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주인공을 볼 때 우리는 당신을 봅니다". 한 보험회사 광고 문구다. 광고는 영화 같은 액션장면으로 시작한다. 한 남성이 추격전을 벌이다 정차돼 있던 여성의 차를 뺏듯이 빌려(?)타고 도망치는 남성을 뒤쫓는다. 영화 속 주인공이었다면 카메라 앵글이 추격전을 벌이는 남성에 향했겠지만, 광고는 차를 뺏겨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 여성의 얼굴로 향했다.
영화에서 흔하게 접하는 이런 장면에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고 마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 주인공이 도심에서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을 보면 '저 총알에 길 가던 사람이 맞지는 않을까', 정차된 차를 훔쳐 타는 장면에서는 '자동차 주인은 차를 어떻게 돌려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한번쯤은 했을 것이다.
국회 상황에 이를 견줘보면 생각할 점이 많다. 최근 국회에서는 '파행'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들려 왔다. 파행은 의사일정으로 잡아 놓은 회의가 부득이 열리지 못할 때 쓰이는 말이다. 6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강기정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논란으로 파행됐다. 지난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야당 의원을 향해 고성을 치며 설전을 벌인 데 따른 것이다.
지난 10월 29일에도 예결위는 하루를 통으로 날렸다. 야당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민갑룡 경찰청장의 사를 요구했고 이에 대한 여야 협상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한국당의 경제정책인 '민부론'에 대해 분석·반박자료를 내부 검토용으로 만들었고 이후 여당 요청에 따라 자료를 제공했다. 경찰청은 여당 씽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보고서를 직원들에 배포하고 필독을 지시했다. 야당은 기재부와 경찰청의 행위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한 것으로 봤다.
회의가 파행으로 치닫자 모두가 국회의원을 쳐다보는 형국이다. 언론에서는 예결위의 파행 원인과 향후 정국 방향, 야당의 요구사항과 여당의 입장을 담은 기사가 쏟아졌다. 각 당의 입장을 듣기 위해 마이크는 간사들에게 향했다. 간사들이 의사일정을 합의하고 갈등을 푸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잠시 놓친게 있다. 예결위가 파행을 맞는 동안 여당 의원 일부가 회의장 자리를 지켰지만, 대부분은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반면 예산심사를 받는 국무위원석은 빈자리가 없었다. 이들은 언제 회의가 열릴지 몰라 자리를 비우지 못했고, 회의시간이 연기될 때마다 퇴장과 입장을 반복했다.
국무위원이 자리를 비우고 업무를 못하면 국정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예결위 파행과 같은 일이 반복돼서는 안될 이유 중 하나다. 국무위원 눈치를 살펴 의사일정을 진행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각 당은 정치적 입장 차에 따라 서로 다른 주장을 할 수 있다. 기재부의 '민부론 반박 자료'를 놓고 야당은 공무원 중립 위반으로, 여당은 당정협의로 보는 것이 한 예다.
여야 갈등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다만 여야 갈등으로 애꿎은 국무위원들이 일을 못하게 되는 사태는 없어야 한다. 의사일정은 간사 간 논의로 결정되는 만큼 예정된 회의는 진행하고, 협의는 간사들이 나서서 따로 진행하는 것이 옳다. 모두가 국회의 갈등만 볼 때 한번쯤은 옆으로 시선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덧붙이는 글 | 블로그에도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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