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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를 감소시키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섹스돌을 사용할 게 아니라) 학대받은 여성들을 돕는 한국 페미니스트들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들은 전혀 다른 지식과 해결책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섹스돌(리얼돌)'이 성범죄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2015년부터 섹스 로봇 금지 캠페인을 벌여온 캐슬린 리처드슨 교수는 9일 <오마이뉴스>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 위와 같이 주장했다.

대법원이 지난 6월 27일 성인용품 '리얼돌'의 수입을 허가하면서 한국 사회에서는 '리얼돌' 논란이 불이 붙었다(관련기사: '리얼돌' 판매금지 청원 23만명 돌파... "여성혐오와 직결된 물건" http://omn.kr/1k9nc).

한국 사회는 현재 '리얼돌을 수입해도 된다'는 주장과 '안 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수입을 해도 된다는 쪽에서는 리얼돌이 단순히 인형일 뿐이며 타인과 섹스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상품이라고 주장한다.

영국 드몽포르 대학교에서 로봇과 AI 윤리를 연구하는 캐슬린 리처드슨 교수는 BBC를 비롯해 여러 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섹스 로봇을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꾸준히 견지해온 학자다. 

캐슬린 리처드슨 교수에 따르면 성적 욕구만을 충족하기 위해 만들어진 '리얼돌'은 사람을 사물로 보게 할 가능성이 있는 물건이다. 그는 '리얼돌'이 인간을 '사물화'시킬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가 단순히 육체적인 관계에 불과하다는 관점을 강화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리처드슨 교수는 폐지론 페미니즘(Abolitionist feminism, 인종차별을 비롯해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를 목표로 하는 페미니즘의 갈래)에서 영감을 얻은 로봇 공학 이론을 개발하고 있다.

다음은 리처드슨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리얼돌'은 리처드슨 교수의 답변에 따라 모두 '섹스돌'로 번역했다.

"섹스돌이 '성기구'라는 주장에 반대합니다"
 
 리얼돌 판매 사이트 캡처
리얼돌 판매 사이트 캡처 ⓒ 홈페이지 캡처
 
- 교수님은 로봇 윤리 전공자입니다. '섹스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이유가 있나요?
"저는 '섹스돌'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먼저) 시작했지만 이내 섹스돌이 음성 비서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즉, 섹스돌과 섹스 로봇을 결코 분리해서 논의할 수 없다는 겁니다. 섹스돌 제작자들은 섹스돌이 여성을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구매자들에겐 인형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줍니다.

만일 어떤 제작자가 당신에게 '세탁기와 인간다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비웃을 겁니다. 섹스돌은 과하게 성적 대상화되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여성을 포르노 혹은 성매매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섹스돌의 제작방식에 깊이 투영돼 있습니다. 섹스돌을 구매하는 남성들은 여성을 혐오합니다. 섹스돌은 포르노와 성매매에 이어 혐오의 다른 방식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 한국의 대법원은 섹스돌을 포르노가 아닌 성 기구로 분류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섹스돌은 포르노그래피입니다. 포르노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완전한 실물 크기의 여성 모형이기 때문이죠. 섹스돌이 '성 기구'라고 분류될 수 있다고 간주하더라도 (저는 남성들이 이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여전히 섹스돌이 성적인 용도로 사용된다는 건 명백합니다. 성적인 용도로 사용된다는 건 곧 공적으로 전시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여성들은 자신의 바이브레이터를 외부에 가져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섹스돌을 구매하는 남성들은 외부에도 가져갑니다.
 
 이른바 성인용품 리뷰 유튜버 찬우박씨가 리얼돌을 데리고 강남 거리를 걷는 모습
이른바 성인용품 리뷰 유튜버 찬우박씨가 리얼돌을 데리고 강남 거리를 걷는 모습 ⓒ 찬우박

섹스돌을 공적으로 내보인다는 건 아무리 그것들이 '성 기구'로 분류된다고 할지라도 여성들을 향한 일종의 성희롱입니다. 또 포르노의 공적인 전시이기도 합니다. 저는 엄밀한 의미에서 섹스돌이 '성기구'라는 주장에도 반대합니다. 섹스돌을 구매하는 남성들이 여성들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지를 보세요. 그리고 그들이 섹스돌과 '사랑하는 관계'라고 믿는 것을 보십시오."

- 어떤 이들은 섹스돌이 성범죄율을 낮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남성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여성과 아동 성범죄에 대해 책임이 있는 것도 남성들입니다. 남성들이 성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그들이 그래도 된다고, 시스템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섹스돌의 수입을 허용한) 대법원의 판결은 여성들에게는 전혀 이득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남성의 지배와 남성의 '성적 권리(sex rights)'를 확대할 뿐입니다. (심지어 여성과 소녀들의 존엄성과 인간성을 훼손시키면서요.) 성범죄를 감소시키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학대받은 여성들을 돕는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들은 전혀 다른 지식과 해결책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여성들은 바이브레이터가 남성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 일부 남성들은 '딜도'를 예로 들면서 '섹스돌' 또한 괜찮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성들은 남성의 성을 착취하는 산업을 만들지 않으며 포르노에서 남성을 비하하지 않고 남성들을 향해 강간과 성희롱을 일삼지 않습니다. 하지만 남성들은 여성을 향해 그렇게 합니다. 가부장제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여성들에게는 그러한 통제권이 없습니다. 따라서 여성들은 남성들을 이러한 방식으로 대상화하지 않습니다. 여성들은 남성의 신체를 사정과 오르가슴의 산업으로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또 여성들은 바이브레이터가 남성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여성들은 바이브레이터를 상점에 가져가거나, 옷을 입히거나, 그것이 남편 행세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죠."

- 섹스돌이 '그냥 인형일 뿐'이라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네, 남성도 섹스돌이 인형이라는 걸 알지만 섹스돌은 우리 문화 속 여성 혐오를 강화합니다. 여성 혐오는 굉장히 실제적인 문제입니다. 포르노를 만드는데, 남성의 여성 살인에, 그리고 강간과 살해의 기저에 깔려있지요."

- 한국과 비교하면 영국은 표현의 자유를 더 많이 주창하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섹스돌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요?
"섹스돌은 표현의 자유가 아닙니다. '여성 혐오'입니다. 우리는 '표현'을 수많은 방식으로 제한합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때로 해롭고 사회적으로 이득보다 그 비용이 더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회는 남성이 성적으로 원하는 것들로만 구성되지 않습니다. 여성 또한 이 세계에서 살고 있으며 이 세계가 어떻게 구성돼야 하는지에 대해 요구할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지닙니다. 만일 무언가가 여성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이는 사회 전체적으로도 해로운 일일 것입니다. 세계 안에서 그들이 온전한 인간 존재로서 설 자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 왜 섹스돌이 표현의 자유가 아닌 여성 혐오의 영역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떤 것들은 그 기원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가령 여성 혐오는 상업적인 성 산업을 키운 주범이죠. 만약 여성들이 인간 존재로 생각되었다면, 상업적인 성 산업은 없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여성들이 상품이 아닌 온전한 인간으로 간주됐을 테니까요."

- 인간의 대화와 행동을 본뜬 섹스 로봇이 출현하게 되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기계는 인간의 대화를 따라할 수 없습니다. 로봇들은 질문에 대답하는 것에는 능하죠. 인간의 대화는 그저 질의응답형 발화에만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번역: 최현지)
 
 TEDxULB에서 '로봇과 윤리: 섹스의 미래'에 대해 강연하고 있는 영국 드몽포르 대학의 캐슬린 리처드슨 교수.
TEDxULB에서 '로봇과 윤리: 섹스의 미래'에 대해 강연하고 있는 영국 드몽포르 대학의 캐슬린 리처드슨 교수. ⓒ TED 영상 캡처
 

#리얼돌#섹스로봇#캐슬린 리처드슨#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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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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