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 대상 안건)에 오른 법안 철회 등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여온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단식 8일째인 27일 밤 건강악화로 병원으로 후송됐고 의식을 되찾았다. 민폐 단식, 친일 단식, 황제 단식, 징기스칸 단식 등 온갖 수식어가 붙던 황교안 대표의 단식이 8일 만에 중단된 것이다.
황교안 대표의 이번 단식은 시작할 때부터 논란이 일었다. 단식은 사회적 약자들이 마지막 수단으로 진행하는 것인데 110석의 막강한 권한을 가진 제1야당의 대표가 '약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 난데없다는 이유였다. 또한 장비설치가 엄격히 제한된 장소에 몽골텐트를 설치한 것도 입길에 올랐다. '엄정한 법집행'을 강조하며 시위자들을 엄벌하던 전직 공안검사와 법무부 장관 출신이 불법적으로 특혜를 요구한다는 비판적 목소리가 높아졌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병원에 입원한 만큼 하루빨리 건강을 되찾고 법안처리 문제를 국회 협상으로 해결해야 한다.
한국당의 그 주장이 틀린 이유
110석을 가진 제1야당이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걸핏하면 국회를 보이콧하고 장외투쟁을 진행하는 모습은 제1야당으로서의 지위를 스스로 저버리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의 장외투쟁의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자유한국당은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농성을 하면서 현재 국회에 부의된 '패스트트랙 법안'이 '불법이고, 무효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패스트트랙에 오른 법안은 '국회선진화법' 절차에 따라 진행된 것이다. 오히려 자유한국당은 자신들이 만든 '국회선진화법' 절차를 어겨가면서 온갖 불법과 폭력으로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유한국당은 특권의식을 버리고 검찰에 출석해 자신들의 불법행위부터 떳떳하게 조사를 받아야 한다.
'선거법개정안' 부의로 시작된 여야 4+1 회의
27일 0시 패스트트랙에 오른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자동부의 되면서 여야는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갔다. 패스트트랙 지정 당시 공조했던 여야 4+1(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연대) 회의가 시작됐다. 그러나 과연 선거제도 개혁이 잘 이뤄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지켜보는 모두가 불안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30년 만에 찾아온 정치개혁의 기회를 잘 살리기 보다는 어떤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한가, 셈법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패스트트랙에 올린 합의안이 흔들리고 있다. 의석수를 225(지역):75(비례)로 하고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 골자인 합의안이 논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260:40이니 250:50이니 하는 말이 나오고, 연동율을 현저히 낮춰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 취지 자체를 흔드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책임은 선거제도개혁을 공약했던 집권여당이자 의회 다수당인 민주당이 정치개혁을 주도해나가지 못하고 복잡한 셈법에 갈팡질팡 하고 있는 데 있다. 패스트트랙에 오른 선거제개혁법과 공수처설치법, 검경수사권조정법을 동시에 처리하기로 합의했음에도 민주당이 뒤에서 분리 처리를 타진하고 있다는 소문도 나온다.
또한 지역구의석이 줄어들도록 합의안을 만들어 놓고 정작 반대하는 민주당 의원들을 설득하거나 의원정수를 확대하는 방안과 같이 적극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구 축소를 최소화 하는 데만 관심을 보이는 등 소극적인 자세로 임하면서 후퇴한 안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250(지역):50(비례)안은 현행 253(지역):47(비례)에서 비례대표가 3석이 늘어나는 안이다. '고작 3석 늘리려고 험난한 과정을 거쳐서 패스트트랙에 올렸나' 자괴감이 드는 이유이다. 거기에 아예 연동형비례대표제 폐지를 주장하는 자유한국당과 협상을 시도할 예정이라고 하니 앞길이 더 막막하다.
특권을 폐지하고 '민심 그대로' 국회 만들어야
어려울 때일수록 무엇을 위해서 싸움을 하고 있나 돌아봐야 한다. 정치개혁을 왜 하려고 하는가? 그동안 국민들의 불신의 대상이었던 국회를 근본부터 개혁하자는 것이다.
불체포특권 등 국회의원들의 각종 특권을 내려놓고, 세비 셀프 인상을 막는 등 일하는 국회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국민소환제를 즉각 도입해야 한다. 현재는 국회의원의 비리, 부패가 드러나더라도 주권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임기 중이라도 잘못을 저지른 국회의원을 끌어내릴 수 있는 국민소환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여 다양한 정당들이 정책 경쟁을 하는 정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지금처럼 상대방을 공격 하는 데만 혈안이 되고, 아무리 꼴사나운 정치를 해도 2등은 할 수 있는 지금의 국회 구조를 바꿀 수 있다.
자유한국당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우여곡절 끝에 선거제도개혁법이 표결을 앞두고 있다. 국회를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여야4당은 합의 정신에 입각해서 반드시 선거제도개혁을 완수하고 특권 정치를 바꿔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정재민씨는 정의당 서울 영등포구위원회 위원장입니다. 이 기사를 지역언론사에 송고했으며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hcry99)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