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일 일본의 아베정부는 느닷없이 한국에 대한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 핵심소재의 수출을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한·일간에 경제전쟁을 촉발하는 것이며, 그러한 물건에 대한 대일 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게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다. 아베정부가 겉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한국은 "국제평화와 안전을 위해서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같은 데서 문재인 정부의 외교적 무능을 질타하는 비난이 쏟아졌다.
한국이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심하여, "미국에서 벌어온 돈을 모두 일본에 갖다 바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일 무역역조현상은 한국경제의 아킬레스건이었다. 그것은 오늘날까지도 시정되지 않았다. 아베정부는 그 약점을 물고 늘어진 것으로 보인다.
좌우간 한국은 그러한 약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나름의 성장을 지속해 왔다. 그러나 한일간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잠재되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독도문제를 위시해서,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진정어린 반성과 사과 그리고 한국인에게 끼친 피해에 대한 정당한 법적 배상의 문제다. 아베정부는, 이러한 문제는 1965년의 한일 수교협정에 의하여 그리고 위안부문제는 2015년 12월 박근혜정부와의 한일합의에 의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2017년 5월 한국에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다. 이것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70년사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10년을 뺀, 60년을 지배해 왔던 한국의 주류세력에게 엄청난 좌절감을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한국과 기분좋은(?) 관계를 유지해온 일본의 주류세력에게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이 '위안부합의'가 피해당사자의 의견도 듣지 않고, 일본정부의 사과도 없이, 일본정부가 보내준 돈으로, 없었던 일로 (또는 불가역적으로), 처리한다는 것이 국민정서에 맞지 않으며, 많은 국민들이 폐기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것을 유지하기는 어려우니 다른 방안을 강구하자고 제의했다. 아베정부는 박근혜정부와는 다른 '기분 나쁜' 상대를 만난 셈이다.
한국에서 2년 동안 대사를 지냈고, 12년을 근무한 대표적인 지한파 외교관이라고 알려졌으며 2013년 한국정부로부터 수교훈장까지 받았다는 무토 마사토시라는 사람이 <문재인이라는 재액>이라는 책을 최근 발간했다. 거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고 한다.
"문재인정부가 외교와 내정에서 실책이 계속돼도 행정, 사법, 언론을 좌지우지하는 독재자의 공포정치 때문에 한국인들은 보통 실체를 알 수 없다."
"한일 양국 국민을 불행하게 만든 최악의 대통령을 어떻게 압박하고 퇴장시키면 좋을지 일본인은 눈을 떼지 않고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자유한국당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를 '좌파 독재정권'이라고 하고, 언론과 검찰을 장악하고, 안보· 경제· 법치를 망쳤다고 주장하는 논법과 참으로 유사하지 않은가? 나는 아베가, 한국이 국제법을 지키지 않는 '나쁜 나라'이며, '신뢰를 져버렸다'고 주장하는 것에 주목한다. 여기서 '한국'이란 문재인 정권을 말하는 것이며, 신뢰관계가 깨진 것은 다른 정권하에서는 괜찮았는데, 지금은 참을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말이란 그 사람의 속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에, 이것은 아베의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한국의 주류세력들과 일본의 관계
그리하여 한국을 60년 동안 지배해 왔던 한국의 주류세력들이 일본과 얼마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는가를 잠깐 살펴보고자 한다. 그들은 해방 후의 한국사가 산업화와 경제적 번영을 이룩한 위대한 역사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밀리고 핍박받았다고 생각하는 변방세력들은 그 기간이 친일파가 득세하고, 인권이 유린되고, 민주주의와 헌정이 파괴되고, 역사의 방향이 전도된 어두운 시대라고 생각한다. 임종국의 <실록 친일파>에 의하면, 자유당 정권 12년 동안 실질적인 각료 연인원 96명 중 36.3%인 30명이 친일 전력자라고 한다. 비단 행정부 뿐이겠는가!
나라의 모든 분야가 다 그럴 것이고, 오히려 독립운동했던 사람들의 후손들 중에는 성까지 바꾸고 몸을 숨겨야 했던 사람도 있었다. 역사가 바로 서지 못하면, 사람의 정신이 병들고, 세상은 혼란스럽고, 나라는 부패하고, 인간은 행복할 수 없다. 4. 19의거에 의하여 쟁취된 헌정은 다시 5. 16군사쿠테타에 의하여 짓밟혔다.
일본의 주류세력들은 구테타의 수괴인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를 나온 다카기 마사오(高木正雄)라는 것을 알고 환호했다. 1963년 12월 박정희가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당시 일본 자민당 부총재였던 오노 반보쿠라는 자가 특사로 오면서, "대통령 취임식에 가는 것은 아들의 경사를 보는 것 같아 무엇보다도 기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들 두 사람의 관계가 과연 어떠했기에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한국인으로서는 정말 듣기 거북한 말이다. 하여간 이쯤되면 '신뢰관계'가 아니라 혈연적 유대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러면 지금 이 사단을 만들고 있는 일본 총리 아베 신조는 어떤 인물인가? 그의 정치적 목표는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난날 아시아의 패자(霸者)로서 많은 나라를 침략하고 수탈했던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그의 집안은 일본의 소위 화족(華族)계급의 명문으로서, 아버지는 외무대신을 지냈고, 동생은 참의원이며,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1941년 도조내각의 상공장관을 지냈으며, 도쿄재판, 즉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A급 전쟁범죄 용의자로 구속되었다가 풀려나 수상까지 된 특이한 이력을 가진 자이다.
역시 수상을 지낸 사토 에이사쿠는 그 친동생이며 아베의 외종조부가 된다. 더구나 그의 고조부 오시마 요시마사란 자는 정한론을 신봉하는 군국주의자로서 육군대장과 관동도독을 지냈고, 1894년 7월 경복궁을 범궐하여 고종을 겁박하고 청일전쟁을 유발한 바로 그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와는 특이한 인연을 가진 사람이다.
한일간의 분란의 불씨는 국민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정권이 밀어부친 한일협정에 있는데도, 박정희는 1970년 6월 18일 기시 노부스케를 청와대로 불러 수교훈장 광화장을 수여했다. 그는 강제노역을 주관하는 도조내각의 상공장관이었기에, 그의 서훈은, 조선에서 강제로 징용된 피해자들에게는 기막힌 일이었을 것이다. 이 밖에도 그로부터 훈장을 받은 일본인들이 70명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박정희 같은 자를 세종대왕보다도 더 훌륭한 사람이라고 믿는 자들도 있다는데, 이런 사람들은 비단 정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관계· 법조계· 언론계· 학계· 예술계 어디에도 있을 것이다. 이들이 소위 한국의 주류다.
최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라는 직함을 단 전영기의 '대법관들이 잘못 끼운 첫단추'라는 칼럼이 신문에 실렸는데(2019년 7월 15일), 이런 내용이었다.
'2012년과 2018년의 대법원 판결문을 읽어보면, 세계일반의 상식과 법의식에 부합하는 논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은 일본에 승전국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배상권을 행사할 수 없는 관계다.'
'사고는 대법원이 치고 고통은 국민이 당하는 형국이다.'
'1919년에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1919~45년까지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그 자체로 불법이라는 주장은 국제법적으로는 전제불성립의 오류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이것은 일본의 극우논객들도 하기 어려운 주장이 아닐까.
아베정부가 주장하는 유일한 논거는 대한민국의 배상청구권이 정부나 국민이나 할 것 없이 1965년의 한일협정으로 완전히 매듭지어졌다는 것이다. 그때 줄 것 다 주었는데, 왜 또 달라고 하느냐? 하는 것이다.
박정희 정부는 참으로 무지하고 경솔하게 청구권이라는 명목으로 피해당사자인 국민 개개인의 의견도 듣지 않고, 마치 그것을 포기하는 듯한 표현을 그 협정조항에 포함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법의 일반원리는 국가가 국민의 권리를 마음대로 포기한다는 것은 인정되지 않으므로, 설사 그런 규정이 있다 하더라도 개인의 배상청구권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와 같은 주장이 일본언론에 보도되면(물론 일본언론은 한국에서 이런 주장이 있다고 보도한다), 한국의 주류언론들이 그것을 다시 받아 마치 일본의 주장인 것처럼 보도하는 식으로 가짜의 유해한 주장들이 확대재생산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친일파의 자식'보다 중요한 건 지금 어떻게 정치를 하는가
조국 전 민정수석이, 2018년의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는 듯한 언사를 하는 사람은 친일파나 다름없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는 누구를 꼭 지목하여 '당신이 친일파야'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는데도, 자유한국당에서는 '국민을 분열시킨다'고 아우성이다. 급기야는 나경원 원내대표가 최근에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서 "내가 알아본 바로는 더불어민주당에 친일파 후손들이 더 많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런가는 장차 알아볼만한 일이기는 하지만, 나는 당장 그런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그 출신 성분이야 어떻든 자유당, 군사독재, 유신, 5공 같은 한국 현대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형성하는 우리나라 주류세력들의 사상과 행태를 정확히 이해하고 평가해 보자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이고 더불어민주당이고, 친일파의 자식도 있을 것이고, 독재자의 자식도 있을 것이며, 독립운동가의 자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어떤 집단·어떤 진영에 들어가서 어떻게 정치를 하며, 제대로 자기 할 일을 하는가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민중들이 나섰다. 아베정부의 터무니없는 경제전쟁과 문재인 정부 파괴공작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일본의 주류세력들은 별 것 아닐거라고,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촛불혁명을 경험한 한국인들의 의식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일본의 주류세력이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재인 정부의 버릇을 확실히 고쳐주겠다고 맘먹고 나선 것처럼, 한국의 국민들도 다시는 일본에 농락당하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결의를 굳게 다지는 것처럼 보인다,
선린이란, 국가간의 경우에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일본이 속으로는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되살리고 지난 날의 식민지배를 꿈꾸면서, 반성과 사과도 없이, 겉으로 신뢰관계 운운하면서 잘 지내자고 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인가? 우리가 일본의 호락호락한 상대가 되어야만 믿을 수 있다는 것인가?
일본을 보고 있노라면, 독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독일은 나치시대에 일본 못지않은 악행과 범죄를 저질렀다. 그런데 지금 독일을 비난하는 사람이 있는가? 독일은 당당히 문명국으로서 세계인의 존경을 받고 있다. 왜 그런가. 그들은 반성하고, 청산하고, 더 나아가서 인권과 평화, 공영과 복지, 환경과 생태 같은 인류의 고결한 가치를 지향하는 새로운 국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경제적으로 부강하고, 우수한 과학 기술을 가지고, 높은 문화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세계인으로부터 문명국으로 대접받고 있는가?
정치적 후진국은 문명국이 될 수 없다. 아베가 지향하는 국가목표가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라니! 일본은 과거를 청산하고, 인권과 민주주의·평화를 지향하는 정상국가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일제의 전범세력이 꿈꾸었던 제국주의 사상을 이어받겠다는 사람들이 주류세력으로 남아있는 한 일본은 결코 문명국으로 대우받지 못할 것이다.
한국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는 반일감정과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아베정권 같은 일본의 주류세력에 대한 것이지, '그냥 일본'에 대한 것이 아니다. 지난 7월 21일 참의원선거에서처럼 아베정권에 반대표를 던진 일본인들은 오히려 우리의 동지가 아니겠는가.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병훈씨는 전주대 명예교수(헌법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