 눈테를 가지고 있어, 정말 낙원에나 살 것처럼 신비롭게 생겼습니다. 영어 이름이 보여주듯, 긴꼬리딱새는 주로 나방이나 각다귀같은 날벌레를 먹고 삽니다.

이런 날벌레들은 물이 있어야만 알을 낳고 살아가기 때문에, 긴꼬리딱새도 물 근처에 둥지를 짓습니다. 또한 긴꼬리딱새는 둥지를 천적과 강한 햇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잎이 무성한 활엽수에 주로 둥지를 틉니다. 바로 깊은 숲 속의 계곡이죠. 그래서 긴꼬리딱새는 생태계가 잘 살아 있는 건강한 계곡에서만 살아가는, 계곡습지의 지표종입니다. 이렇게 좋은 숲과 계곡습지가 그 동안 많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긴꼬리딱새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멸종위기에 근접한(Near Threatened) 종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야생생물법에 따라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으로 지정했습니다.
 
노자산의 긴꼬리딱새 푸르게 빛나는 눈과 기다란 꼬리를 가진 신비로운 이 새의 고향은 바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입니다.
노자산의 긴꼬리딱새푸르게 빛나는 눈과 기다란 꼬리를 가진 신비로운 이 새의 고향은 바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입니다. ⓒ 장용창
  
거제 노자산

노자산(老子山)은 경남 거제시의 동부면과 남부면에 걸쳐 있습니다. 소나무들도 있지만, 주로 활엽수들이, 산 이름처럼 늙은 숲을 이루고 있는 산입니다. 거제 노자산엔 귀하고 여린 식물들이 너무 많습니다. 잘못 발을 내디뎠다간 마구 밟게 됩니다. 그래서 사실 저는 이 노자산 숲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알면서도 그 동안 일부러 잘 안 갔습니다. 발을 들여놓기가 너무 미안할 정도로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노자산의 활엽수림 노자산엔 소나무도 있지만, 고로쇠나무같은 활엽수들이 많습니다. 두 나무가 더불어 함께 숲을 지키자고 약속이라도 한 걸까요?
노자산의 활엽수림노자산엔 소나무도 있지만, 고로쇠나무같은 활엽수들이 많습니다. 두 나무가 더불어 함께 숲을 지키자고 약속이라도 한 걸까요? ⓒ 장용창
  
거제 노자산의 골프장 계획

그런데 이렇게 발을 들여놓기가 미안할 정도로 아름다운 숲을 밀어서 골프장을 짓는답니다. '거제 남부권 복합관광단지' 계획이 그것인데요, 거제시가 수립한 이 계획을 2019년 5월 16일 경상남도가 승인하고 관광단지로 지정고시했습니다(경상남도 고시 제2019-162호). 고시문에 따르면 부지면적은 369만3875㎡로, 대략 112만평입니다. 또한 전략환경영향평가서에 따르면 골프장 면적이 127만400㎡(약 38만평)로, 34%를 차지합니다.
 
노자산 골프장 시설배치계획도 거제 노자산 골프장 (거제 남부권 복합관광단지) 시설배치 계획
노자산 골프장 시설배치계획도거제 노자산 골프장 (거제 남부권 복합관광단지) 시설배치 계획 ⓒ 전략환경영향평가서
 
거제 골프장 예정지의 멸종위기종 긴꼬리딱새 둥지

대통령님, 긴꼬리딱새 이야기를 제가 꺼낸 이유를, 지금쯤 짐작하시나요? 자연환경보전법에 따르면 긴꼬리딱새같은 멸종위기종 동물이 살고 있는 곳은 반경 250m를 개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노자산 골프장 개발이 건설이 포함된 거제 남부권 복합관광단지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봤더니 '조사 결과 긴꼬리딱새가 없었다'고 되어 있더군요. 정말 터무니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래서 숲에게 미안하지만, 드디어 숲을 찾아가 봤던 것입니다. 저는 지난 5월부터 6월까지 골프장 예정지에서 긴꼬리딱새를 열 마리 이상 봤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멸종위기종 동물이라 하더라도 둥지가 없으면, '그냥 지나가는 새일 뿐이므로 개발의 영향이 미미하다'라고 평가하고는 그냥 개발을 해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오기가 발동해서 긴꼬리딱새의 둥지를 찾아내버렸습니다. 그것도 두 개나요.
 
긴꼬리딱새 둥지와 알 노자산 골프장 예정지의 긴꼬리딱새 둥지. 알을 품은 암컷(왼쪽)과 알(오른쪽).
긴꼬리딱새 둥지와 알노자산 골프장 예정지의 긴꼬리딱새 둥지. 알을 품은 암컷(왼쪽)과 알(오른쪽). ⓒ 장용창, 원종태
 

대통령님, 그러면 이제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연환경보전법에서 <멸종위기종 동물이 사는 곳은 개발할 수 없다>라고 한 취지는 명확합니다. 그렇게 생태계가 건강하게 살아 있는 곳은, 개발하지 말고 보존하는 것이 국민 모두에게 훨씬 더 큰 혜택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곳이 개발해도 될 땅이고, 어떤 곳은 개발하면 안될 땅인지 정부가 생태계를 세밀하게 조사하고 평가해서 결정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저는 거제 노자산 골프장 예정지에서 멸종위기종 긴꼬리딱새의 둥지가 발견되었으니, 번식이 끝나서 새가 날아가지 전에 얼른 와서 현장 확인을 해달라고 환경부에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부서의 책임이 아니라면서 전화를 돌리기만 하더니 결국 현장에 오지 않더군요. 자연환경보전법에 따라 멸종위기종 동물의 서식지를 지켜야 할 책임은 저같은 일반시민에게 있는 건가요, 아니면 환경부 공무원에게 있는 건가요?
 
노자산 숲을 지키는 캠페인 노자산 숲을 지켜달라고 시민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한 목소리로 외쳐도, 정작 환경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공무원들은 답이 없습니다. (사진: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노자산 숲을 지키는 캠페인노자산 숲을 지켜달라고 시민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한 목소리로 외쳐도, 정작 환경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공무원들은 답이 없습니다. (사진: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부실 환경영향평가를 할 수밖에 없는 현재 제도

이 글에서 모두 말씀 드리긴 어렵지만, 거제 노자산 골프장에 대한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보면, 이와 같은 부실 조사 내용이 많습니다. (관련 기사: 거제 노자산~가라산에 골프장을? 환경부 환경영향평가 '동의' 논란)  지난 4월 창녕의 대봉늪 정비사업도 환경운동가가 목숨 걸고 단식을 한 끝에야 잠시 공사를 중단시켰습니다.

제주도 비자림로 확장 사업도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몇 개월째 농성을 해서야, 천연기념물 팔색조의 서식을 밝혀내고 한동안 공사를 중단할 수 있었습니다. 새만금 매립사업의 환경영향평가서 안에 포함된 경제성 평가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의 이준구 교수가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엉터리"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강원도 구만리 골프장에 대해서는 마을 주민들이 벌금형 처벌을 받으면서 결국 환경영향평가서의 부실을 밝혀내고 계획을 백지화시켰습니다. 이런 부실 환경영향평가 때문에, 제주에서 강원도까지 금수강산이 파괴되고, 국민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하게 이루어지는 이유는 대통령님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 대행업체에게 돈을 주고 일을 환경영향평가를 맡기기 때문입니다. 사업자부터 의뢰를 받은 대행업체가, 어떻게 그 개발을 못하도록, 환경영향평가를 공정하게 진행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문제점을 이미 대통령님도 잘 아시기 때문에, 지난 대통령 선거 때 환경영향평가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공약하셨지요? 저는 이번에 글을 쓰면서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찾아보고 두 번이나 놀랐습니다. 첫째, 대통령님이 공약하신 <환경영향평가 비용 공탁제>는 위와 같은 환경영향평가 대행업체의 독립성을 확보해서 현재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인데, 이런 아이디어를 저보다 먼저 대통령님이 생각해냈다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둘째, 이 좋은 제도를 2018년부터 시행하겠다고 하신 약속을 2019년 7월이 되도록 지키지 못하고 계신 걸 보고 또 놀랐습니다.
 
환경영향평가제도 개선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했던 <환경영향평가 비용 공탁제>는 현재 환경영향평가제도의 문제점을 크게 개선할 수 있는 좋은 방안입니다.
환경영향평가제도 개선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했던 <환경영향평가 비용 공탁제>는 현재 환경영향평가제도의 문제점을 크게 개선할 수 있는 좋은 방안입니다. ⓒ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국민의 이익을 위해 노자산의 늙은 숲을 지켜야 합니다

대통령님, 저는 환경 보호보다 국민 경제에 더 관심이 많은 공인회계사입니다. 옳은 일만 생각하는 군자와 달리, 저는 이익만을 생각하는 소인배입니다. 그런데 노자산의 숲을 없애고 골프장을 짓는 일은, 소인배의 눈으로 따져봐도 국민에게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국민들은 땅과 숲을 잃어 손해를 보고, 개발업자만 이익을 보게 되는 것이 노자산 골프장 계획입니다.

정부는 공익을 최선으로 판단해야 하는 거죠? 차라리 노자산 계곡을 습지보전법에 따른 습지보호구역과 국제습지보호협약에 따른 람사르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이 국민들을 위해 훨씬 더 이익이 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엄마 품에 안기듯, 사람들은 이 늙은 숲의 품에 안겨 자연을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도 못하고, 국민에게 손해될 게 뻔한 골프장 개발 사업을 승인한 경상남도가 저는 너무 밉습니다. 저는 이 숲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정부와 싸울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일은 알 수 없기에, 저희 시민들이 이 싸움에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긴꼬리딱새가 사는 이 늙은 숲도 사라지겠지요. 이 숲이 사라지기 전에, 대통령님, 한번 숲에 안 오시렵니까? 

2019년 7월 9일  
숙의민주주의 환경연구소장 장용창 올림.

덧붙이는 글 | 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에 실을 예정입니다.


#거제#노자산#골프장#환경영향평가#거제 남부권 복합관광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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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의민주주의 환경연구소장, 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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