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때 아닌 '음주'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술을 마신 행위뿐만 아니라 '어떤 술을 마셨느냐'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김재원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장(자유한국당, 3선, 경북 상주시군위군의성군청송군)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5선, 세종시).
김재원 의원은 정부 추가경정예산 협의가 진행 중이던 지난 1일 밤 늦은 시각에 술을 마신 채 기자들 앞에 나타나 음주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이해찬 대표는 2일 일본 정부의 한국 화이트리스트 국가(수출 우대국가) 배제 조치 발표 이후 점심에 여의도의 한 일식집에서 사케를 마셨다는 <더팩트>의 언론 보도 이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두 사건은 별개의 건입니다. 하지만 여의도 국회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사건이 벌어졌다는 점 때문에 하나의 흐름 속에서 소비됐습니다. 같아 보이지만 다른 두 사건을 짚어보겠습니다.
[김재원의 경우]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는 전언
8월 1일, 7조2000억 원 규모의 정부 추가경정예산을 두고 여야간 협의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정부가 내놓은 추경안에는 미세먼지·재해재난·경기대응 등에 대한 예산이 들어가 있었는데요. 여야는 감액 규모, 국채발행 규모 등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그 신경전을 가늠할 수 있는 정황이 하나 있습니다. 추경안 처리를 하려던 국회 본회의가 오후 2시에서 4시로, 4시에서 8시로, 그 이후 여야간 접점을 찾지 못해 기약없이 미뤄지기도 했습니다. 그사이 김재원 예산결산위원장과 윤후덕 민주당 예결위 간사, 이종배 한국당 예결위 간사, 지상욱 바른미래당 예결위 간사 사이의 간담회가 계속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여야는 다음날인 2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5조8269억 원 규모의 추경안을 통과시켰지요.
'음주 논란'이 불거진 때는 1일 오후 11시 10분께, 김재원 예산결산위원장이 기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면서부터였습니다. 김 의원은 국회의사당 로텐더홀에서 기자들을 만나 여야간 이견에 대한 브리핑을 하던 중 몸을 비틀거리면서 설명을 더듬기도 했습니다. 예산결산위원장실 앞에서 김 의원을 만난 <머니투데이> 기자는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라고 보도하기도 했고요.
이후 김 의원은 예결위 여야 간사들과 함께 정부 추경안 심사를 이어갔습니다. '음주 심사' 논란이 뒤따랐습니다.
현장에서 음주 사실을 부인하던 김 의원은 결국 3일 당으로부터 '엄중 주의'를 받았습니다. 한국당 공보실은 "김재원 의원은 (8월 1일) 일과시간 후 당일 더 이상 회의는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지인과 저녁식사 중에 음주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황교안 대표는 예산 심사 기간에 음주한 사실은 부적절한 것으로 보고 (김 의원을) 엄중 주의 조치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해찬의 경우] '사케'로 촉발된 '내로남불' 논란
김재원 의원의 음주 심사 논란이 인 다음날인 8월 2일. 이날 오전 일본 정부는 각의를 열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배제하는 수출무역 관리령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긴급히 국무회의를 소집해 "문제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거부하고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대단히 무모한 결정"이라면서 "깊은 유감을 표한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후 논란이 되는 기사 하나가 나옵니다. 3일 자정 <더팩트>의 <[단독] 이해찬, 日 백색국가 제외 직후 '일식집'서 '사케' 오찬> 기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매체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결정한 직후 여의도의 한 일식집에서 사케를 곁들인 오찬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오전에는 '일본 경제침략 관련 비상대책 연석회의'에서 일본에 분노를 쏟아내놓고 점심에는 '일식집'에서 '사케'를 반주로 곁들였다고 알렸습니다. 일종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프레임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또한 상황을 엄중히 인식, 국민적 단합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이중적 모습'으로 비칠 수 있는 처신을 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될 전망"이라는 설명과 함께 말이죠.
김현아 한국당 대변인은 "일본이 백색국가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한 바로 당일, 일식집에서 그것도 사케까지 곁들이며 회식을 했다고 한다"라며 "청와대와 민주당은 연일 반일, 항일을 외치며, 국민에게는 고통조차 감내하라고 말하면서 정작 본인들은 이렇게 이율배반적일 수 있단 말인가"라고 지적했습니다. 김정화 바른미래당 대변인도 "이율배반의 극치를 보여주는 집권당의 실체가 아닐 수 없다"라는 논평을 내놨습니다.
이후 민주당은 "이 대표가 마신 술은 국내산 청주인 백화수복"이라면서 "사전에 예약된 식당에 약속대로 방문해 국내산 청주를 주문한 것을 비난하는 두 사람(김현아, 김정화)의 논리는 일본식 음식점을 운영하는 우리 국민은 다 망하라는 주문밖에 되지 않는다"라고 맞섰습니다.
김재원과 이해찬, 공통점과 차이점
김재원-이해찬 두 사건의 공통점은 '업무 시간에 음주'라는 데 있습니다. 김재원 의원은 정부 추경안 심사 중 간사간 중재를 해야 할 입장에서 술을 마셨고, 이해찬 대표는 근무일 점심시간에 음주를 했지요. 5일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무얼 먹었든지 간에 비상시국에 낮술 먹은 거나 추경심사 도중 술이 만취된 거나 똑같다."
그런데 말입니다. 두 행위를 두고 똑같이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맞지 않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해찬 대표는 정부여당이 '반일-극일' 메시지를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점심에 '사케'(청주)를 마셨다는 언론보도가 나와 '내로남불'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반면, 김재원 의원은 정부가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한 지 100일 가까이 지난 상황에서 예산을 조율해야 하는 당일 지나치게 많은 술을 마셨습니다.
더욱이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 예산(경북 의성 쓰레기산 방치 폐기물 처리)은 증액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정부예산은 18억 원이었지만 심의 과정에서 81억3000만 원을 따냈다고 알렸습니다.
어쨌든 이슈의 흐름을 보면 '김재원 음주 심사' 논란은 '이해찬 사케' 논란으로 덮였습니다. 일종의 물타기가 이뤄진 셈이죠.
공교롭게도 많은 언론들은 김재원 의원과 이해찬 대표의 사례를 엮어서 '장군 멍군' 식으로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두 사건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게 과연 맞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