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평화경제를 하려면, 먼저 극복해야 할 것들이 있다. 대북제재는 어떻게 할 건가? 한국은 유엔의 제재 때문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현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평화경제'를 언급한 날, 한쪽에서는 평화경제의 한계를 지적하는 말이 나왔다. 평화경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신한반도 체제'의 중심 개념으로 남북경제협력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유럽, 분명한 비핵화 전에는 제재 완화 동참 않을 것"
이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9년 한반도 평화경제 국제포럼'에 참석한 아시아 안보 전문가 로버트 켈리 부산대(정치외교학)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평화경제를 추구하려면, 제재 완화가 필요한데, 유럽 등 서구에서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문 대통령이 유럽을 방문했지만, 제재 완화와 관련해 (유럽의 지지를 받는 등) 성과가 없었던 이유가 이거다. 북한이 핵무기·핵 기술을 중동으로 전파하는 걸 우려하는 유럽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분명하게 나오지 않는 한 대북제재 완화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켈리 교수는 "서구 사회에서는 북한이 행동을 해야 보상으로 제재 완화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며 "결국, 한국의 평화경제는 결국 북한이 행동을 바꿀 때 그 이후에 제공하는 보상이 돼야 한다"라고 밝혔다.
그는 남한 내부에서 일어나는 이념적 갈등인 이른바 '남남갈등'도 평화경제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켈리 교수는 "북한과 대대적인 경제협력을 하려면, 국내적인 지지기반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한국은 (북한과 관련해) 심각하게 충돌하고 있다"라며 "대북활동을 지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과거 햇볕정책도 보수세력의 반대 때문에 흐지부지됐다"라고 설명했다.
"평화경제 개념, 정의해야"
이어 "평화경제로 나아가려면 '남북한의 경제 수준 차이'도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고 했다. 북한의 후진적인 경제구조 때문에 남북이 동등한 협력을 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켈리 교수는 "남북의 경제 비대칭성이 너무 크다. 한국의 대기업이 북한에 진출하면,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할 텐데 북한 주민들이 이를 받아들이겠냐"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북한 내 외국기업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보면, 외국기업이 수입을 창출해도 북한이 다 강탈해버렸다. 북한이 사기를 친 것"이라며 "이런 문제들이 한반도에서 재연될 수 있다. 북한은 (지금까지) 많은 악당 행위를 했다. 한국이나 중국 기업에 이런 짓(악당)을 해왔다"라고 북한을 향한 불신을 드러냈다.
켈리 교수는 부산에서 북한의 나진, 러시아 하산까지 연결되는 '한반도 종단철도'도 못 미더워했다. 그는 "남한 정부는 한반도 철도연결을 통해 중국·러시아로 사업을 할 거라고 말하는데, (그렇게 되면) 북한이 한국과 해외 기업을 강탈하려고 할 수 있다. 이런 리스크를 해외 기업이 감당하겠느냐"라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김영한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역시 '평화경제'의 현실성을 문제 삼았다. 김 교수는 "유엔 제재 해제가 없으면 (평화경제는) 단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라며 "제재 해제를 위한 구체적인 모멘텀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논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평화경제라는 개념에 대한 정의가 합의된 게 없는 것으로 보인다. 평화경제를 의미 있게 진행하려면, 남한의 일방적인 북한 지원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형태를 고민해야 한다"라며 "남한 기업과 서방 기업이 비즈니스의 관점으로 접근해도 이윤이 날 수 있다고 판단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