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부대가 시민들에게 일제사격을 할 때 공중에서는 군 헬기가 기총사격을 가했다. 같은 시각 건물 옥상에서도 저격수들이 비무장 시민들에게 총탄을 퍼부었다.
이때 집단발포 명령을 내린 자는 누구였을까?
당시 도청 앞 현장의 가장 중심에 서있던 11공수여단 61대대장 안부웅 중령은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사격이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사격지시를 내린 사람도, 받은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시위대가 카빈이나 기타 총으로 무장하고 있는 모습을 본 사실이 있으며 시위대의 차량 돌진과 동시에 시위대 쪽에서 사격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집단 발포 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11공수여단과 7공수여단의 「전투상보」에는 당연히 기록돼 있어야 할 '계엄군의 집단발포에 대한 기록'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주석 14) (이 부분 원 주석 생략 - 필자)
우발적이라고 보기는 '지상군'의 경우는 그렇다 치더라도 헬기사격과 옥상 저격수의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일까. 일정한 지휘체계가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현상이었다.
5월 21일 이전부터 계엄사령부는 광주 이외의 지역으로 항쟁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려고 광주의 외곽 봉쇄를 지시했다.
5월 20일 23시 25분, 2군사령부는 '소요 확산 저지(작상전 제445호)'를 지시했는데, "광주시 외부로 나가는 교통로를 봉쇄"하라는 명령이었다. 5월 21일 전후 외곽 봉쇄의 차이는 자위권이 발동되고 실탄이 지급된 점이다.
한 공수부대원의 진술에 따르면, 공수부대원들은 외곽 봉쇄지역에 도착한 뒤 1인당 420발의 실탄과 2발의 수류탄을 지급받았다고 한다. 자위권이 정식으로 발동된 것은 5월 22일 10시 30분이었으나 계엄군이 광주 시내에서 철수한 때부터 실탄이 지급되고 자위권이 발동 된 상태였다. (주석 15)
살아남은 시민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살상극에 망연자실했다. 54명이 숨지고 500여 명이 총상을 입은, 현실에서는 있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넋을 잃고 있을 순 없었다.
시민들은 우선 신음하는 부상자들을 거두어 병원으로 실어 날랐다. 인근의 개인병원이 부상자로 넘쳐나자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으로 부상자들을 후송했다. 그러나 긴급한 수술을 요하는 총상환자들 가운데 많은 수가 응급처치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숨져갔다.
이 집단발포로 몇 사람이 사상당했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군의 발표와 1988년 이후 피해자 신고서 내용을 종합해볼 때 최소한 이곳에서 54명 이상이 숨지고 500명 이상이 총상을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주석 16)
이날의 참사는 도청 앞 뿐만이 아니었다. 시내 여러 곳에서 잔인한 살상극이 자행되었다. 군지휘부 또는 신군부 핵심의 명령이 있었던 것 같다. 이날 오전 광주에는 전두환과 정호용 특전 사령관이 은밀히 다녀갔다.
도청 앞뿐만이 아니었다. 다수의 시민ㆍ학생들이 갇혀 있던 전남대 앞에도 오전 10시경부터 정문에 4만여 명, 후문에 1만여 명의 시민들이 몰려들어 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3여단 5개 대대 병력과 공방전을 치르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오후 2시경 수십 대의 차량을 전남대앞 삼거리 철길 구름다리 앞으로 집결시켰다.
오후 2시경 시민들은 아세아자동차 공장에서 끌고나온 경찰의 시위진압용 가스차 몇 대를 앞세운 채 구름다리를 넘어 서서히 전남대쪽으로 압박해들어갔다. 바로 이때 3여단 병력이 시위대를 향해 일제사격을 퍼부었다. 가스차를 비롯한 여러 대의 시위차량은 운전기사가 총에 맞아 도로 위에 멈추어섰다.
시위대는 모두 흩어져 골목길에 몸을 숨겼다.
3공수여단 병력은 차량 안의 시민들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아무 응답이 없자 가스차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부상당한 시민들을 끌어내 전남대로 끌고갔다. 3여단의 보복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시위자들을 추격하여 인근 주택가를 수색하면서 주민들을 살상했다. 그들은 심지어 만삭의 가정주부를 사살하기까지 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주석 17)
주석
14> 강준만, 앞의 책, 204쪽.
15> 노영기, 앞의 책, 224~225쪽.
16> 정상용 외, 앞의 책, 221쪽.
17> 앞과 같음.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5ㆍ18광주혈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