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앞서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관련 1차 소환에 불응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에 2차 출석요구를 통보한 가운데,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14일 "경찰 조사의 본질은 '야당 탄압'이다. 경찰이 청와대의 오더(지시)로 그렇게 하고 있다"며 재차 소환에 불응할 의사를 밝혔다. 해당 사건을 조사 중인 서울 영등포경찰서 측은 이에 대해 "(나 원내대표가 주장하는) '탄압'은 불가능한 얘기"라며 원칙과 절차대로 수사를 진행할 뿐이라고 항변했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안보해체, 이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답해야 합니다'란 제목으로 한 기자회견에서,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을 감금한 혐의로 피고발된 한국당 의원들의 경찰 2차 소환 통보와 관련한 질문에 "우리 당(자유한국당) 입장은 명확하다. 이 문제의 본질은 야당 탄압이고, 이런 탄압에 우리가 응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답하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11일 당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경찰의 '야당탄압 수사'는 사실상 제2의 패스트트랙 폭거다. 불공정한 사법잣대를 들이대는 전형적인 정치탄압, '제1야당 겁주기' 소환일 뿐"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영등포경찰서는 지난4일 한국당 엄용수·여상규·이양수·정갑윤 등 4명 의원에 대해 특수공무방해·특수감금 등 혐의를 들어 피고발인 신분 출석을 요구했으나, 이들은 "경찰이 과도하게 대응한다"는 등 이유로 모두 불출석해 경찰이 2차 소환(출석요구)를 통보한 상태다. 한국당 측은 또 피고발인 조사에는 불응하고 자신들이 고발한 고발인 조사에만 응한 것으로 확인돼, 정의당으로부터 "경찰조사를 골라먹는 사탕 정도로 여기느냐"는 등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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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도 경찰 조사를 "표적 소환"이라고 규정한 나 원내대표는 이날도 "야당 탄압"이라는 견해를 굽히지 않았다. 그는 나아가 "실질적으로 말씀드려서 우리는 국회 선진화법을 위반한 게 없다. 이 문제의 시발점은 문희상 의장과 김관영 바른미래당 전 원내대표의 불법 사·보임"이라고도 주장했다. "빠루·해머를 동원한 그들을 먼저 수사해야 한다. 수사의 순서가 틀렸고, 한국당 의원들부터 부르는 건 야당 탄압"이라는 취지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측에 따르면 그러나 고발당한 한국당 의원 59명 중 일부는 '국회법(일명 '국회선진화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국회법 165조(국회회의 방해금지), 166조(국회 회의 방해죄)를 위반한 혐의다. 영등포경찰서 관계자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고발된 죄명만 가지고 죄 유무를 판단할 수는 없다"면서도 "한국당 중 일부 의원이 국회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건 맞다. '국회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분들 중 한국당말고 민주당·정의당 의원들은 없다"고 말했다.
녹색당 "한국당, 명백한 국회법 위반"... 경찰 "법령·규칙 따라, 순서대로 수사할 뿐"
"한국당(의원들)은 국회법을 위반한 게 없다"는 나 원내대표의 주장이 사실과는 다르다는 설명이다. 앞서 표창원 민주당 의원 등이 본인 페이스북에 공개한 경찰 출석요구서에 따르면, 민주당·정의당 소속 의원들은 국회법 위반 혐의가 아니라 몸싸움과 관련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폭행) 혐의로 고발됐다.
지난 4월 한국당 의원들을 국회회의방해죄·특수감금죄 등 등 혐의로 고발한 녹색당 측도 "한국당의 국회선진화법 위반 혐의는 명백하다"라는 입장이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국회법을 위반한 게 없다는 말은 맞지 않다"며 "아마 나 원내대표가 이 문제를 정치화해서 빠져나가려는 것 같은데, 이건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실정법 위반으로 명백한 범죄행위"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나 원내대표 발언은 오히려 이를 수사하는 경찰에 대한 정치적 외압으로 비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녹색당은 지난 4월26일 한국당 황교안 당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채이배 의원 관련 한국당 의원 11명 등을 ·특수주거침입 등 혐의로 고발했다.
"수사 순서가 틀렸다"는 나 원내대표 주장에 대해서도 경찰은 "CCTV·취재영상 등 증거분석이 끝난 순서대로 수사할 뿐"이라는 답변이다. 해당 경찰 관계자는 이날 이같이 밝히며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의원을 고발 받은 건 경찰도 처음이다. 그런데 '탄압'이라고 의심받을 만한 행동을 하는 게 가능하겠나. 불가능하다"란 취지로 반박했다. "(외부의) 관심·우려가 많기 때문에 더욱 더 형사소송법·범죄수사규칙 등 원칙과 절차를 따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오는 15일부터 한국당 13명, 민주당 4명, 정의당 1명 의원 등 국회의원 18명을 내주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다. 일부 민주당 의원, 정의당 의원 등은 경찰의 출석요구에 응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14일 경찰에 따르면 한국당 의원들 중 출석요구에 응할 것이라고 알린 의원은 아직 한 명도 없는 상황이다.
한편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북한 선박의 삼척항 입항 사건, 해군 제2함대 허위자백 종용, 3대 한미연합훈련의 폐지·축소 등 대한민국 안보는 붕괴되고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은 국방 위기를 어떻게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할지에 대해 답하라. 정경두 국방부 장관의 책임에 대해서도 직접 설명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민주당이 '정경두 방탄국회'를 하고 있다며 "정경두 국방장관 해임건의안을 15일 오전 제출할 것"이라고도 알렸다.
나 원내대표는 여야가 처리를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진 추가경정예산과 관련해서도 "여당은 추경만 (통과)되면 모든 것이 풀릴 것처럼 야당을 압박해놓고서, 정작 추경 심사에는 무관심하다"며 민주당이 국방장관 해임건의안 표결은 없이 추경 및 법안 처리만을 하려 한다면 여기에 협조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나 원내대표는 관련해 "(민주당이 북한목선 국정조사 등을 받지 않으면) 사실상 추경 협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