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연합뉴스) 이종민 기자 = 경찰 고문에 못 이겨 살인죄 누명을 쓴 채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 당사자 2명에 대한 재심이 결정됐다.
재판부는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리면서 "30년 가까운 기간에 걸친 피해 호소에 이제야 응답하게 돼 면목이 없다"며 재심청구인과 가족들에게 사과했다.
부산고법 제1형사부(부장판사 김문관)는 6일 강도살인 피의자로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1년간 복역한 뒤 모범수로 출소한 최인철(59), 장동익(62) 씨가 제기한 재심청구 재판에서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사건 발생 30년 만에 다시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재판부는 "그동안 6차례 심문에서 물고문의 구체적인 방법, 도구 등에 대한 청구인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이었으며 담당 경찰서의 유사 고문 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재심 사유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수사과정에서 구속영장 등 형사소송법에 따른 절차에 의하지 않고 강제연행을 하고 경찰서에 감금당했는지 여부와 자백할 것을 강요하면서 물고문 등의 가혹행위를 했는지 등이 쟁점이었다"며 "그동안 심문에서 재심 사유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사하경찰서 수사관들이 1991년 11월 8일 재심청구인들을 연행해 구속영장을 집행할 때까지 사하경찰서에 유치한 것은 직권남용 불법체포 및 감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당시 수사관들조차 '검거'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이를 '자발적인 의사에 의한 임의동행'으로 보기 어렵고, 긴급구속 요건도 갖추고 있지도 않아 불법체포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이 사건 기록, 법원의 사실조사결과 등에 의하면 재심청구인들이 살인사건을 저지른 것인지 추궁을 받으면서 여러 차례 폭행을 비롯해 물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1990년 1월 4일 낙동강변에서 차를 타고 데이트하던 남녀가 괴한들에게 납치돼 여성은 성폭행당한 뒤 살해되고 남성은 상해를 입은 사건이다.
사건 발생 1년 10개월 뒤 최 씨와 장 씨는 살인 용의자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후 재판에 넘겨져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1년간 복역한 끝에 2013년 모범수로 출소했다.
이들은 검찰 수사 때부터 경찰로부터 고문을 당해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4월 대검 과거사위원회가 이 사건을 조사하고 '고문으로 범인이 조작됐다'는 결과를 발표하면서 재심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최 씨 등은 2017년에 이어 대검 과거사위 조사 결과 발표 뒤 2018년 1월 재심청구서를 다시 제출했고, 부산고법은 재심 개시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그동안 6차례에 걸쳐 재심 개시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심문을 벌였다.
재판부는 이날 재심 개시결정을 내리면서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사과했다.
김문관 부장판사는 "30년 가까운 기간에 걸친 고문 피해의 호소에 이제야 일부라도 응답하게 된 것에 사과의 예를 표한다"며 배석 판사들을 좌석에서 모두 일어나게 해 재심청구인들과 가족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재심이 결정됨에 따라 재판부는 이른 시일 안에 공판 준비기일을 열어 검찰과 변호인 쌍방의 입증계획을 청취하고 재심에 필요한 증거와 증인을 확정하는 등 재판을 신속히 진행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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