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쯤, 팔레스타인에서 페미니스트 운동을 3개월 하다 몸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졌다. 질병의 원인을 찾기 어려웠다. 지난 10여 년의 긴 투병생활을 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건강권과 질병권에 대해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질병권이라니? 어느 누가 질병권이란 단어를 생각해냈단 말인가. 듣도 보지못한 새로운 개념이었다. 그 포문을 지난 10년간 외롭게 투병하던 페미니스트가 열었다.
작가가 새롭게 만들어낸 질병권(疾病權)이란 잘 아플 권리다. 건강권과 유사하지만 건강권이 건강을 중심으로 한 개념이라면, 질병권은 질병을 중심으로 건강권을 재구성한 개념이다.
그가 쓴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란 보라색 책은 구독하던 시사잡지와 여러 언론에서 추천서로 접했다. 특히 부제였던, '어느 페미니스트의 질병관통기'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화성 오산 녹색당과 화성아이쿱 공동주관으로 조한진희 작가의 북콘서트를 기획한 이유다. 그의 질병관통기를 읽으며 그가 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라고 고백했는지를 듣고 싶었다.
지난 16일 동탄의 한 까페에서 열린 그의 북콘서트에 참석한 20여 명은 저자의 담담하지만 예리한 질문에 쉽사리 답을 하지 못했다. 저자의 질문에 깊은 고민을 하는 시간이었다. 한 참석자는 "불편해서 좋았다"고 짧은 소감을 전했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는 우리사회에서 건강이라는 이름하에 개인에게 전가하는 책임에 대해 묻는다. 왜 우리는 아픈 것에 대해 이렇게 죄책감 혹은 미안한 감정을 갖고 사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저자는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와 건강산업에 의한 왜곡된 인식이라고 주장한다.
'아픈 사람에 대한 편견이나 일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은 차별이 아닐까?', '우리의 몸은 과연 사회에서 독립된 신체일까?', '과연 한국 사회에서 정의된 건강한 몸 혹은 장애에 대한 정의는 공평 타당한 것일까?'에 대한 질문을 책은 하고 있다.
대다수의 건강한 사람들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이 날카로운 질문에 대해 독자는 우리 사회를 둘러싼 이 건강에 대한 프레임은 누구로부터 온 것인가 다시 돌아보게 된다.
조한진희 작가는 말한다.
"질병을 둘러싼 차별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득분위와 노동강도에 따라 지역별 건강수준 평균수명의 차이가 한 나라에서도 지역별로 16~17년의 차이가 난다는 통계가 있다. 개인이 노력하면 정말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것일까? 아픈것이 정말 개인의 책임일까?"
우리 사회는 잘 아플 권리가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아프다. 아프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아프면 쉴 수 있어야 하고 생계가 위협받지 않도록 사회가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개인의 건강은 사회의 결과물 중에 하나라고 강조한다. "아픈 게 부끄럽거나 창피한 것이 아니고, 아픈 게 온전한 나의 책임이 아니다"라는 저자의 책은 그래서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