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9월 13일)이면 한가위다. 기자는 한가위를 앞두고 각 정당·정치인들이 길거리에 걸어 놓은 현수막을 통해 '그들의 저급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기자의 거주지인 대구광역시 내에 걸려 있는 모든 현수막을 전수조사할 수는 없기에, 집 근처 사거리의 현수막만 대상으로 삼았다.
현수막은 3개 걸려 있었다. 각각 '행복 가득한 한가위 되세요' '보름달처럼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서로에게 힘이 되는 한가위 되세요'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셋은 한결같이 '한가위 되세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기자는 세 현수막이 모두 한자어 '추석' 대신 우리말 '한가위'를 사용한 데 대해 좋은 점수를 주려고 한다.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옥외광고법) 제5조도 청소년의 보호와 선도를 방해할 우려가 있는 옥외 광고물을 금지한다고 했으니, 우리말을 사용하는 모범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을 듯하다.
문제는 '되세요'에 있다. '되다'에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지금은 기본 의미인 '변하다'의 뜻으로 사용된 용례다. 넓게 본다면 '새로운 지위가 얻어지다, 제 모습이 갖추어지다, 이루어지다' 정도의 뜻이다. 물론 이들도 '변하다'의 의미를 속에 품고 있다. 예를 들어보면 아래와 같다.
- 그 사람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얼굴이 홍당무처럼 붉게 변했다).
- 조국이 법무부 장관이 되었다(조국의 직업이 교수에서 법무부 장관으로 변했다).
- 요리가 되었다(단순 재료이던 먹을거리가 먹음직한 요리로 변했다).
- 입사 시험에 합격이 되었다(무직이던 그가 곧 회사원으로 변하게 되었다).
누군가가 '교사가 되었다, 돼지가 되었다, 개가 되었다, 돌이 되었다, 신선이 되었다, 신이 되었다' 중에는 믿을 수 없는 말은 있어도 어법에 어긋나는 말은 없다. 어느 문장도 비문은 아니다. 박제상의 부인이 망부석이 되었다거나, 최치원이 신선이 되었다거나, 예수가 신이 되었다는 것은 누군가는 믿고 다른 누군가는 믿지 않을 따름이다.
그러나 사람이 '한가위가 되었다'는 문장은 말도 안 되는 말일 뿐만 아니라 어법에도 맞지 않다. '한가위 되세요'라는 말은 사람에게 한가위로 변하라는 주문이다. 사람이 한가위로 변했다는 말을 믿을 이는 아무도 없다. '되다'에 그런 의미가 없으니 비문이기도 하다.
전문가에게 확인해보는 습관부터 길러야
정치인은 '정치 9단'일 수는 있으나 본인의 분야 외에는 비전문가다. 국회에서든 지역구에서든 무슨 일을 할 때 전문가에게 확인해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렇게 하면 신뢰도 꼴찌를 다투는 정치인과 국회가 환골탈태를 할 수 있다.
현수막을 달기 전에 지역구 안의 중등학교를 찾아가거나, 전화를 걸어 보길 권한다. 국어교사를 찾아서 "저는 아무개 국회의원입니다,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라는 말이 어법에 맞는지요?"라고 문의하시라. 만사를 그렇게 하면 본인의 수준이 높아질 뿐더러 평판까지 매우 좋아질 것이다.
사거리를 지나 집으로 가려면 큰 아파트 단지 정문 앞을 지나가야 한다. 그곳에도 한가위 현수막이 보인다.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내건 현수막은 '풍요로운 한가위 보내세요'라고 인사하고 있다. 이게 올바른 표현이다. 과연 우리나라는 일반 국민이 정치인보다 수준이 높은 나라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