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특검!" "김종술! 병원 가자!"
지난 16일 '우리 강, 남한강 자연성 회복을 위한 경기도민회의' 주관으로 수원 남문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삽질> 관객과의 대화 때 나온 마지막 구호입니다. 10여 년 전 4대강 삽질에 앞장선 검찰을 못 믿기에 지금이라도 4대강 특검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해되는데, 관객들은 왜 <오마이뉴스> 김종술 시민기자를 병원에 보내려고 하는 걸까요?
괴생명체를 먹다
<삽질>을 연출한 저는 요즘 김종술 기자와 함께 전국을 다니면서 거의 매일 관객과의 대화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나오는 단골 질문은 영화 주인공이기도 한 김 기자의 건강을 우려하는 내용입니다. 김 기자가 먹은 큰빗이끼벌레, 굳이 징그러운 그걸 먹기까지 할 이유가 있냐는 겁니다.
김 기자의 답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단돈 5600원으로 산 빵과 물을 배낭에 담고 마지막 취재를 떠났습니다. '4대강 기사를 왜 쓰냐'는 광고주 압박으로 제가 대표로 있던 지역신문사의 문을 닫고, 빚도 많이 졌습니다. 가족과 지인들에게도 더 이상 돈을 빌려달라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집을 탈탈 털어서 나온 돈 2600원과 컴퓨터를 판 돈 3000원을 들고 나선 길이었습니다."
빵과 물이 다 떨어졌을 즈음, 김 기자는 강물을 퍼먹으려고 강가로 다가갔다가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괴생명체를 발견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한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징그러운 모습의 생명체를 물속에서 건졌더니 시궁창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대체 왜 강에 이런 것들이 창궐한 것일까?
김 기자는 핸드폰으로 찍어서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에게 보내서 괴생명체의 정체를 물었습니다. 5분도 안 돼서 "모른다"는 성의 없는 답신이 되돌아왔답니다. 그는 4대강 사업에 대한 마지막 기사를 쓴다는 각오였지만 막상 기사를 쓰려니 막막했다고 합니다.
"명색이 기자인데, '금강에 괴생명체가 나타났다'고 쓸 수는 없었습니다. 한번 먹어보고 내 몸에 이상이 생기면 강의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큰 것 아닐까요? 손가락 두 마디 정도를 떼서 입에 넣었더니 시궁창 악취가 났습니다. 두어 번 씹다가 그냥 꿀꺽 삼켰습니다. 30분도 안 돼서 구토가 나오고 온몸이 근질거려서 물속을 들락날락했죠."
2014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특종은 그의 이런 '몸 취재' 결과였습니다. 마지막 취재 때 발견한 큰빗이끼벌레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4대강 취재를 계속할 계기가 되었습니다. 기사를 쓴 뒤 여기저기서 전화가 오고 그는 다시 '4대강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녹조물 먹고, 정신과 약을 달고 살았다
그가 큰빗이끼벌레만 먹은 건 아니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밝힌 '2급수 금강'을 검증하려고 수시로 강물을 떠먹었답니다. 그 이전에 김 기자는 여러 기관과 학교 연구소에 수질 검사를 요청했지만, 번번이 외면당했습니다. 기관들은 수질검사 결과를 발표하는 순간, 정부 연구 용역 프로젝트를 따지 못할 것을 알고 몸을 사렸던 겁니다.
"먹으면 대부분 30분도 안 돼서 배가 아픕니다. 어떤 때에는 화장실로 달려가지도 못하고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죠. 요즘도 가끔 물을 먹습니다. 또 여기 들어오기 전에도 두통약을 9알이나 먹고 왔습니다. 6~7년 전부터 두통약을 달고 삽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관객들은 그의 절박함과 처절함에 공감합니다. '김종술, 병원 가자'라는 구호는 김 기자의 이런 사연을 들은 뒤에 나온 관객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습니다. 금강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몸부터 챙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만 금강을 지속적으로 지킬 수 있다는 바람이기도 합니다.
그는 2012년 금강에서 물고기 떼죽음 특종을 터트렸을 때에는 정신과 약을 달고 살았습니다.
"4대강공사 이후 물고기 떼죽음 사건이 터졌어요. 공무원들이 취재를 막더라고요. 공무원 출근 전인 9시 이전에 현장에 나가 전날 물고기 사체를 담은 마대 자루를 풀어 헤쳐서 숫자를 세기 시작했습니다. 5~6 자루에 담긴 물고기를 세서, 마대자루를 곱하면 전체 숫자가 나옵니다. 공무원들이 땅속에 숨긴 물고기를 맨손으로 파헤쳐서 수를 세기도 했습니다."
떼죽음 당한 물고기의 숫자를 축소해 발표하는 환경부에 맞서서 그는 구더기가 들끓고, 썩은 냄새가 풍기는 물고기 사체를 일일이 세면서 기사를 썼습니다. 거의 모든 직업기자들은 환경부가 발표한 숫자 5만 마리 정도를 기사로 썼지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인 그는 자기가 직접 현장에서 검증한 숫자 60만 마리를 보도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온몸에서 악취가 났습니다. 10번을 씻어도 냄새가 사라지지 않아요. 방에 누워서 잠을 자기도 어려웠습니다. 눈만 감으면 물고기 사체에서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끔찍한 모습이 꿈에 나타났습니다. 방 귀퉁이에 쪼그려 앉아서 잠을 청한 때도 많았습니다. 도저히 참지 못해서 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했죠."
정신과 약을 털어놓으면서도 취재수첩과 사진기를 놓지 않고 금강의 죽음을 고발해 온 그에게 '금강의 요정'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1년 340여 일을 금강에 나가 취재했고, 지금까지 쓴 4대강 기사만도 1700여 개에 달합니다. 그는 물고기 떼죽음과 큰빗이끼벌레뿐만 아니라 공산성 붕괴, 최악 수질 지표종인 실지렁이와 깔따구 출몰 등의 대형 특종도 했습니다.
"강물처럼 나아가겠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그는 4대강사업을 취재하면서 몸은 망가지고 빚더미에 올랐지만, 수상의 영예도 안았습니다. 대전충남녹색연합 녹색인상, 녹색연합 아름다운지구인상, 대전환경운동연합 환경언론인상, 환경재단의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선정, SBS 물환경대상 반딧불이상(시민사회부문), 2016년에는 민주언론시민연합 성유보 특별상.
영화 <삽질>이 개봉한 뒤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전국을 다니면서도 그는 두 개의 상을 받았습니다. 지난 12월 3일 김 기자는 비영리사회단체인 '나눔문화'가 생명 평화 나눔의 길을 걸어온 희망의 사람들을 격려하는 의미에서 주는 나눔문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시상식 당일 주최측이 대형 화면에 띄운 아래 영상을 보시면 김 기자의 수상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김 기자는 이날 수상 소감을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고맙습니다. 더 열심히 하라고 주시는 상 같습니다. 저는 서울에 살다가 금강의 아름다움에 반해 17년 전 금강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강을 지키고 싶었고, 아직까지 싸우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지역신문사 기자로 활동하면서 많은 탄압을 받았지만, 저는 한 번도 지는 싸움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길 것입니다.(박수)
오늘 주신 이 상패는 박노해 시인이 중동 평화활동을 하던 중에 팔레스타인 농부들이 평화를 위해 써달라며 준, 이스라엘 군에 의해 목 잘린 천년의 올리브나무로 만든 상패라고 합니다. 여기 담긴 생명과 평화의 염원으로 4대강을 막고 있는 16개 콘크리트 쇠기둥을 뽑아냈으면 합니다. 금강에 비단물결이 흐르는 날까지 강물처럼 나아가겠습니다."
지난 17일에는 대전충남인권연대가 수여하는 풀뿌리인권상을 수상했습니다. 상패에는 다음과 같은 수상 이유가 적혀있습니다.
나날이 환경권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지금 시기 이 땅의 산과 강, 그리고 모든 생명에 대한 남다른 감수성으로 기사를 써온 김종술 기자는 오랜 세월동안 4대강 사업의 허구성과 그로 인해 파괴된 생태계의 진실을 알리는데 헌신해 왔다. (중략) 그동안의 노고와 성과에 감사하며 '풀뿌리인권상'을 수여한다.
이날 상을 받은 김 기자는 "요즘 영화 <삽질> 홍보를 위해 전국을 다니느라 금강을 잠시 비웠더니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이렇게 상을 주시는 것 같다"면서 "4대강 싸움을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는데,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며 웃었습니다.
고발자의 손을 맞잡아주세요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도(21일) 저는 김종술 기자와 함께 있습니다. 서울 종로구의 서울극장에서 환경운동연합이 주선한 영화 <삽질>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만간 영화가 끝나면 관객 앞에 섭니다. 제가 요즘 만나는 관객들 앞에서 자주 하는 말 중의 하나는 영화 속에 각인된 "녹색 손을 기억해 달라"는 말입니다.
그 손은 영화 포스터의 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강물에 들어가 손으로 끈적끈적한 녹조를 가득 뜬 모습이 대형 스크린에 비치면 관객석에서는 황당함과 안타까움의 탄성이 흘러나옵니다. 보는 것만도 끔찍한 이 녹조의 한 종류인 남조류는 간에 치명적인 맹독을 품고 있습니다. 청산가리의 20~200배의 독성물질인 마이크로시스틴입니다.
그 손은 지난 10년간 언론들이 외면한 죽어가는 금강을 기록해온 고발자의 손입니다. 소위 '기레기'(기자 쓰레기)가 창궐하는 시대에 자기 몸을 사리지 않고 온몸으로 검증하면서 기사를 써 온 진짜 기자의 손입니다. 4대강 취재에 필요한 기름값이라도 벌려고 주말이나 휴일에는 공사판에 나가서 삽질을 하는 값진 노동의 손입니다.
영화 <삽질>을 연출한 저는 관객과 함께 지난 10여 년간 삽질로 죽어가는 강을 지켜온 이 손을 지키고 싶습니다. 지금도 피부병에 시달리고 두통약과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 금강을 지키고 있는 그를 병원에 보내고 싶습니다. 올해가 다 지나기 전에 김종술 기자의 녹색 손을 맞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김종술! 병원 가자!"
이 기사에 보내주시는 '좋은 기사 원고료'는 영화 관객들의 바람을 현실화시키는 데 쓰입니다. 독자들이 십시일반 보내주신 소중한 선물을 모아서 김 기자를 병원에 보내 종합 검진을 받는 데 보태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영화 <삽질> 극장 단체관람 혹은 대관을 원하실 경우, <삽질> 배급사인 엣나인필름(070-7017-3319, 평일 오전 10시~ 오후 7시)으로 연락하시면 됩니다(단체 관람 최소 30명, 대관 상영 최소 100명, 세부조율 가능). 저와 김종술 기자를 불러주시면 어디든 달려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