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기사] 시진핑은 트럼프가 내민 손을 잡아야 한다
중국은 미국이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서 공식 탈퇴하면서 미중러 3자 군축 협상을 하자는 제안에 대해 열흘이 지나도록 공식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중국이 선뜻 미국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고 있는 데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우선 미국과 중국이 처한 지정학적 위치가 판이하다. 미국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양쪽에 끼고 있고 주변에 군사적 위협을 가할 나라가 거의 없다. 이와 관련해 아론 데이비드 밀러우드로윌슨국제센터 부의장은 "미국은 세계사에서 남북으로는 포악하지 않은 이웃이 있고, 동서로는 물고기밖에 없는 호사를 누려온 유일한 강대국이다"라고 표현했다.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 역시 "행복한 사실은 미국이 다른 국가들은 꿈에서나 그려볼 수 있는 지정학적 이점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강조하였다.
이처럼 지리적으로 요새화된 미국과 달리, 중국은 적대적·경쟁적 관계에 있는 여러 나라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거나 인접해 있다. 특히 대만의 독립국가로 분리될 가능성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 중거리 미사일의 군사적 가치가 미국과는 판이하게 다른 셈이다.
또한 중국은 미국에 비해 해상 및 공중 공격 능력과 전략 무기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 핵탄두 숫자만 보더라도 20배 이상 차이가 난다. 공격력뿐만 아니라 방어력에서도 크게 차이가 난다. 미국은 자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를 급격히 증강해온 반면에, 중국의 미사일 방어 능력은 초보적인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보면, 중국이 중거리 미사일에 제한을 가하는 군축 협상에 동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중국은 미국이 아시아에 미사일 배치를 가시화할 경우 접수국을 상대로 군사적·경제적 보복을 가할 공산이 크다. 러시아와의 전략적 제휴를 강화할 것이라는 점도 명약관화하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은 중국을 포함해 모든 나라에게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중국, 포괄적 군축 협상으로 미국에 공 넘겨야
그렇다면 대안은 없을까? (상)편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중러를 중심으로 하는 핵군비경쟁이 초래할 위험성은 이들 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와 유엔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기구들도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1987년 INF 조약이 체결된 배경에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인 반핵 운동이 있었다는 점에서 세계시민사회의 연대도 중요하다.
INF 조약 종말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으려면 포괄적인 군축 협상을 공론화해야 한다. 중거리 미사일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2002년에 미국이 탈퇴한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의 부활, 2021년 2월로 시한이 다가오고 있는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의 갱신도 군축 협상의 의제로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비핵국가를 상대로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가하지 않는 '소극적 안전보장'과 핵보유국 간에 핵무기 선제 사용을 금지하는 방안을 국제법으로 정립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이다. 우발적 핵전쟁의 위험을 높이는 '경보 즉시 발사(launch on waring)'를 해제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이다.
물론 핵보유국들이 이들 사안에 대해 이른 시일 내에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포괄적 대화를 시작하는 것만도 큰 의미가 있다. 대화가 없는 자리는 결국 극심한 군비경쟁이 차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제안을 촉구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중거리 미사일에 국한하지 말고 상기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논의하자는 제안을 내놓으면 공은 워싱턴으로 넘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