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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디즈니로 출근합니다>를 쓴 김미란 아티스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캐릭터 아티스트로서의 일 그리고 그의 도전에 관한 여정을 따라가 보았다. 당시 한국과 미국에서 4시간이 넘는 전화 인터뷰를 했고, 그러면서 '디즈니'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많았는데, 분량 관계상 다 담지 못했다.

하지만 '겨울왕국'을 비롯한 수많은 명작을 끊임없이 만들고, 관련 상품의 인기도 하늘을 치솟는 만큼, 디즈니라는 회사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난 두 번의 인터뷰에서 미처 싣지 못한 이야기들 중, '회사로서의 디즈니'에 관련된 내용을 추려보았다.

물론 이 단편적인 이야기를 통해 디즈니라는 거대한 기업의 모든 비밀을 알 수는 없겠지만, 디즈니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어떤 사내 문화를 가졌는지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D23 행사중 일부
D23 행사중 일부 ⓒ 박정우
  
- 지금으로부터 한 5년 전쯤, 캐릭터 아티스트들이 디즈니 공주들의 포즈를 바꾸는 작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했다고요. 그 뒷이야기와 배경이 궁금합니다.
"네. 그랬습니다. 디즈니에서 중요하게 하는 일 중의 하나가 사내 전문팀을 통해서 주기적으로 통계 조사를 하는 거예요. 그 내용과 형식이 굉장히 광범위합니다. 이런 작업을 통해서 사람들의 인식이 어떻게 변화해 나가는지를 파악하거든요.

5년 전 즈음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놀라운 결과가 나왔어요. 디즈니 공주들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는 것이었죠. 디즈니 공주들이 너무 예쁜 척만 하고, 지나치게 여성스럽고, 그야말로 '샤랄라' 공주 스타일이라는 게 그 이유였어요.

그래서 결국 캐릭터 아트 팀에서 디즈니 공주들의 포즈를 좀 더 활발하고, 역동적으로 변화시키는 대대적인 작업을 하게 되었던 것이죠. 예를 들어 신데렐라의 상징이 구두잖아요? 예전에는 그 상징적인 신발을 신고 단정한 자세로 '내 유리 구두 예쁘지?' 뭐 이런 포즈였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제는 팔 한쪽 굽히고, 다리도 굽히면서 삐뚤게 선 채로, 치마를 살짝 들어요. 심지어 구두도 안 신습니다.(웃음) 그냥 한 손에 든 채로, 맨발이 보이게 바뀌게 되었죠. 이런 식으로 전반적으로 활발하고, 역동적인 느낌으로 캐릭터 변화를 주었어요."

- 전통적인 캐릭터에서 요즘(?) 캐릭터로 직접 변화시키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말이 '라떼 이즈 홀스(나 때는 말이야)'라면서요? 제가 미국에 있지만 한국 뉴스, 예능, 드라마 다 챙겨봅니다. (웃음) 그런데 정말 세상이 많이 변했구나, 나 때랑은 정말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사실 캐릭터 아트나 애니메이션 분야도 새로운 기술이나 프로그램이 정말 빨리빨리 나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 때보다도 이렇게 사람들의 인식이 변했다는 게 딱 느껴질 때 더 놀라는 것 같아요.

요즘 여자아이들한테 백마 탄 왕자가 웬 말입니까. <겨울왕국>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에요. 그런 통계조사를 통해서 트렌드와 인식을 철저하게 예측하고 분석해서 만드는 겁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남자아이들이 봉제 인형 더 많이 들고 다니고요, 여자 유소년 축구팀이 얼마나 활발한지 몰라요." 
 
디즈니에서는 지금으로부터 5년 전쯤, 디즈니 공주들의 포즈를 바꾸는 작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이렇게 파격적인 지침이 내려온 이유는 디즈니의 소비자들, 즉 아이들의 인식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희생하고, 사랑만을 숭고하게 여기는 공주 캐릭터의 인기가 점차 시들해지고 있다. 기성세대가 좋아했던 수동적인 공주와 달리, 이제는 자신의 삶에 호기심을 가지고 새로운 모험을 떠나는 공주를 원한다. 그저 예쁘기만 한 공주로는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게 된 것이다.
- '오늘도  나는 디즈니로 출근합니다' 중에서

- 디즈니 하면 저작권과 캐릭터를 철저하게 관리하는 걸로 유명한데요?
"일단 '디즈니 이매지니어링'에만 저작권 담당 변호사가 500명입니다. 디즈니 전체 아니고요. 이 정도면 뭐 말 다 하지 않았을까요? 책 만들면서 '웃픈' 에피소드가 있었는데요, 출판사에서는 당연히 책에 제가 그린 캐릭터를 많이 넣고 싶어 했어요. 그럼 본사랑 정리를 해야 하는데,  본사에서는 일단 디즈니 파트 전체를 영어 번역해서 보내라는 겁니다. 심지어 그때 출판사 대표님이 신혼여행 중이었어요.(웃음) 그 와중에 일정 밀리면 안 된다며 거기서 어찌 어찌 번역하는 사람을 찾아서 급하게 해서 보냈습니다.

검토하더니 쓸 수 있는 이미지와 쓸 수 없는 이미지를 하나하나 지정해 줬어요. 저도 회사 다니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리고 만든 캐릭터지만 넣지 못한 것도 많아요. 정말 여러 사람이 힘들게 만든 책입니다. 사실 이런 것뿐만 아니라 라이선스 사에서 정식 허가를 받아서 디즈니 캐릭터를 제품에 사용할 때도 담당자들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아주 디테일하게 정해줍니다. 퀄리티 콘트롤을 굉장히 신경 쓰죠."
 
미키 전시 왼쪽 위가 김미란 아티스트가 작업한 것
미키 전시왼쪽 위가 김미란 아티스트가 작업한 것 ⓒ 박정우
 
그들이 저작권료를 내고 디즈니 아트를 그들 제품에 사용할 때 회사 취지에 맞게 디자인이 적용됐는지, 캐릭터의 정체성이나 이미지와 부합하는지, 제품의 전체적인 디자인은 어떤지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PD 파트 소속 디자이너들에게 승인을 받아야 한다.
- '오늘도 나는 디즈니로 출근합니다' 중에서
 
- 그런데 전 세계로 나가는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를 담당하는 사람이 김미란 아티스트를 포함해 2명이라면 너무 적은 것 아닌가요?
"그래서 일이 많습니다. (웃음) 다만 여기서 공식 담당이라고 하면, 모든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를 다 그린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정확히 말하자면 미키, 미니의 '스타일 가이드'를 만드는 사람이 저를 포함해 두 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다른 팀에서 외부 프리랜서를 고용해서 이 스타일 가이드를 조금씩 변형해서 상품을 만들기도 합니다.

보통 그럴 땐 여성 성인용 의류브랜드의 리미티드 에디션이나 디즈니 스토어에 들어가는 제품인 경우가 많아요.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반드시 검수와 수정 작업을 거칩니다. 그냥 내보내는 경우는 없어요. 결론적으로 다른 사람이 그릴 수도 있지만 저를 포함한 공식 담당자의 눈과 손을 반드시 거친다고 할 수 있죠."
 
미니 신발 제작에 참여한 상품중 하나
미니 신발제작에 참여한 상품중 하나 ⓒ 박정우
 
- 일 년에 한 번 여는 파티와 근속 배지에 관한 얘기도 흥미로웠는데요. 여기서도 철저한 캐릭터 관리의 일면을 볼 수 있었고요.
"우선 배지 이야기를 하자면 1년, 5년, 10년, 15년 이렇게 쭉 있습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40년도 있었다고 해요. 40년 근속이라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좋아집니다.(웃음) 1년, 5년은 배지. 10년이면 상패, 15년이면 디즈니 캐릭터를 구리로 만든 피규어? 뭐 그렇고, 20년은 반지나 시계입니다.

1년에 한 번 디즈니 이매지니어링 직원 중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불러서 파티를 열고 수여식을 합니다. '애니버서리 파티'라고 부르는데요, 정식으로 드레스와 정장을 갖춰 입고, 배우자도 다 초대합니다. 여기에 미키와 미니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게 여기 안에 사람이 캐릭터 탈을 쓰고 있다는 걸 다 알지만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정말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가 다 사진 찍고 즐거워해요.

심지어 그 탈 안에 들어가는 분은 미키와 미니의 캐릭터의 성격에 관해 아주 자세히 교육받아요. 애니메이션에서의 캐릭터 손짓, 발짓, 몸짓, 앵글을 똑같이 흉내 냅니다. 그래서 더 캐릭터 같은 부분이 있어요."

- 그럼 그 안에 있는 분들도 직원인가요? 아르바이트생 아니고?
"물론이죠. 다 정식 직원입니다. 디즈니가 어떤 회사인데요. 캐릭터를 쉽게 맡기지 않습니다. 행동 지침 이런 거 다 있고, 정말 오랫동안 훈련 받고 테스트를 거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어요."
 
디즈니 근속 배지 디즈니 근속 배지
디즈니 근속 배지디즈니 근속 배지 ⓒ 박정우
 
-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디즈니에서 10년을 넘게 일했는데요, 아티스트로서의 성장 같은 직업적인 것 말고, 개인적인 사고나 인식의 변화 같은 게 있을까요?
"그럼요. 한국 기업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디즈니는 인권 감수성 교육이 굉장히 철저해요. 성, 종교, 인종은 물론이고 남성과 남성, 여성과 여성 간에도 하지 말아야 할 행동 가이드라인이 굉장히 디테일하게 되어 있어요. 구체적으로 누가 어떤 행동을 했다. 이때 대응으로 A는 뭐, B는 뭐, C는 뭐, 이중에 뭐가 적절하고 뭐가 잘못됐나. 이런 식의 교육입니다. 참고로 예외는 없고, 무조건 들어야 합니다.

어쨌든 그 지침들이 여러 가지 있는데 하나만 얘기하자면,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외모나 패션 같은 것에 대해서 잘 언급하지 않는 편입니다. 예쁘다, 아름답다 이런 말조차도요. 친한 사이에서 가끔 하게 되더라도 뉘앙스를 조심하는 편이죠.

그리고 이건 디즈니가 아니라 미국 전반의 문화라고 할 수 있는데, 한 예로 여기는 남남, 여여 커플과 그 사이의 입양이 정말 흔하거든요. 이걸 보고 다른 사람한테 뒷말? 같은 걸 했다 그러면 그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 정도가 아니라 그 순간 바로 범죄자 취급 당합니다. 유학이나 이민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한인들이 자주 하는 실수인데 정말 조심해야 해요. 저도 처음엔 낯선 지점들이 있었는데 오래 살다 보니 이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더라고요."
   
미국에서 살다 보면 가족의 형태가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남, 여여 가정도 있고 동성 커플 가정에서 입양도 종종 있다.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가지지 않는 가정, 나처럼 결혼은 안 했지만 결혼한 것과 다름없이 사는 커플, 결혼은 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가정들도 자주 보인다. 여자 혼자 살면서 아이를 입양하는 경우도 있다. 싱글 맘, 싱글 대디 또한 흔하다. 이처럼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해 회사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관련한 사회복지 혜택도  충분히 보장받는다.  
- '오늘도 나는 디즈니로 출근합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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