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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일 때가 있었다. 친화적이긴 했지만 작은 것에 집착하고 일의 성과를 자신의 정체성과 결부시킨다는 평과 함께 나는 회사 문화에 맞지 않은 사람으로 점점 낙인찍히는 듯했다. 질문에는 늘상 정해진 문법같이 답이 함께 딸려 있다는 점을 일찌감치 알았더라면 회사 생활을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었을까? 과거를 돌이켜보면 잘못된 일에는 죄책감부터 앞섰던 것 같다.

나에게도 <아몬드>의 화자와 같은 동료가 있었다면 이때의 나에게 뭐라고 조언해주었을까?
 
 소설 <아몬드> 표지
소설 <아몬드> 표지 ⓒ 창비
 
소설 <아몬드>의 이야기 구성을 보면 흥미롭다. 화자는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소위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는 아이로 설정되어 있다. 초반에는 화자에게 닥친 끔찍한 사건을 둘러싸고 이후 화자의 행보를 적어가는 듯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편견 없이 보여준다.

결국 작가는 세상의 가치관에 휩쓸리지 않고 객관적으로 사고를 바라보고 술회하는 화자인 '나'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의 눈을 통해 세상에 이미 자행되고 있는 폭력에 대해서 가감없이 이야기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는 성공했다. '나'에게 초점이 맞춰진 시선 때문에 그의 눈을 따라 사건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식과 진심, 강한 것과 젠체하는 것 그 경계를 짚어낸다.

윤교수는 아들 곤이를 어릴 적 잃어버리고 15년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찾았다. 그런데도 윤교수는 아들의 존재를 아픈 아내 앞에서 숨기려 한다. 왜 그랬을까? 윤교수는 생각한 것보다도 더 제멋대로 자란 곤이에게 실망감을 느끼고 좀 있으면 세상과 작별할 아내에게 좋은 추억만을 안겨주고 싶은 것이었다. 윤교수가 철저히 자기 입장에서 해석해 내세운 대안이라는 점이 잘 드러난다.

그의 의도를 정확한 아들 곤이는 더욱더 삐뚤어진다. 죽어가는 나비의 고통에 미안하고 슬퍼서 한참을 울던 감정이 풍부한 곤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나비의 날개를 찢던 날, 곤이가 내게 무언가를 가르치려다가 실패한 그날, 어스름이 내리던 무렵. 바닥에 짓이겨진 나비의 잔해를 닦아내며 곤이는 몹시 울었다.

두려움도 아픔도 죄책감도 다 못 느꼈으면 좋겠어.
눈물 섞인 목소리였다. 나는 조금 생각한 후에 입을 열었다.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러기엔 넌 너무 감정이 풍부하거든. 넌 차라리 화가나 음악가가 되는 편이 더 어울릴걸. (243쪽) 

화자가 말하듯, 곤이는 단지 철이 덜 든 열일곱의 남자아이일 뿐이었다. '약해 빠진 주제에 강한 척하는, 물러 터진 놈'(p.238). 그렇기에 세상이 지정해준 질서에 맞게 자신의 성정을 애써 무시하고 살아가기를 거부하고 급기야 깡패인 철사를 롤모델 삼아 '나'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간다.

감정을 못 느끼는 '나'가 친구인 곤이를 위해 그의 내적 성장을 위해 스스로 위험을 자처하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 후반부에 드러나듯이 '나'는 다른 사람과 좀 다를 뿐 곤이의 연약함을 읽고 그의 깨달음을 위해 온몸을 바치는 등 그는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곤이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단순하고 투명했다. 나 같은 바보조차 속을 들여다 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세상이 잔인한 곳이기 때문에 더 강해져야 한다고, 그 애는 자주 말했다. 그게 곤이가 인생에 내린 결론이었다. 우린 서로 닮을 수는 없었다. 나는 너무 무뎠고, 곤이는 제가 약한 아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고 센 척만 했다. (171쪽)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연약한 구석을 알아채고 연약해서 만들어지는 상황 속에서 진정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담론을 제시한다.

엄마와 할머니가 사회 부적응자인 남자의 횡포에 희생되는 것을 보며 아무 대응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행태에 대한 답을 제시하듯 '나'는 곤이를 보호하고자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 그것이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더라도 말이다.
 
멀면 먼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245쪽)
 
<아몬드>는 처음에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비춰지지만 남들보다 사람들의 심리를 잘 읽고 사태에 대한 원인과 해결책을 알아내려는 분석적인 성격인 소유자의 '나'를 통해 세상에서 요구하는 젠체하는 가짜가 아니라 자신이 지닌 성정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진짜 삶을 살아가기를 조언하고 있다.

화자인 '나'가 사람들에게 배척당하지 않기 위해 엄마가 그를 훈련시키는 것을 보며 소위 대화 예절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울뿐인 대화인지 알게 된다.
 
누군가가 나에게 잘생겼다거나 잘했다는 식의 긍정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고마워 혹은 이 정도 가지고 뭘~이 맞는 대답이었다. (36쪽)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님에도 메뉴얼대로 답해야 하는 사태에 결국 적응하지 못한 나를 탓하던 과거에 대해 이제 조금씩 짐을 내려놓는 중이다. 화자가 곤이의 연약함을 알고 그가 가야할 방향을 온몸을 던져 보여준 것을 지켜보면서 과거의 나는 문제아가 아니라 연약해서 쉽게 상처받고 세상이 시키는 논리대로 살아가지 않으려는 것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안다.

글을 쓰지 않았으면 나는 일찌감치 이런 사회의 빡빡한 문법에 매몰되었으리라. 나에게는 화자와 같은 동료는 없었지만 내 스스로 나의 연약함을 알아주고 보듬어줄 수 있게 도와준 무수한 책들이 있다. 그리고 소설 <아몬드>는 과거 나의 흑역사 속에 파묻혀 있던 시절을 웃으며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지현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아몬드 (반양장)

손원평 지음, 창비(2017)


#아몬드#손원평#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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