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9일 안희정 전 충청남도지사의 유죄 판결이 확정된 후 피해자 김지은씨가 밝힌 입장이다. 김지은씨는 지난해 3월 방송에 출연해 피해 사실을 처음 세상에 알렸고, 이날은 그로부터 554일이 지난 날이다.
이날 오전 대법원이 안희정 전 지사의 상고를 기각하는 판결선고(
안희정 판결 키워드, '성인지감수성·피해자진술' 재확인 http://omn.kr/1kty2)를 한 직후 대법원 앞에서 열린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남성아 천주교성폭력상담소 활동가가 김지은씨의 입장을 대독했다.
김지은씨는 "평범한 노동자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 제발 이제는 거짓의 비난에서 저를 놓아 달라"면서 "앞으로 세상 곳곳에서 숨죽여 살고 있는 성폭력 피해자분들의 곁에 서겠다. 그분들의 용기에 함께하겠다"라고 밝혔다.
아래는 김지은씨의 입장 전문이다.
세상에 안희정의 범죄사실을 알리고 554일이 지난 오늘, 법의 최종 판결을 받았습니다. 마땅한 결과를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아파하며 지냈는지 모릅니다. 진실이 권력과 거짓에 의해 묻혀 버리는 일이 또 다시 일어날까 너무나도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증거와 사실관계를 꼼꼼히 파악해주신 재판부의 공명하고 정의로운 판단을 통해 진실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신 재판부께 감사드립니다.
고통스러운 순간순간마다 함께해주신 변호사님들, 활동가 선생님들, 그리고 여러 압력과 어려운 속에서도 진실을 증언해주신 증인들께 깊은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2차 가해로 거리에 나뒹구는 온갖 거짓들을 정리하고, 평범한 노동자의 삶으로 정말 돌아가고 싶습니다. 제발 이제는 거짓의 비난에서 저를 놓아주십시오.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세상 곳곳에서 숨죽여 살고 있는 성폭력 피해자분들의 곁에 서겠습니다. 그분들의 용기에 함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는 김지은씨를 향해 "당신이 있어 이 승리가 가능했다"라고 강조했다.
"이 싸움은 나 개인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또 다른 무수한 김지은들을 위한 싸움이며, 촛불혁명으로 만들어낸 시대에 여성의 이름으로 정의를 다시 쓰는 싸움임을 잊지 않고 끝까지 멈추지 않고, 오늘 이 승리를 함께 만들어주신 김지은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위력 성폭력 끝내자"
이날 기자회견에서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끝내자"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는 성명에서 "이번 판결을 계기로 업무상 위력에 의한 직장 내 괴롭힘과 성폭력이 지금 당장 끝나기를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이 사건은 적대적 환경을 무릅쓰고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막강한 권한을 가진 사용자를 상대로 법과 정의에 기대어 싸워 이길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국회에서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과 추행죄의 법정형을 상향했다. 그러나 제대로 위력 성폭력을 방지하고 제재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말할 수 있는 환경인지 확인해야 하고. 신고한 이후에 제대로 절차를 밟을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이 보장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김지은씨 변호인단의 정혜선 변호사는 "그동안 자신의 피해를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말할 수 없었던 수많은 권력형 성폭력 범죄의 피해자들에게 본 대법원 판결이 주는 의미는 남다를 것"이라고 밝혔다. "피해자들이 움츠러들지 않고 외부에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주도록 이러한 판결이 계속 유지되기를 희망한다"라고 덧붙였다.
손영주 서울여성노동자회 회장은 안전하고 평등한 일터를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실천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우리가 이들(피해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피해자들에게 '이 일은 당신 잘못이 아니다', '결코 혼자가 아니다'는 위로와 지지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도덕성을 회복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더 이상 우리 사회가 타인의 고통에 무뎌지지 않기를, 그래서 더 이상 피눈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제2의 김지은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여성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모든 일터가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희롱, 성폭력을 넘어 안전하고 평등한 일터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건강한 실천을 축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