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 "가불꺼?"(가버릴 거니?)
나 : "응. 내일."
입은 애써 웃는 모양을 하느라, 눈은 가득 고인 눈물을 흘러내리지 않게 하느라 목이 아프고 힘이 든다.
어머니 : "에이구 참."
몇 년 전까지도 없던, 어머니와의 이별 풍경이다. 제주도에서 가난하게 살아온 부모님은 내가 대학에 입학하고 제주를 떠나 육지에 온 지 30년이 되어가는데도 한 번도 찾아오신 적이 없었다. 그리고, 부모님 집에 자식들이 자주 내려오기를 바라는 말을 한 적도 없었다. 가난한 우리에게 비행기를 타는 일은 일상적인 것이 아니었기에 오히려 너무 무리하면서 오지 말라고 말하곤 하셨다.
가난이 자연스러웠던 우리에게는 서로가 서로를 자주 찾지 않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로 인해 서로에게 서운한 적도 없었다. 가난에 대한 이해가 거의 체질화되어 있어 서로를 자주 찾지 못하더라도 그것으로 서운하지는 않는 강철 체력을 갖게 되었다고나 할까?
내가 서울에 막 올라왔던 그 시절에는 당연히 전화 없이 살았다. 하루하루의 식비와 버스 토큰 살 돈도 모자라거나 간당간당했던 때라 공중전화 부스에서 시외전화를 하며 동전을 쓸 생각은 거의 해보지 않고 살았다. 말 그대로 무소식이 희소식이던 시절이었다. 또 그 당시의 나는 입시체제와 부모의 간섭을 벗어나서 자유롭고 싶었다. 그렇게 난 바라던 대로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렇게 제주섬과 부모의 곁을 떠나 살아가는 동안 60대의 부모는 이제 90대가 되었고, 20대였던 나 역시 50대가 되었다. 나이와 함께 많은 것이 변하였다, 당연하게도. 시골교회에서 전도사로 50년 가까이 목회생활을 하셨던 아버지는 72세의 나이로 은퇴하셨다.
그리고, 두 분이서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하시며, 조그마한 땅을 사고 집도 지으셨다. 오토바이를 타고 꽤 먼 거리를 오가며 건축을 하느라 교통사고를 겪기도 하였다. 그리고 제주의 돌 현무암을 여기저기서 져다가 마당을 가꾸어놓기도 하였다. 덕분에 마당 곳곳은 부모님의 땀과 손길이 묻어있는 작고 예쁜 곳이 되었다. 두 분은 그곳을 가꾸고 정리하며 20여 년을 함께 살아오셨다.
요양병원에 계신 아버지, '노치원'에 가는 어머니
지난달, 아버지의 병세가 위급해져 입원을 하셨고, 지금은 요양병원에 계시다. 어머니는 이제 90 평생 처음으로 혼자인 삶을 3주째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흔히들 '노치원'이라고 부르는 노인주간보호센터를 다니기 시작하였다.
매일 아침 언니가 전화를 해서 어머니가 잊지 않고 나갈 준비를 하도록 하고, 가까이 사는 오빠가 종종 가서 저녁 거리를 챙기곤 한다. 다행히 어머니는 혼자인 삶에도, 그리고 '노치원'에도 비교적 잘 적응하고 계시다.
자식들의 챙김과 마음씀이 큰 의지가 되고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 생활에 적응을 해야 한다는 어머니 자신의 애씀이 가장 큰 적응의 힘일 것이다. 표현하지 않는 그 애씀의 시간을 떠올리다보면, 또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언제부터였을까? '부모'라는 단어만으로도 내 눈물샘이 터져버리곤 하는 증상이 생긴 것이.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내가 그동안 마치 공기처럼 당연한 내 삶의 조건으로 여겼던, 그래서 전혀 특별할 것 없던 '부모'라는 존재가 한 인간으로 내 마음에 다가오기 시작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지금 아버지가 계신 요양병원이 최선의 선택일까라는 생각에 의문이 들지만, 현재로선 다른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듯하여 잘 안 삼켜지는 묵직한 것을 꿀꺽 삼킨다. 그리고, 지금 혼자 살아가고 계신 어머니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본다. 늙은 어머니, 그리고 늙어가는 내가 일상을 함께 티격태격 해가면서 살아가는 그림도 그려본다. 이런 선택이 어머니의 삶을 조금은 더 편안하게 만들어줄 수 있으려나? 그리고 또한 내 눈물조절장애를 조금은 완화시켜줄 수 있으려나?
존엄하게 늙는다는 것
어머니는 늙어서 아프면 집에서 그냥 누웠다 죽으면 되지 왜 병원을 가냐고 하신다. 예전 할머니가 그렇게 집에서 돌아가셨고, 어머니에게는 여전히 그런 죽음이 병원에서의 죽음보다 훨씬 익숙한 것이다. 2년 전쯤, 아버지가 심하게 아프시면서 부모님의 삶과 죽음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을 즈음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이란 책을 읽었다.
그 책에서도 집에서 안전하게 살다가 죽어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탐색을 하고 있다. 내 삶의 주요 단어 중 하나가 된 '자연스러움'의 관점에서도 자신이 살던 집에서 지금까지 살아왔듯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최상의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과도하게 병원에 의지하게 된 우리 삶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라도 어떻게든 조금은 되돌려놓는 것이 인간의 존엄과도 연결된 것이 아닐까 막연하게 생각해본다.
이를 위해서는 개별 가족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인간의 삶 전체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살기 위하여' 인간 삶에서 너무나 핵심적인 많은 것들을 버리고 달려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 달에는 부모님을 보기 위해 고향 친구와 같이 내려간다. 지금으로선 요양병원에 홀로 누워계신 아버지와는 원하는 만큼의 대화가 힘들지도 모르겠다. 한 달 전 일반병원에서 봤을 때만 해도 돌 많은 돌섬이 차 많은 차섬이 되었다며,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도 차조심하라고 딸의 안전을 염려했던 아버지였는데... 그리고 또 혼자 집에서 생활하고 계신 어머니랑 짧은 며칠이지만 맛있는 요리해서 같이 먹고 수다 떨며 지내야겠다. 여전히 눈물조절장애를 겪고 있는 터라 아직 만나지도 않은 지금부터 헤어짐의 시간이 두렵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