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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살면서 기자도 궁금했습니다. 매일 '폐업 세일'하는 가게의 정체나 80%나 할인되는 아이스크림의 진짜 가격 같은 것들 말입니다. 궁금증을 채우기 위해 코너까지 만들었습니다. 기자의 사심 채우기 프로젝트 <류 기자의 이거 왜 이래?>,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편집자말]
 매장에 진열돼 있는 다양한 크기의 옷들.
매장에 진열돼 있는 다양한 크기의 옷들. ⓒ Pixabay

평소에 자연스러웠던 것들이 왠지 모르게 어색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며칠 전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을 고를 때도 그랬다.

마음에 드는 자켓을 발견해 주문을 위해 사이즈를 선택하려던 참이었다. 선택지는 55사이즈와 66사이즈 두 가지였다. 화면 아래로 스크롤을 내려, 쇼핑몰쪽에서 올려둔 두 사이즈의 상세표를 들여다봤다. 각각에 해당하는 어깨너비, 가슴둘레, 소매길이 등이 적혀 있었다.

55사이즈의 경우 어깨너비는 78 센티미터(cm), 가슴둘레는 116.8cm, 소매길이는 57cm이라고 했다. 그 어디에도 '55'와 관련한 숫자는 없었다. 그런데 왜 55사이즈일까.

의문이 고개를 들 무렵 화면 아래 적힌 글씨가 눈에 띄었다. '사이즈는 재는 방법에 따라 1~2cm의 오차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무릎을 탁 쳤다. 57cm의 소매길이에서 2cm를 빼니 55가 되는 게 아닌가.

하지만 66사이즈의 소매길이로 눈길을 돌렸다가 '한 방' 먹었다. 58cm라고 했다. 1~2cm를 어떻게 더하고 빼도 66이 될 리 없었던 거다.

그래서 기자가 직접 알아봤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 나와 있는 55사이즈와 66사이즈의 상세 표.
한 인터넷 사이트에 나와 있는 55사이즈와 66사이즈의 상세 표. ⓒ 인터넷 사이트 캡처
  
55사이즈와 66사이즈의 정체

한국인의 인체 치수를 조사하는 '사이즈코리아(Size Korea)'의 자료를 찾아보니 55, 66 등의 숫자는 지난 1981년에 만들어진 의류 치수의 이름이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의 20대 성인 여성 평균 키는 155cm, 가슴둘레는 85cm였다. 국가기술표준원의 전신이었던 공업진흥청은 두 숫자의 끝자리인 '5'를 각각 따서 55라는 표준 사이즈를 만든 것이다.

나아가 이 표준 사이즈에 키 5cm, 가슴둘레 3cm를 더하면 66사이즈(키 160cm, 가슴둘레 88cm), 빼면 44사이즈(키 150cm, 가슴둘레 82cm)로 부르기로 정한 것이다.

하지만 55나 66 같은 숫자는 더 이상 의류의 공식 표기법이 아니다. 한국인 표준 체격이 달라지면서 국가기술표준원이 1999년 이를 없앴기 때문이다. 현재 의류 사이즈의 기준이 되는 신체 규격은 여성은 키 160cm에 가슴둘레 90cm, 남성은 키 175cm에 가슴둘레 95cm다. 여성의 신체 규격이 20년 전 66사이즈보다도 커진 셈이다.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지난 23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해당 표기법이) 공식적으로 사라진 지는 20년이나 지났지만, 이미 대중들에게 익숙한 숫자가 되어 시장에서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하필 가슴둘레일까?

국가기술표준원은 55, 66 등의 사이즈를 없앤 대신 'KS(Korean Industrial Standards) 의류치수규격'을 마련했다. 가슴둘레나 키, 엉덩이 둘레 등 직접적인 숫자를 사용해 사이즈를 표시하도록 한 것이다. 옷의 뒤편 라벨에 적혀 있는 '90, 95, 100' 등과 같은 사이즈도 여기서 나왔다. 이들은 모두 가슴둘레(cm)를 가리킨다. 키나 엉덩이 둘레 등 치수를 적는 업체들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가슴둘레만을 표시해둔다.

그런데 왜 하필 가슴둘레일까. 신체검사에서도 몸을 측정할 때의 기본이 되는 수치는 키와 몸무게인데 말이다. 의류 특성상 폭이 중요했다고 하더라도 의문이다. 폭만 따지자면 가슴보다도 넓은, 어깨가 옷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성인 의류'에서는 가슴둘레가 가장 중요하다는 게 사이즈코리아 관계자의 이야기다.

사이즈코리아쪽은 23일 통화에서 "아동의 경우에는 키가 빨리 자라는 만큼 옷이 키 기준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유아복 브랜드 대부분은 '키'로 사이즈를 표시하고 있다. 사이즈 '70'이나 '80' 등은 70cm나 80cm의 키를 가진 아동이 입을 수 있는 옷이라는 뜻이다.

그는 이어 "하지만 아동과 달리 성인의 키는 멈춰 있는 데다, 키가 맞지 않아도 옷을 입을 수 있지만 가슴둘레는 맞지 않으면 단추가 잠기지 않아 옷을 입을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또 "특히 살집이 있는 사람일수록 가슴쪽에 더 많은 면적이 필요하므로 가슴둘레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성인 옷은 몸이 '위'보다 '옆'으로 커질 것을 고려해 제작된다는 것이다.

상의는 'cm'인데 하의는 'inch'인 이유
 
 청바지를 비롯한 하의들의 크기는 대부분 센티미터가 아닌 인치로 표기돼있다.
청바지를 비롯한 하의들의 크기는 대부분 센티미터가 아닌 인치로 표기돼있다. ⓒ Pixabay
 
우리나라의 의류는 철저히 '센티미터' 표기를 따르고 있다. 단 '상의'에 한해 그렇고 시장에서 하의 사이즈는 대부분 29, 30, 31 등 인치(inch)로 표시되어 있다. 상의 사이즈는 센티미터인데 하의 사이즈만 인치인 이유는 무엇일까.

나라 표준 규격에서 공식적으로 사라진 55, 66 사이즈가 아직까지 사용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유다. 동서울대학교 패션디자인과 최경미 교수는 "우리나라는 센티미터 표기법을 따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인치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인치 사이즈가) 오래 전부터 사용돼 왔고, 대중들에게 익숙해졌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인치가 "미국 수출의 흔적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에서 센티미터법이 아닌 인치법을 쓰는 나라로는 미국이 거의 유일하다"며 "예전부터 미국으로 의류를 많이 수출했던 우리나라 의류 제조업체들이 (수출을 위해) 옷 사이즈를 인치로 표기하다보니 표기법이 인치로 굳어졌다"고 말했다.

한국섬유수출입협회가 제공한 '국가별 섬유류 연도별 수출 통계자료'에 따르면, 처음 통계가 잡힌 1988년부터 2003년까지 수출액을 기준으로 섬유 분야에서 미국은 우리나라의 1위 수출국이었다. 1988년 39억 달러를 넘어섰던 수출액은 다음 해인 1989년 40억 달러까지 치솟았다가 점차 줄어들어 2004년 중국에게 1위 자리를 내주었다.

우리가 평소 사용하던 의류 사이즈 라벨 곳곳에도 '역사'와 '익숙함'이 묻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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