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가회의에서는 '2019 대전방문의 해'를 기념하여 연속기고를 시작합니다. 대전의 볼거리와 즐길거리, 추억담을 독자들과 나누고 대전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고자 합니다.[편집자말] |
"다리 밑에 사람이 있는데요."
"사람?"
"죽은 것 같습니다."
"어느 쪽이야?"
"중구? 서구?"
"중간에서 우리 서구 쪽으로 좀 넘어와 있는 것 같은데요."
서부경찰서 소속인 주인공 형사는 후배 형사의 말에 귀찮게 됐다는 듯 강물로 내려가 더니, 물에 둥둥 떠 있는 조폭의 시체를 질질 끌어다 조금 오른쪽으로 옮긴다. 그리고 나서 119에 전화를 건다.
"여기는 유등교 아래, 아니, 시체가 유등교 아래 중구 쪽 물속에 있심더. 삼부아파트 쪽, 중구 쪽인데예, 빨리 중부경찰서에 연락해 형사들 좀 보내 주이소."
<내가 죽인 시체가 돌아왔다>라는 소설의 도입부다. 업무상 읽어야 해서 집어든 소설인데 도입부에 나오는 구체적인 지명들 때문에 순간 흥미가 확 돋았다. 유등교와 유등천, 중구와 서구의 경계, 게다가 삼부 아파트라니... 이 작가 최소한 대전 좀 아는 사람 아냐? 유등천이 중구와 서구를 경계 짓는 하천이란 지리적 특성은 시체 옮기기라는 코믹한 에피소드로 탄생한다. 소설은 현실에선 거의 일어날 수 없는 황당한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여기에 IMF 경제위기라는 특정 시기와 구체적인 장소들을 가져와 훨씬 흡입력 있게 읽힌다. 그렇게 '잘 아는 공간'은 장르 불문 창작인들에게 상상의 원동력이고, 공간 특유의 정서와 매력을 잘 품게 해주는 밑천이 돼주기도 한다.
대전이라는 공간
IMF 경제위기의 시절, 나는 대전의 방송사에서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늦은 밤, 인터넷을 들락거리며 틈틈이 속보를 살폈으나 경기는 쉽게 끝날 줄을 몰랐다. 결국 피디는 두 개의 방송 테잎을 내게 던져 주고 퇴근했다. 나는 텅 빈 방송국 편집실에 앉아 두 가지 경우의 수에 따른 두 개의 원고를 준비했다. 첫 번째는 '환희에 찬 우승' 에 대해, 두 번째는 '아쉬운 패배' 에 대해.
그렇다 치고 미리 쓰는 원고는 우승이든 패배든 영 감정과 속도가 붙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생방송에 맞춰 가까스로 준비를 해두고, 복도 끝 의자에서 대충 새우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한편의 드라마가 탄생해 있었다. US 여자오픈에서 박세리 선수의 우승 소식! 모두가 기억하는 바로 그 '박세리의 하얀 맨발' 이 탄생했던 그 대회였다. 경제위기로 도통 웃을 일 없는 국민들에게 유일한 위로와 희망을 주는 두 선수, 박세리와 박찬호를 '박남매' 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지역 방송사 제작진에겐 같은 성씨의 스포츠 스타라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대전, 충남이 낳은" 선수였던 것. 지역의 명사, 명소, 사건을 다루는 것은 지역 방송사의 당연한 역할이고 의무다. 그러나 지역성이 담긴 방송소재가 늘 넘쳐나는 건 아니어서 제작진은 늘 소재에 목말랐다. 그런데 박찬호, 박세리의 고향이 이른바 '대전 충남권' 이란 건, 제작진 입장에선 그야말로 대어! 두 선수의 집과 모교, 훈련장, 가르친 스승과 친구 등등이 대전 인근에 포진해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 일이던가.
박찬호 선수 아버지는 툭하면(?) 찾아가는 방송국 것들에게 아주 친절한 타입은 아니었다. "인터뷰는 뭐... 찾아와도 집에 없을 건데, 밤 농사로 바쁜디..." 등등, 완곡하게 거절도 많이 했다. 그러던 어느 나른한 오후, 박찬호 아버지께서 트럭에 밤상자를 싣고와 방송국 로비에 내려놓고 휭하니 사라졌다. '우리 아들 때문에 수고가 많으시다 .직접 지은 밤이니 나눠 드시라'는 인사는 나중에 전해왔다. 어마어마한 수퍼스타가 돼버린 아들의 명성에 슬쩍 으쓱할 법도 한데, 작은 흠이라도 날까, 묵묵히 뒷자리를 자청한 아버지, 그러면서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아들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그런 아버지'. 나는 박찬호 선수의 성공과 연봉도 부러웠지만, 그에게 그런 아버지가 있다는 게 더 오래도록 부러웠던 것 같다.
대청댐 수몰지구는 추석, 설 명절 때 대전의 방송사들이 찾아가는 단골 취재처였다.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아련한 기억들을 담고 돌아오는 길, 아스라이 물안개가 가득한 풍경은 늘 봐도 한 폭의 그림, 봄이 시작되면 신탄진 벚꽃 축제장에서 방송을 했는데 나는 신탄진 벚꽃 보다는 테미고개 벚꽃이 더 좋았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춘마곡 추갑사' 고 자연 다큐멘터리의 주요 후보지였다. 그렇게 좋은 곳이 대전에서 한시간 남짓이면 가는 거리에 있다는 건, 사실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다.
논산 딸기, 금산 인삼, 청양 구기자, 서산 모시, 강경 젓갈... 출하시점에 맞춰 지역의 특산물을 찾아 다니던 일도 돌아보니 재밌었다. 도시 변두리 출신인지라 이런 저런 작물 재배를 직접 지켜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물론 최고급 농산물을 맛볼 수 있었던 건 보너스! 떠들썩한 축제현장, 무대 뒤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그러나 더없이 흥을 즐기던 축제가수들도 인상적으로 가슴에 남아있다.
"의뭉스러운 사람"들과의 추억
흔히 충청도 사람을 '의뭉스럽다' 고 하는데 그 의뭉스러움이 최고로 빛을 발하는 순간은 바로 섭외요청을 했을 때다.
"방송은 무슨.. 우린 그런데 안 나가. 바뻐. 못 혀.."라고 거절하면서도 구체적인 날짜는 언제인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미장원도 갔다와야는디.. 할 때, 초보 작가 시절의 나는 진심으로 혼란스러웠다. '이것은 수락인가, 거절인가!' 경력이 쌓이자 '미장원' 정도 얘기가 나오면 이미 적극수락임을 감으로 알아챘다. 출연섭외를 위해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안되었으니, 내 안에 없던, 생계용 넉살과 살가움이 뿜어져 나올때, 어르신들이 감도 주고 무도 뽑아주고 심지어 빈말로 '아휴, 고양이 예쁘네요' 했더니, 광주리에 고양이를 담아 가져가라고 해서 등에서 땀이 삐질삐질 난 적도 있었다. (나는 고양이가 무섭다)
명절 때 농촌의 보건소는 곧 응급실이 되는데, 오랜만에 모인 친족들간에 땅문제, 부양문제 등으로 다투다 홧김에 마시는 농약 때문이다. 집안 곳곳 손 닿는 곳에 있는 농약은 종종 그렇게 평온을 깨는 존재였던 것. 사회 초년생인 나는 그렇게 그곳에서 일하며 세상을 느끼고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렇다. 그땐, 단지 끝내고 해치워야 할 일이고 업무였던 적이 더 많았겠지.
지금은 일 때문에 대전을 떠나왔다. 서울에서 대전은 KTX 로 한 시간이면 가능하다. 새삼, 세상 밖으로 막 던져진 사회 초년생 작가로 첫발을 내딘 곳이 대전이었단 게 참 다행이었던 것 같다. 한두시간 남짓이면 충분한 충청의 여러 소도시들을 품고 있는 대전에서 다채롭고 풍요로운 경험을 실컷 할 수 있었으니까. 참, 백제문화의 품격이 스며있는 공주와 부여를 빼먹었네. 너무 많아 살짝 빼먹을 만큼 개성 넘치는 곳들의 중심에 대전이 있다. 자, 이제 내가 잘 아는 공간들 속에 상상력만 불어 넣으면 된다. 말은 참 쉽다.
명창현
방송작가, KBS라디오 드라마극본공모전 수상. 한국방송작가협회 신인상수상,
MBC향단전, KBS무대, 라디오극장, 3.1운동100주년 다큐드라마 '그녀의 투쟁' 등 다수 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