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시민들도 10ㆍ26사태 이후 평온한 가운데 민주주의가 회복되고, 더 이상 차별받지 않은 지역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에 차 있었다. 그럼에도 '서울의 봄' 아니 대한민국의 봄은 쉽게 오지 않았다. 신군부의 정권야심 때문이었다.
이 지역은 박정희 시대, 학생ㆍ지식인ㆍ농민ㆍ노동자들의 반유신 투쟁과 특히 1980년 봄에는 민주화운동이 거세게 전개되었다.
광주의 대학가는 신학기가 시작되면서 병영집체훈련 거부, 재단비리 척결, 어용교수 축출, 학생회 부활 등 학원민주화를 시작으로 유신잔재 청산과 과도정부의 조속한 종식, 그리고 정치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전남대가 중심이 되었다.
5월 14일 오후에는 교문 앞에 포진한 경찰 저지선을 뚫고 광주시내로 진출했다. 도청 앞 광장에 집결한 학생들은 12ㆍ12 군부반란의 진상과 신군부의 음모를 폭로하고 유신잔당과 전두환ㆍ신현확 등의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시위집회를 평온리에 마친 학생들은 질서정연하게 학교로 돌아왔다.
15일에도 학생들의 시위는 이어졌다. 이날의 시위는 그동안 재단비리에 집중해 있던 조선대와 광주교대생들까지 참여하여 규모가 큰 시위로 발전했다.
15일에는 전남대뿐만 아니라 조선대와 광주교대 학생들까지 시위에 가담하여 도청 분수대 앞에는 1만 6천여 명의 학생과 수많은 시민들이 운집했다. 전남대의 시국성토선언문과 광주교대ㆍ조선대 민주투쟁위원회의 선언문이 낭독되었으며 교수들까지 참여했다.
학생들의 주된 구호는 "비상계엄 해제하라!" "유신잔당 물러가라!" "정치일정 단축하라!" "노동삼권 보장하라!" 등으로 다른 지역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시위대는 집회를 마친 후 대형태극기를 앞세우고 학교로 돌아왔다.
태극기 뒤에는 50여 명의 전남대ㆍ조선대 등 주요대학 교수들이 행진하고 그 뒤에 수만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뒤따랐다. 경찰은 시위진압을 아예 포기하고 학생대표들에게 질서를 당부하는 형편이었으며 전날에 비해 시민들의 호응은 크게 늘어나 집회나 시위 도중에는 박수를 치거나 구호를 함께 외쳐 학생들을 격려했다. 이것 하나가 서울이나 여타 지역과 조금 다른 점이었다. (주석 1)
이날도 학생들은 평온리에 집회를 마치고 학교로 복귀하였다.
학생회 지도부는 신군부가 곧 전국 대학에 휴교령을 내릴지 모른다는 정보에 따라, 만약 그럴 경우 그 다음날 오전 10시에 각 대학 정문 앞에 모여 시위를 벌이고 정오에 도청 앞 분수대 앞으로 집결하자는 방침을 밝혔다.
이와 같은 방침은 서울의 대학생들도 거의 비슷한 내용이었다. 1차로 각 대학 정문 앞에서 모이고, 정오에는 영등포ㆍ신촌ㆍ청량리 등 가까운 도심지에 모이기로 했으나, 막상 5월 17일 휴교령이 내렸으나 서울의 대학생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광주의 대학생들은 5월 16일에도 시위를 계속했다. 이날은 5ㆍ16쿠데타 19주년이 되는 날이다.
5월 16일 오후 도청 앞 분수대에는 전남대, 조선대, 광주교대, 동신실업전문대, 송원전문대, 성인경상전문대, 기독병원간호전문대, 서강전문대 등 9개 대학 3만여 명의 학생이 집결했다.
여기서 후일 계엄사가 김대중씨를 '광주사태의 배후조종자'로 몰기 위해 희생양으로 선택한 전남대 복학생 정동년씨는 <제2시국선언문>을 낭독했다.
학생들은 이 집회를 마친 후 대규모의 가두행진을 벌이고 다시 도청앞에 모였다. 오후 8시부터 학생들은 횃불시위에 돌입했다. 조선대생을 선두로 한 1개조는 금남로를 따라 행진하고 전남대생을 선두로 한 다른 1개조는 광주체신청 - 산장입구 - 산수동오거리 - 동명파출소 - 노동청을 거쳐 다시 도청 앞으로 돌아왔다.
광주시내는 400여 개의 횃불과 시위대의 함성으로 불야성을 이루었다. 경찰은 충돌을 피하기 위해 평화시위를 보장하고 교통정리를 해주는 등 협조를 해주었다. (주석 2)
이즈음, 광주를 향해 거대한 먹구름이 덮쳐오고 있었다. 또한 시민과 학생들은 알 리가 없었지만, 5ㆍ17 직전 광주지역 미국인들이 철수하고 미공보관이 폐쇄되었다. 신군부가 광주에서 살육전을 펴기 전에 취한 조처였다.
주석
1> 정상용 외, 앞의 책, 153~154쪽.
2> 앞의 책, 154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5ㆍ18광주혈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