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의 내 시간은 오롯이 나의 것이었다. 물론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제한된 자유를 누렸지만, 적어도 업무 외 시간은 전부 나의 것이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었다. 여행을 하거나, 취미생활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부업을 하거나, 종교생활 또는 봉사활동을 했다. 집안일의 경우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는 동안에는 대부분 친정엄마가 해주셨고, 따로 나와 살 때는 내 컨디션에 맞춰 적당히 미룰 수 있었다.
엄마에게 자유란 없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모든 일상이 뒤집혔다. 출산 전에도 가정 내에 돌봄이 필요한 환자가 있어 수시로 자유를 압류당하곤 했지만 한시적이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는 일상의 자유가 사실상 아예 사라져 버렸다.
잠자는 것, 먹는 것, 입는 것, 외출, TV 시청, 독서, 글쓰기, 일, 휴식 등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 잠과 휴식은 아이가 자야만 그 한도 내에서 허락됐고, 먹고 씻는 일도 아이가 방해하지 않아야 가능했다. 입는 것은 당연히 육아에 최적화된 복장으로 제한됐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일을 하는 것 등 집중력을 요하는 행위는 더욱 불가능해졌다. 이 역시 아이가 잠을 자거나, 나와 격리된 공간에서 누군가 대신 아이를 돌봐줄 때만 가능한 일이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이처럼 평범했던 일상과 자유를 포기하고 희생을 배우는 과정인 것 같다. 나 역시 친정엄마의 희생으로 보호받고 양육 받으며 자라왔을 것이다.
한 생명의 탄생은 너무나 숭고하고 존엄한 일이지만, 육아는 참으로 고달픈 현실이다. 육아라는 것이 몇 년 안에 끝날 일도 아니다. 짧게는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그리고 성인이 된 후에도 부모로서 뒷받침해주고 도와주어야 할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사랑하는 내 아이지만 그 아이를 키우느라 지치고 힘들 때가 많다. 단순히 몸의 피로 때문이 아니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생떼를 쓰며 과격한 행동으로 자기 표현을 하는 아기와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질 때가 많다.
"아이보다 엄마가 더 아파 보여요"
100일이 지난 아이는 콧물감기로 시작해서 6개월 무렵부터는 기관지염을 달고 살았다. 그러다 올해부터는 축농증과 비염, 콧물감기는 물론이고, 수족구병, 구내염, 돌발진 등 다양한 바이러스성 질환에 걸렸다. 치료하느라 수시로 어린이집에 결석하며 엄마와 장시간을 함께 보냈다.
아이가 아플 때면 주 양육자인 나도 함께 지쳐 "엄마가 더 아파 보여요. 금방 쓰러질 것 같아요"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실제로 아픈 아이를 돌보고 놀아주다 보면 보호자인 나도 같이 굶고 잠을 못 자 심신이 황폐해져 갔다.
그런 내 일상에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한 지 3개월 반 만에 처음으로 지역 내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주최하는 '부모교육'을 받으러 갔다. 너무 기뻤다. 시립도서관에서 주관하는 인문학 강의를 듣던 날은 '내가 이런 시간을 가져도 되나' 불안하고 초조하기까지 했다.
이럴 시간에 아이를 더 잘 키울 방법을 공부하거나, 아이를 위해 영양가 있는 음식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집안 청소를 더 깔끔히 하고 가족을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더 많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아이가 아파서 2주 동안 어린이집에 안 보내고 있다가, 상태가 호전된 뒤에야 겨우 등원시키고 오랜만에 다시 인문학 강의를 들으러 갔다. 그날 강의 말미에 대중음악사 전공자인 강사가 직접 노래를 불러주었는데, 듣다가 펑펑 울었다. 아이를 낳아 길러온 지난 2년은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고 잠을 자는 것 외에 나를 위한 시간은 없었다. 그런 내가 인문학 강의를 듣는 날이 오다니. 꿈 같았다.
아직도 아이는 한 달에 3분의 1에서 절반 가까이 아파서 어린이집에 못 간다. 그러면 내가 데리고 있는다. 좋은 강연을 신청해 놓고도 못 가는 경우도 있고, 약속을 잡아놓고도 취소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대신 아이를 돌봐줄 사람도 없다면, 결국 엄마인 내가 돌봐야 한다.
그래서 계획은 수시로 변경된다.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가계를 위한 부업조차도 내 뜻대로 할 수가 없다. 아직은 주 양육자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시기인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씩 잠과 휴식을 포기하며 책을 읽고, 인문학 강의를 듣고, 글을 쓰거나 통·번역 등의 부업도 하고 있다. 아무리 피곤하고 지쳐도 이것마저 포기하면 내 영혼이 병들 것 같았다.
나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아기 엄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무사히 등원해 하루를 보내주는 날이면, 나는 공부하기 위해 애쓴다. 요즘 도서관에서는 양질의 교육 프로그램들을 진행한다. 지역 도서관에서 하는 몇몇 프로그램에만 참여해도 인문학 공부와 문화예술, 독서 체험이 가능하다.
나도 요즘 독서, 인문아카데미, 부모와 자녀를 위한 감정코칭, 글쓰기 수업, 심리 치유 등 다양한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기획된 독서인문아카데미에 참여했다. 영화, 문화재 운동, 대중음악, 체육 등의 분야에서 독립을 외친 이들의 활동을 엮어 소개하는 강연이었다.
자녀와의 대화 기술이나 자녀를 존중하는 양육법 등의 부모교육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여름 휴가철이 끝나면 가을에는 필사와 서평쓰기를 연습할 수 있는 도서관 글쓰기 수업에도 참여할 생각이고, 틈나는 대로 다양한 인문학 강의를 계속해서 들을 생각이다. 그리고 내 안의 불안과 스트레스, 분노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감정코칭과 심리 치유를 위한 수업에도 적극 참여할 계획이다.
<좋은 부모의 시작은 자기 치유다>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이나 글도 자주 접하게 된다. 한때 산후 우울증으로 상담받았을 때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주 양육자인 부모는 자신의 일상과 삶에서 육아를 위해 일정 기간 포기해야 할 게 생긴다. 하지만 때로는 엄마의 행복과 치유, 정신건강을 위한 시간도 꼭 필요하기에, 나는 앞으로도 틈틈이 인문학 강의를 듣고, 책을 읽고, 글을 쓸 것이다. 엄마로서도, 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도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끝없이 공부하고 또 공부할 것이다. 이는 나의 지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치유와 배움, 연습의 과정을 통해 앎을 삶에서 실천하기 위함이다.
나는 더 다부지고 건강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 몸도 마음도 튼튼한 엄마가 되고 싶다. 아이를 더 씩씩하게 잘 키우려면 엄마인 내가 잠도 잘 자고, 음식도 고루 잘 먹어야 하고, 운동으로 체력도 키워야 한다. 그리고 하나 더. 인문학을 공부하며 힘과 건강한 정신력을 키우려 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가사와 양육 이외의) 자기 일을 하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 나도 행복하고, 아이도 행복해질 길은 분명 있을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