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속 역사의 발자취 - 특별편①'에서 이어집니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다니는 동안, 고종사촌 송몽규 그리고 문과 동기 강처중과 늘 함께 붙어 다녔다. 2년 뒤, 후배 정병욱이 들어오면서 '3총사'는 '4총사'가 되었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에서도 '4총사'가 등장한다. 그런데 영화에서 등장하는 '4총사'는 윤동주, 송몽규, 강처중 그리고 이화여자전문학교(현재 이화여자대학교)의 이여진이다. 정병욱은 어디 갔으며, 이여진은 또 누구인가?
정병욱은 영화 속 등장인물에서 제외됐으며, 이여진은 허구 인물이다. 영화의 재미를 위해 구성원에 변화를 준 것 같다. 영화 속 이여진은 정병욱을 모티브로 만들진 인물로 보인다.
영화 <동주>에서 이여진은 가장 마지막에 '삼총사(윤동주, 송몽규, 강처중)'에 합류한다. 실제로 정병욱은 윤동주 무리에 제일 늦게 들어온다. 그 이유는 동급생이었던 다른 멤버들과는 다르게, 정병욱은 나이도 5살 어리고, 학년도 2년 아래였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윤동주와 이여진의 인연은 이여진이 쓴 산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윤동주와 정병욱의 인연 역시 정병욱이 쓴 산문 '뻐꾸기의 전설'을 읽고, 윤동주가 정병욱의 기숙사를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극에서는 윤동주와 이여진이 함께 밤길을 걷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배경 시로 '별 헤는 밤'이 깔린다. 이어서 이여진은 윤동주의 습작시(習作詩)를 읽은 소감을 말한다. "다른 작품들처럼 좋던데. 근데, 읽고 나서 왠지 좀 쓸쓸해졌어"라고. 이 장면은 마치 정병욱이 '별 헤는 밤'의 초고를 읽고 "어쩐지 끝이 좀 허한 느낌이 드네요"라고 말했던 것과 매우 흡사하다.
대중적인 요소를 더하기 위해 잔잔한 로맨스를 넣은 것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윤동주의 글벗이자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간행에 크게 기여한 후배 정병욱이 영화 속에서 삭제됐다니, 섭섭함을 감출 수 없다.
선배 빈자리를 문학으로 승화시킨 후배
1941년 12월 27일, 윤동주는 전시(戰時) 학제 단축으로 연희전문학교를 3개월 일찍 졸업했다. 그 후, 윤동주와 송몽규는 북간도(중국)에 1달 반 정도 머무르며 일본 유학을 준비한다. 그런데 1940년 2월 11일부터 '창씨개명'이 본격적으로 실시되고, 일본 유학을 가기 위해서는 성씨를 개명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도일(渡日) 수속의 편의를 위하여 성씨를 개명한다. 윤동주는 히라누마 도쥬(平沼東柱), 송몽규는 소오무라 무게이(宋村夢奎)가 되어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윤동주가 서울을 떠난 후, 정병욱은 윤동주의 빈자리를 문학으로 승화시켰다. 김응교 '기획논문 : 우애와 기억의 공간, 윤동주와 정병욱 -윤동주 연구'(<한민족문화연구> Vol.49, 2015)에 의하면, 일본 시인협회에서 편집하고 가와데 쇼보(河出書房)에서 출판한 시집 <쇼와 16년 춘계판 현대시>(昭和十六年春季版現代詩)와 <쇼와 16년 추계판 현대시>(昭和十六年秋季版現代詩)에 두 편의 시조를 실었다고 한다. 쇼와(昭和)는 일본의 연호 중 하나이며, 쇼와 16년은 서력(西曆) 1941년이다.
언니가 떠난다니 마음을랑 두고가오
바람 곧 신(信)있으니 언제 다시 못 보랴만
이 기쁨 저 시름에 언니 없이 어이 할고
1941.12. 병욱 드림
저 언니 마음에서 동백꽃 피면지고
동백꽃 미온고장 내고향이 아닌가
몸이야 떠나신들 꽃이야 잊을소냐
1941.12. 병욱 드림
두 시조의 제목은 모두 '축 졸업'이다. 시조에서 두 사람의 우애가 얼마나 깊었는지 느낄 수 있다. 이듬해인 1942년 1월 윤동주는 시 '참회록'을 마지막으로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그리고 1944년 1월, 정병욱은 강제 징집돼 학병으로 전쟁터에 끌려간다.
정병욱은 강제 징집되기 전, 광양에서 양조장을 하고 계신 어머니께 들러, '윤동주의 육필 원고(유고) 보관'을 부탁하였다. 정병욱의 어머니에게는 아들의 마지막 유언 같은 부탁이었을 것이다. 정병욱의 어머니는 원고를 보자기에 고이 싼 후, 작은 항아리에 담아, 마룻바닥을 뜯어 그 아래에 묻어 보관한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1945년 8월 태평양 전쟁이 끝을 맺으면서, 강제 징집됐던 사람들이 하나둘 귀향하였다. 귀향한 사람 중에 정병욱도 있었다.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정병욱은 1946년 4월에 경성대학(현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고, 경성대학에 재학하는 동안 '4총사' 중 한 명이었던 강처중과 함께 윤동주의 유고 시집 편찬을 진행한다.
정병욱이 윤동주에게 받은 육필 원고에 적힌 시 19편. 일본 유학 시절 윤동주가 강처중에게 우송(郵送)한 시 5편. 그 외 습유작품(拾遺作品) 7편. 총 31편을 모아 1948년 1월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을, 1955년 2월에 증보판을 발행하였다.
존경하는 선배의 시를 따서 호를 지은 정병욱 선생
시인 윤동주의 후배인 정병욱 선생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1957년), 미국 하버드대학 옌칭 연구소에 초빙 교수(1962년) 등을 역임한 한국 문학계의 거장이다.
정병욱 선생의 호는 백영(白影)이다. 흰 그림자라는 뜻이다. 시인 윤동주가 유학 시절 강처중에게 보낸 시 중 '흰 그림자'라는 시가 있다. '흰 그림자' 속 '흰'은 백의민족인 우리를 뜻한다. 김응교 교수는 "'흰'옷을 입었던 민족을 일본에서도 잊지 못하여 '그림자'로 아른거린다고 썼던 윤동주의 마음을 정병욱은 호로 삼았던 것이다"라고 했다.
조국을 향한 선배의 애달픈 넋을 이름에 새긴 후배. 그 간절한 마음을 기르기 위해서 광양시에서는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 근처에 '윤동주 시비 공원을 조그만하게 설립했다.
답사를 간 그날, 가을 하늘은 청명했다. 윤동주가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그 모든 이의 '오래 마음 깊은 속'까지 가을의 청명함이 가득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광양시민신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