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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다연 변호사
황다연 변호사 ⓒ 권우성

"제 눈엔 이 사건이나 세월호 사건이나 다를 게 없어 보였어요. 배가 침몰할 때 모든 국민은 정부가 매뉴얼에 따라 사람들을 구해줄 거라고 믿었잖아요. 시스템대로요."

조곤조곤하게 인터뷰를 이어가다가도 '매뉴얼'과 '시스템'이라는 말이 나올 때면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시스템은 통하지 않았고 세월호 참사가 터졌죠. 햄버거 패티 사건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는 이미 꽤 괜찮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요. 시스템 대로 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이죠."

황다연 변호사. 법무법인 '혜'의 파트너 변호사이자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의 공보이사다. 하지만 그의 이름 앞에 가장 자주 붙는 수식어는 '햄버거병 사건의 피해자쪽 법률 대리인'이다.

햄버거병 사건이 터진 건 지난 2016년으로, 벌써 3년 전이다. 지난해 2월, 검찰이 한국 맥도날드를 무혐의로 불기소처분하면서 해당 사건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검찰은 이 사건을 재수사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가을 열린 국정감사에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만 3년 동안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황다연 변호사를 지난 23일 법무법인 혜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 사회는 정글이구나"
 
 황다연 변호사
황다연 변호사 ⓒ 권우성
  
햄버거병 사건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지난 2016년 9월, 당시 만 4세였던 한 아이가 가족과 함께 경기 평택시에 있는 맥도날드 매장에서 '해피밀' 메뉴를 시켜 먹었다. 햄버거와 함께 장난감을 줘 아이들이 즐겨 찾는 세트 메뉴다.

하지만 외식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두 세 시간쯤 후부터 배에 이상을 느꼈다. 다음날부터 구토를 시작했고, 또 하루가 지나자 혈변을 봤다. 그렇게 순식간에 신장 기능의 90%를 잃었다. 병명은 용혈성요독증후군(HUS). HUS의 다른 이름이 '햄버거병'이다. 

그로부터 약 1년 후인 2017년 7월, 피해 아동의 어머니 최은주(39)씨는 한국 맥도날드를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맥도날드가 패티를 제대로 익히지 않아, 피해 아동이 패티 속 장출혈성대장균을 섭취했다는 것이다. 이때 황 변호사는 최씨의 법률 대리인을 맡았다. 

하지만 2018년 2월, 검찰은 피해 아동이 맥도날드 패티 때문에 HUS에 걸렸다고 보기엔 증거가 부족하다며 한국 맥도날드에 불기소 처분을 내렸고, 맥도날드에 패티를 납품하던 '맥키코리아(이후 명승식품으로 이름 변경)' 임직원 3명만 축산물위생관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이 맥도날드를 봐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고, 올해 1월 30일 최씨와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은 다시 한 번 한국 맥도날드와 맥키코리아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번에는 사건에 연루된 담당 공무원도 고발 대상에 추가했다.

- 이번 사건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드셨어요?
"(이 사회는) 정글이구나 싶었어요. 옛날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나 이외에 모든 걸 의심했잖아요. 먹는 것도 스스로 조심했고요. 지금의 우리 사회도 다를 바 없다고 느꼈어요. 시스템이 있어도 지켜지지 않으니, 그냥 내 몸은 내가 챙겨야 하는 거구나 싶었죠."

- 어떤 면에서 다를 바 없다는 건가요?
"이번 사건이 완벽한 시스템 속에서 일어난 인재(人災)라는 면에서요. 그럴듯한 시스템이 있더라도 '어떤 사람'이 담당하느냐에 따라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사례였어요. 심지어 6월 30일의 일은 아직까지도 수면 아래 감춰져 있고요."

2016년 6월에 일어난 일

최씨의 고발 이후 진행된 첫 번째 수사에서는 두 가지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먼저 납품업체인 맥키코리아가 햄버거병 사건이 터지기 이전에 이미 패티에서 장출혈성대장균을 발견했는데도 제품을 제대로 회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체 실험 검사로 2016년 6월과 11월, 2017년 8월 등 모두 3차례에 걸쳐 '10:1 순쇠고기 패티'와 '4:1 순쇠고기 패티' 제품에서 균을 발견했다. 축산물위생관리법은 영업자가 축산물 기준이나 규격을 위반한 사실을 알게 되면, 유통 중인 축산물을 회수 혹은 폐기하고 식약처장과 지자체장에게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원칙'이었던 회수나 폐기는 2017년 8월 균 검출 제품에 대해 딱 한 번 이뤄졌다. 맥키코리아쪽은 2016년 6월자 균 검출 제품에 대해서는 이미 시중에 유통돼 소진됐다며 회수를 진행하지 않았고, 5개월 후인 11월에는 균이 검출됐다는 사실을 식약처에 처음부터 보고하지 않았다.

- 업체가 원칙을 지키지 않는 걸 보니 식품 관리 시스템에 문제가 있나 봐요.
"아쉬운 점은 있지만, 시스템 자체의 문제라고는 말할 수 없어요. 우리나라 '축산물가공업 영업자 등의 검사규정'에 따라 축산물가공품에 대한 자가품질검사 주기는 매달 1회 이상으로 정해져 있어요. 사고 직전인 2016년 6월 1일 맥키코리아가 만든 포장육, '10:1순쇠고기패티'도 이 검사를 받았고요."

- 사후 대책에서도 매뉴얼상의 문제는 전혀 없었나요?
"없었어요. 원래 첫 번째 검사에서 병균이 나오면 검사를 한 번 더 하게 돼 있어요. 그래도 또 균이 나오면 '부적합 판정'을 하고 식약처에 알린 후 제품을 판매중지, 회수하고 해당 제품에서 위해 물질이 나왔다는 사실을 사회에 공표하게 돼 있죠. 시스템은 철저한 편이었죠. 하지만 그때 한 공무원이 회수와 공표 모두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맥키코리아에 면죄부를 줬어요. 구체적인 '팁'까지 알려주면서요."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또 한 가지 사실은, 맥키코리아가 2016년 6월 균 검출 제품에 대해 판매중지나 회수를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공무원 손아무개씨의 정보 제공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손씨는 세종시 가축위생시험연구소에서 근무하던 검사 공무원으로, 당시 맥키코리아는 이 연구소에 패티 검사를 위탁하고 있었다.

그달 30일 연구소는 6월 1일자 순쇠고기패티에서 장출혈성대장균 O157:H7이 검출됐다며 결과를 맥키코리아쪽에 통보했다. 하지만 손씨의 진술조서에 따르면, 그는 결과 통보 전 평소 가까운 사이였던 맥키코리아의 공장장 황아무개씨에게 직접 연락해 균이 검출됐다는 사실을 먼저 알렸다.

이와 함께 손씨는 '균 검출에 따른 사회적 공표' 등의 처분을 받지 않을 방법을 맥키코리아쪽에 알렸다. 손씨가 남긴 진술서에 따르면, 당시 그는 황씨에게 6월 1일 생산된 제품의 재고를 파악해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황씨로부터 "재고가 없다"는 말을 들은 후 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맥도날드가 '회수대상 제품이 모두 소진돼 회수 물량이 없다'는 공문을 내는 것"이라고 가르쳐줬다.

그런 일 해놓고, 처벌은 커녕 승진
 
 황다연 변호사
황다연 변호사 ⓒ 권우성
 
-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균 검출 결과가 통보된 6월 30일, 실제로 한국 맥도날드쪽은 손씨에게 '2016년 6월 1일자로 제조한 10:1순쇠고기패티가 맥도날드 매장에서 모두 소진되어 남아있지 않다'고 적힌 공문을 보냈어요. 손씨는 바로 다음날인 7월 1일 '회수명령 및 공표를 실시하지 않고, 회수 대상이 없어 축산물위생관리법에 따라 처분을 면제한다'는 내용의 내부 결재를 받았고요. 1일에 생산된 패티가 2000박스가 넘고 이것이 400여개에 이르는 전국 매장으로 퍼져나갔는데도요."

- 정말 회수 물량이 없으면 공표를 하지 않아도 되나요?
"아뇨. 손씨가 법을 잘못 적용한 거예요. 현행법상 사회적 공표를 면제받을 수 있는 경우는 납품업체가 납품을 하지 않아 공장에 제품이 모두 남아 있는 상황에서 균이 발견된 경우 하나에요. 그런데 손씨는 제품이 모두 팔려나가면 회수나 폐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거죠. 실제로는 균 검출 패티가 유통됐다면 오히려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해요. 육가공식품은 냉동해 집에서 보관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 지금 손씨쪽은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나요?
"기업쪽에 필요한 안내를 해줬을 뿐이라는 주장이에요. 올해 7월, 손씨의 소송 대리를 맡고 있는 정부법무공단쪽에서 보내온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손씨가 대장균 검출 제품이 유통되는 것을 빠르게 막기 위해 균 검출 결과를 통보하기 전에 맥키코리아쪽에 미리 사실을 알려줬다고 봤어요. 그런 관점에서 '공문을 내라'고 말해준 것도 처분면제 팁을 귀띔해준 건 아니라는 거예요."

- 어떻게 생각하세요?
"신속한 처리를 위해서라고 해도 법을 잘못 해석해 애초에 틀린 내용을 업체쪽에 전달한 셈이잖아요. 무리하게 처분면제를 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으면, 그렇게 안내를 할 수가 없어요. 또 평상시에 같이 소주도 마실 만큼 공장장과 친한 관계였다고 들었어요. 한 번에 대단한 돈을 받은 게 아니더라도, 평소 친분이 있다면 정 때문에 처분을 해야 할 때 못 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아요."

- 지금 손씨는 어떤 상황인가요?
"세종시에서 여전히 일하고 있어요. 승진도 했다고 들었고요. 뜬구름 잡는 소리 같지만 공무원들이 소명의식을 가져야 해요. 또 잘못된 선택을 한 공무원들을 엄격하게 처벌해야죠.

햄버거는 가장 시스템화 돼 있는 음식이에요. 매뉴얼도 명확하고. 그런 햄버거도 균이 생길 수 있고, 또 정부 시스템도 담당자가 누구냐에 따라 매뉴얼대로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젠 햄버거 자체를 못 먹겠더라고요. 우리 사회는 시스템으로 움직이지만, 그 시스템은 사람이 운영해가고 있어요. 그들이 얼마나 시스템을 지키느냐에 따라 위기 관리가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는 거죠."

세종시 공무원과 한국 맥도날드, 맥키코리아를 대상으로 한 고발 건에 대해 검찰은 2주 전 고발인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햄버거병#맥도날드#맥키코리아#윤석열#용혈성요독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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