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민주화 시위의 주역, 반환둥이 세대
홍콩의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2014년 우산혁명으로 시작된 민주화의 열기는 2019년 6월 9일 중국송환법을 둘러싼 광범위한 시민 저항으로 시작해 이제는 행정장관 직선제, 더 나아가 홍콩의 자치와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최근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한국의 5.18민주화운동 그리고 1987년의 민주화 항쟁이 바다 건너 홍콩에서 재현되는 듯하다. '민주주의를 위한 열망'이 시공간을 초월한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 중심에 홍콩의 밀레니얼과 Z세대격인 1020세대가 있다. 그들은 흔히 '반환둥이 세대'라 불린다. 1997년 홍콩이 영국의 100년 조차지 역사를 끝내고, 7월 1일 중국으로 반환됐다. 이때부터 태어난 아이들이 자라나 청소년 시절, 최초의 본격적인 민주화 시위인 우산혁명을 거쳐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의 주역이 됐다. 이들이 목숨까지 걸며 시위에 참여하는 동기는 무엇일까? '홍콩인 정체성' 때문이다.
비록 국가적으로는 중국에 속해 있지만, 이들에게는 중국인이라는 규정력이 쉽게 작동하지 않는다. 지난 2010년 홍콩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홍콩 시민의 63%는 자신을 '홍콩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젊은 세대다. 어쩌면 이것은 일국양제를 선택한 순간 필연적으로 예고된 미래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홍콩인이다'라는 그들의 외침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현재 진행되는 홍콩 민주화 운동의 본질적 원인이자, 동력이다.
반환 이후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밀려오는 '붉은 중국화'의 모래바람에 맞서 그들은 달랑 우산과 소셜미디어로 맞서고 있다. 하지만 '우산의 연대'는 경찰의 최루탄과 물대포를 막아내고, Z세대의 소셜미디어는 공권력의 정보망보다 빠르게 시위대를 이동시켜 자유의 외침을 전 세계에 타전하고 있다.
한국에서 열린 홍콩 민주화 집회 현장에 가다
그 자유의 외침이 8월 31일 저녁 무렵, 한국의 도심 한복판인 용산역 광장에서도 울려 퍼졌다. '재한 홍콩인 반송중법 응원 집회'라는 이름으로 열린 집회에 모여든 것은 대부분 한국에서 유학 중이거나 여행 중인 홍콩 청년과 청소년들이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검은 옷을 입고 마스크를 착용했다.
검은 옷은 홍콩 반중시위의 상징이며, 마스크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홍콩 경찰과 중국 공안, 그리고 곳곳에 설치된 감시용 CCTV에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는 것은 용기 있는 행위일 수밖에 없다. 최근 민주화 시위 지도자들이 대낮에 백색테러와 불법체포를 당하는 것을 똑똑히 지켜봤기 때문이다.
첫 연설자로 나선 브라이언 첸(27세, 가명)은 "오늘 행사는 전 세계 홍콩인의 연대집회로, 서울·도쿄·뉴욕·파리 등 전 세계 31개 도시에서 동시 개최되고 있다"며 집회의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 그는 현재 한국 유학생으로, 지난 6월 9일 100만 홍콩인들의 집회 현장에 함께했노라고 소개했다. 이어 "현재 민주화 시위로 6월 9일 이후 체포된 시민이 1000여 명에 달하고, 그중 150여 명이 감금상태에 있으며, 이 중에는 심지어 청소년도 다수 있다"며 행정당국을 강력히 비판했다.
특히 그는 "홍콩 시민의 다섯 가지 요구사항은 매우 중요하다, 어느 것 하나도 빼거나 양보할 수 없다"며 그 내용을 하나씩 소개해 주었다. ▲ 송환조례 완전 철폐 ▲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 경찰 강경진압에 관한 독립조사위원회 설치 ▲ 행정장관 보통선거(직선제) 실시가 그것이다.
이는 지난 6월 9일 집회 이후 진행된 홍콩 행정당국의 무차별적인 시위 진압과 불법체포 과정에서 벌어진 반인권 조치에 대한 문제제기이며, 홍콩 시민의 정당한 권리실현을 위한 요구였다. 현재 캐리 람 행정장관은 시위대의 이 같은 요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또 다른 홍콩 여성이 마이크 앞에 섰다. 그녀는 본인의 실명조차 언급하기를 꺼려했으며, 마스크를 벗지 못했다. 한국과 홍콩을 자주 오가며 여행과 일을 한다는 그녀는 발언 시작부터 울먹였다. 그리고 자신이 홍콩에서 목격한 사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에 대한 경찰의 모욕적인 언행, 성추행, 구타와 폭행, 위협적인 진압무기 사용 등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하면서 너무나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호소했다.
"홍콩의 이 안타까운 소식을 이곳에 오신 여러분들이 널리 알려주세요."
그녀는 끝내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집회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숙연해지는 순간이었다.
홍콩 지지 영상에 홍콩 시민 1000명이 댓글 단 사연
이날 집회에는 한국인의 지지 발언도 소개되었다. 청년정당 미래당(우리미래) 당원들은 '프리 홍콩-데모크라시 나우' '홍콩시민의 민주주의와 평화시위를 지지합니다'라는 손피켓을 들고 함께했다. 필자도 이 자리에서 아래와 같이 발언했다.
"이곳에 오게 된 것은 저희가 제작한 홍콩시위 응원 영상에 홍콩시민과 청년들이 쓴 1000개의 댓글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더 알려주세요' '포기하지 않아요'라는 댓글들에서 절박함이 느껴져 안타까웠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 위에는 선배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고, 오늘 이렇게 홍콩시민이 한국에서 자유롭게 집회를 할 수 있는 것도 그 희생 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과 홍콩의 민주주의는 본질이 같고 연결되어 있습니다.
홍콩의 민주주의를 지지합니다. 홍콩은 비록 섬과 반도지만 고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국을 비롯해서 세계시민들이 홍콩을 지켜보고 있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포기하지 마시고 힘내세요. 함께하겠습니다."
민주주의의 속성은 보편성에 있다. 국가, 인종, 성별, 세대, 종교, 문화적 경계와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유와 평등, 인권과 평화를 추구하는 본질과 지향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로,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홍콩 시위의 본질은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다.
지난 100년간 홍콩에 뿌리내린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토양에서 태어난 홍콩의 10대, 20대에게 '중국화'란 곧 '검열과 통제'를 의미한다. 그래서 홍콩시위 현장에는 급기야 오성홍기와 하켄크로이츠(나치 문양)를 합성한 '차이나치'(Chinazi) 깃발마저 등장했다. 중국 정부의 무력진압 위협과 홍콩 통제를 히틀러의 나치시대에 비꼬는 것인데, 홍콩 시민들의 분노의 깊이를 추측해 볼만 하다.
왜 한국의 청년들은 홍콩 시위를 응원하나
홍콩 시위의 주역인 데모시스토(우산혁명을 이끌었던 학생 운동가들이 창당한 정당)처럼, 한국의 청년정당에서 미디어 사업을 담당하는 최지선(29)씨는 홍콩의 민주화 시위에 뛰어든 청년세대에게 깊은 연대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그녀는 지난 5월 대만을 방문해, 마찬가지로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시대역량 정당을 탐방하고, 홍콩과 대만에서 활동 중인 20대 독립언론인 브라이언 호이(Brian Hioe)와 인터뷰를 진행한 바 있다.
당시 브라이언은 "한국, 대만, 홍콩, 일본의 4개의 동아시아 국가는 매우 역동적인 민주주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곧 홍콩에서 거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그녀와 동료의 제안으로 미래당 동료들과 함께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한국 청년들의 연대 메시지를 담은 동영상을 제작하기로 했다.
또, 영상에 참여한 청년들은 연대의 상징으로 한쪽 눈을 흰색 안대로 가렸다. 최근 시위 도중 경찰이 쏜 고무탄 때문에 한쪽 눈이 실명된 홍콩 여성의 아픔을 공유하고, 평화시위가 보장될 수 있기를 희망하는 의미였다. 아래는 영상을 통해 전한 메시지다.
"우리는 진심으로 홍콩의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이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전 세계에 외칩니다. 홍콩 시민들에게 폭력을 쓰지 마십시오. 홍콩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세요. 홍콩의 미래는 홍콩시민의 것 입니다."
(We are genuinely concerned about the lives and the safety of the citizens of Hong Kong. So we shout out to the world. Don't use violence against Hong Kong citizens. Please listen to the voices of Hong Kong citizens. The future of Hong Kong belongs to the people of Hong Kong.)
용산역 광장에 울려퍼진 '레 미제라블' 노래
해거름이 되자 광장이 어둑해졌다. 집회를 시작할 때 참가자가 20여 명 남짓이었는데 이후 홍콩인, 한국인, 기자와 유튜버 등 100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 집회 주최자의 제안에 따라 그들은 노래를 시작했다. 영화 <레 미제라블>의 테마곡 중 하나로, 일명 '민중의 노래'로 불리우는 <사람들의 노래 소리가 들리는가>(Do you hear the people sing)였다.
이 노래는 2014년 우산혁명 당시 비폭력 평화시위를 이끌던 청년 시위대들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후 홍콩 민주화 시위 현장에서 대표적인 합창곡이 되었다. 가사를 음미해 보자.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
심장박동 요동쳐 북소리 되어 울릴 때
내일이 열려 밝은 아침이 오리라
모두 함께 싸우자 누가 나와 함께 하나
저 너머 장벽 지나서 오래 누릴 세상
싸우리라 싸우자 자유가 기다린다"
노래를 함께 부르는 홍콩 청년들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는 가사가 지금 홍콩 시민들의 분노와 절박함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영국으로부터 150여 년 간 식민 지배를 겪은 뒤, 1997년 7월 2일 영국으로부터 벗어난 이들에게 다시 중국이라는 세계 최대의 사회주의 국가로 귀속되는 일은 불안한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일국양제 체제를 50년간 유지하겠다'는 약속에 그나마 안심했으나, 그 약속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이슈를 매개로 폭발했다. 이러한 현상의 중심에 자신은 중국인이 아니라 '홍콩인'라고 자부하는 홍콩의 10대, 20대가 있다. 홍콩 민주화 시위의 주요 참가자와 지도부가 청년과 청소년인 이유다.
홍콩 청년세대의 유일한 무기, '소셜미디어'
2014년 우산혁명 직후 홍콩의 청년세대가 직접 창당한 데모시스토 정당의 리더는 20대다. 동갑내기인 조슈아 웡(Joshua Wong, 23세)과 아그네스 초우(Agnes Chow, 23세)는 거침없이 홍콩 독립을 외치며, 두려움 없이 시위의 복판에서 홍콩 민주주의를 사수한다.
고등학교 시절 중국 정부의 교육 통제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시작으로 민주화 운동에 뛰어든 조슈아 웡은 밀레니얼 세대답게 그의 소망을 이야기한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시위 진압을 멈추고 요구사항을 수용한다면, 나는 저녁에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으러 갈 것이다."
홍콩의 청소년들마저 자신들의 할 일을 알고 있는 듯 하다. 2일 홍콩 전역의 중고등학생들은 항의의 의미로 전국적인 동맹수업거부를 결행하려 한다. 시위에 참여한 홍콩의 한 청소년에게 외신기자가 "두렵지 않은가?"라고 묻자, 그는 "나는 죽어도 좋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지킬 것이다"라고 답했다. 이 장면은 한국의 4.19 의거를 연상시킨다. 역사는 시대를 타고 흐르고, 민주주의는 세대를 넘어 계승되는 듯하다.
밀레니얼 혹은 Z세대답게, 그들의 무기는 소셜미디어다. 홍콩 시위는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메신저 소통을 통해 기획되고 전파된다. 심지어 10만 명이 하나의 소셜미디어 메신저에 모여 시위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이는 경찰의 강력한 진압에 맞서 구름과 바람처럼 모이고 흩어지는 도심 게릴라식 시위 방식의 원천이기도 하다.
또한 소셜미디어는 중국 정부의 검열과 국경의 한계를 넘어 전 세계에 홍콩 민주화에 대한 지지 여론을 만들고 정보를 유통하는 가장 유력한 시위 수단이기도 하다. #FreeHongKong #DemocracyNow #Chinazi(china와 nazi 합성어) #Xitler(시진핑과 히틀러의 합성어) 해시태그 운동이 대표적 사례다.
집회의 마무리는 퍼포먼스였다. 홍콩인과 한국인이 함께 모여 오른쪽 눈을 손으로 가렸다. '폭력진압에 대한 반대'와 '포기하지 않는 저항'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집회를 주도했던 첸의 선창에 맞추어 함께 구호를 외쳤다. 한국인을 위한 한국어 구호를 먼저 외쳤다. 고층 빌딩에 둘러싸인 용산역 광장에서 그들의 외침은 허공을 타고 퍼졌다.
"홍콩 힘내라!"
'Free HongKong!'
'Democracy Now!'
'홍콩 화이팅!'
촛불혁명 이후, 홍콩 시위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바다 건너 머나먼 두 나라의 청년들이 인터넷으로 연결되었고, 이제는 한국 땅에서 직접 만나 홍콩 민주화를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그 어떤 이념적 경계와 정치적 이해타산 없이 오랜 친구처럼, 그리고 가까운 이웃처럼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들이 민주주의 역사와 가치를 공유하고, 촛불과 우산의 이야기와 아픔을 공감하며, SNS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국가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어 공존을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민주화 역사와 홍콩의 민주화 시위의 미래는 서로 닮았고, 연결되어 흐른다. 미래는 알 수 없으나 역사는 재생된다.
17세의 나이에 우산혁명을 이끌었던 죠수아 웡이 직선제 요구에 함구하는 홍콩 입법회(국회)를 향해 전진하며 외쳤던 말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청년세대에게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10년 후 초등학생들이 홍콩의 민주화를 위해 시위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이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죠수아 웡이 깊은 영감을 받았다는 대한민국의 촛불혁명, 우리의 민주주의는 진화하고 있는가? 그리고 홍콩 시민의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꼬리를 무는 질문을 안고, 용산역 광장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오태양씨는 미래당(우리미래)에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