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군 당국은 북한지역에서 비무장지대(DMZ) 철책을 통과해 넘어오는 야생멧돼지는 발견 즉시 사살하라는 지침을 최전방부대에 하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성으로 인한 북한 측과 우발적인 충돌을 막고자, 군의 멧돼지 사살 지침을 북측에도 군 핫라인을 통해 통보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4일 "DMZ에서 폐사체로 발견된 야생멧돼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가 검출됨에 따라 DMZ 철책을 통과하려는 멧돼지는 발견 즉시 사살하라는 지침을 최전방 GOP(일반전초) 부대에 하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군의 총성으로 자칫 북측과 우발적인 충돌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북측에도 우리 군의 사살 지침을 알려줬다"면서 "군 통신망을 통해 최근 북측에 관련 사실을 알렸다"고 전했다.
군은 그간 DMZ에서 야생멧돼지를 사살한 적은 없었고, DMZ 철책은 멧돼지가 통과할 수 없는 구조물로 설치되어 있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이번 극단적인 조치는 경기 연천군 DMZ에서 발견된 멧돼지 폐사체 혈액에서 ASF 바이러스가 검출됐기 때문이다. 멧돼지 폐사체가 발견된 곳은 DMZ 남방한계선에서 군사분계선 쪽으로 약 1.4km 지점이다
DMZ 철책은 멧돼지가 뚫거나 넘어올 수 없는 구조물로 설치됐으나, 태풍과 장마 등으로 토사가 유실되거나 산사태 등으로 파손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북한지역 멧돼지가 파손된 철책 틈새를 통과해 남쪽으로 넘어올 가능성이 제기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국회 국방위 소속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전날 국방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인용해 "2018년부터 올해 9월까지 9개 사단 13개소에서 GOP 철책이 파손됐고, 현재 보강공사가 진행 중인 곳은 5건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북한이 ASF 발생 사실을 국제기구에 보고했던 지난 5월 이후로도 파손된 사례는 7건에 달했다고 하 의원은 전했다. ASF에 감염된 북한지역의 야생멧돼지들이 GOP 철책을 절대 넘어올 수 없다고 한 국방부의 설명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앞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난 2일 국방부에서 열린 국방위 국정감사 때 "태풍으로 일부 철조망이 무너진 부분이 있겠지만, 북한에서 멧돼지가 내려오는 것을 허용하는 수준은 아니다"고 밝힌 바 있다.
야생멧돼지는 한때 GOP 장병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적이 있다. 겨울철 먹이 부족을 걱정한 GOP 부대에서 음식물 찌꺼기를 먹이로 주고 보호했다.
그러나 GOP 지역에 과학화 경계·감시 장비가 설치되기 시작하면서 멧돼지는 천덕꾸러기가 됐다.
GOP 과학화 경계·감시장비는 철책에 광그물을 씌운 감시·감지·통제 시스템이다. 이 광그물에 사람이나 야생 동물이 접촉하게 되면 센서가 작동해 신호가 감시통제소와 소초로 전달된다.
경계음이 울릴 때마다 5분 대기조가 신속히 출동해 점검해야 한다. 고라니와 너구리, 토끼 등도 광그물에 자주 접촉해 병사들의 기피 대상이 됐다.
이에 따라 과학화 경계·감시·장비 설치 이후에는 멧돼지의 철책선 접근을 막고자 음식물을 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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